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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 한 디자이너가 그린 파리지앵의 일상과 속살
이화열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우선 프랑스하면 똘레랑스의 나라, 특히 파리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일컬어진다. 카페의 유리창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백인, 흑인, 황색 인종이 골고루 같은 수만큼 활보하고 있어 마치 인종 전시장 같다는 글도 어디서가 본 듯 하다.
이 글은 미국에 살던 저자가 우연히 프랑스로 떠나 13년간 파리지앵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마치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글이라 생각한다.
이 『파리지앵』을 읽으면서 파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만의 열정적인 삶을 살기란 현대에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천박한 삶 보다는 낳지 싶다. “내가 유명 가수가 되면 뭐가 달라질까? 돈 많이 벌겠지. 모나코에 별장도 사겠지. 그리고 파파라치들이 쫓아다니겠지. 그게 무슨 삶이니? 내가 자유로울 수 있고, 내가 가진 재능을 지금처럼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해.”(68쪽) 파리지앵이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 넘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그 나라의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지금까지 살아오는 문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혼율이 50%인 프랑스의 경우는 우리의 결혼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몇 번씩 이혼하고 결합한다. 심지어 전 남편의 결혼식에 참가하려 간다고 초대에 거절하는 장면도 나온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면 거부한다는 것인가. 이혼을 인생과 사회에서 큰 실패로 여기는 우리네 관념과는 천양지차이다. 두 번이나 결혼 경험이 있는 저자의 지인 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마다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더 이상 전통적인 커플의 삶은 사양하겠어. 내가 추구하는 예술과 가장으로서 요구되는 역할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 17년이 걸렸어.”(104쪽)
파리는 어느 정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취업도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우리 보수 신문에서는 유럽 국가가 분배만 신경 쓰다가 지금은 매우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노무현 까는라고, 아니면 재벌 신문사들이 세금 많이 내랄까봐 그러는지 종종 나오는 이런 소식을 믿지는 않지만, 좁은 나라에서 서로 무한 경쟁을 하는 우리나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부러울 뿐이다. 자기 주관이 있고, 자유롭고, 또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프랑스.
우리나라 같이 남의 삶에 간섭하고, 메이커 있는 옷이나 생활용품에 목숨 거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전자 제품도 사이클이 이렇게 짧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경제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해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 것이다. 다혈질 국민이라 그런가.
우리는 옷의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연예인 누가 무슨 옷을 입었다고 하면 자기의 개성에 관계없이 몰입한다. 웃기는 현상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을 수치로 안다고 한다. 좀 후줄근하더라고 자기 개성에 맞는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옷의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해 하는 현상을 빈곤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빈부의 양극화를 원망해야 할지 의문이다.
아무튼 이 책은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이후 나에게 파리지앵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 차분하게 접할 기회를 주었다. 그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어디 자유와 낭만만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프랑스 파리를 관념적으로 그리는 것은 자유분방하고 정열과 예술의 나라라는 것이다. 한 번 여행했으면 하는 꿈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