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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ㅣ 장정일 문학선집 2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엉덩이가 예쁜 여자 정선경이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의 원작『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비로소 읽게 되었다. 이 영화로 정선경도 뜬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이 소설은 장정일 만큼이나 색다르고 특이하다. 장정일의 특이한 이력이나 그의 기행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억압과 규제를 죽음보다 싫어하고 기존의 반복되는 제도에 과감히 도전하는 작가로 남아있다. 현재는 결혼을 하고도 어떤 신념 의해서 아이를 갖지 않고, 지방 대구에서 엄청나게 책을 읽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하여 진다.
이 작품은 희곡과 같이 각 단락에 번호를 붙여 놓은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작가가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변적’이고 ‘불확정적’인 것으로 보아서 그런지 막연한 호칭이 많이 등장한다. <은행원>, <색안경>, <오만과 자비>, <바지 입은 여자> 등 불확실한 지칭어이다. 이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서 주인공을 ‘K’ 라고 부르는 것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사내, 외판원 등 이름이 없는 등장인물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그것은 위에서 말한 변해야 한다는 의미 외에 인간의 존재적 불안으로 인한 익명성 및 전형성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수음처럼 부끄러운 일로 느낌”(62쪽)을 가졌던 주인공 ‘나’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히고 좀처럼 글을 못 쓴다. 그래서 그는 겨우 포르노 같은 글을 써서 어머니가 물려준 금고에 비밀리에 보관해 놓는다. 그에게 헌신하는 ‘바지 입은 여자’의 노력에도 작가가 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인 ‘은행원’은 유리 박스에서 돈을 교환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감옥 같은 유리 박스 안의 업무가 자기 자신을 기계로 인식하게하고 그래서 은행원은 회의하고 고민 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나’와 ‘바지 입은 여자’가 버린 타자기를 이용 유명 작가로 성공하는 ‘은행원’처럼 변화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직업이 바뀌고 사회적 위치도 각각 변화한다. 불확정성과 우연성을 빌어서, 현대 사회의 존재 구속과 고정성을 가장 싫어하는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구성의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는 이 소설은 은연중 작가의 자전적인 일화도 한 몫 한다. 즉 구속과 억압의 ‘나’에 대한 반발은 또한 장정일의 분노라고 보아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나’가 초딩 3년 때 동시를 썼는데, 나비가 꿀을 ‘쪽쪽’빨아먹는지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그의 아버지가 다구치고 때렸다. 이런 직업이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그는 놀다가 듣고 “해방이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작가의 유년 시절과 비슷한 일화이다.
그리고 저자의 『독서일기』 1권 서문에서 쓴, 책 읽기에 대한 여망을 담은 글도 보인다. “나의 꿈은 동사무소에서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퇴근하면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책을 읽는 것.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 없이 읽는다는 것.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는 내가 읽어 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없는 책이고.”(351쪽)
다른 애기지만, 장정일은 『독서일기』를 7권 째 내고 있다. 이 책들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독서를 하는데 전범이 되었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책을 안고 침대에 누워, 항상 의문을 가지고 타자의 동일성에 간섭하고 침잠하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하고 있다. 그의 덕분이다.
장정일의 소설을 영화한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절반정도 보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어린 여자 아이와 성인 남자와 섹스 하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에 나오는 문성근의 대화 장면과 비슷한 대사가 오가면서 과도한 성 행위가 노출되었다. 우리 영화계의 금기라고 여기는, 여자 배우의 음모까지 보였다. 그런 성 행위 노출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보기를 중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도 노골적인 성관련 내용이 많다. 장정일은 자기변명 같은 “『소돔 120일』은 섹스가 연속적이어서 포르노 소설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다. 그런 부분은 마광수 이상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그런 표현이 지나친 상업성의 표출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나의 무지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