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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과 시클로 - 이지상 베트남 여행기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다음 주에 베트남 할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 계획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가기로 했다. 전에 베트남에 관한 책 중 기억나는 것은 방현석의『랍스터를 먹는 시간』『하노이에 별이뜨다』와 김용옥의 『앙코르와트 월남가다』 등이다.
김용옥의 작품은 무슨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상권을 읽다가 중단하고, 방현석의 작품은 지금까지 여운이 전해지는 명작이었다고 생각된다. 오랫동안 인도차이나 반도에 머물며 쓴, 어느 작가의 기행적 수필은 아주 공허하고 뭔 소리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지나친 작가 자신의 자의식이 많이 투영되어 있어, 직접 여행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뜬 구름 잡는 격이어서 실제로 마음에 와 닫지를 않았다. 이것은 여행을 아무리 어렵고 특이하게 많이 하고, 수많은 자료를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글발이 밑받침이 안 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원론적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비해 이지상의 『호찌민과 시클로』는 개인적으로 이런 단점을 완전히 탈피한 여행기라 여겨진다. 그래서 이 번 기회에 그의『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역시 동일 작가의 『슬픈 인도』『겨울의 심장』 『실크로드 여행』 『길위의 천국』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등을 섭렵하여 하는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저자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몇 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길에 나선다. 베트남 여행은 1993년부터 2005년 사이에 네 번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을 몇 년 묵혀두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필이 와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여행기를 보면, 어느 책이든지 월남전에 파병된 우리 한국군의 무고한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회의하고 자책하는 부분이 반드시 나온다. 피아간 생명을 담보로 한 전투에서 평화스러웠던 마을을 화염 방사기를 이용해서 철저히 파괴하고 살육했다고 현지인들은 분노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의 경우 미국에서는 가해자 미군이 약간의 처벌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명확히 규명된 적이 없다고 한다. 역시 그 당시의 총책임자 채명신 장군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단호히 부정한다고 한다. 글쎄, 그 당시 군대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라 믿기는 좀 그렇지만 말이다. 방현석은 우리 군이 미국의 용병으로 명분 없는 전쟁에 개입하여 인간의 잔악상을 보여주었다고 한탄 한다. 반면에 이 책의 저자 이지상은 옆에서 동료가 총 맞고 쓰러지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전쟁으로 재미를 보고 그래서 전쟁을 더 부추기는 무기거래상과 정치하는 우두머리를 비난하고 책임을 지운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나가야한다고 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성, 베트남도 캄보디아에 침공해서 똑 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한다.
“도대체 피해자와 가해자를 그 지옥 같은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범은 누구였나? 생각할수록 전쟁을 일으킨 저 바다 건너의 정치꾼과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군수품업자들에게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안에 잠재한 악마성이 두렵기 그지없다.”(181쪽)
분단 시 사이공이라고 불렀던 곳은 호찌민 시로, 수도는 하노이라고 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 할룽베이는 북쪽 하노이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자의 말로는 처음 갔을 때와 매우 다르다고 하는데, 어느 곳이든지 개방되고 관광지가 되면 자연의 색채가 점점 없어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시차를 두고 하노이를 방문한 저자는 상업화되어가고 각박해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할룽베이는 완전히 유명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린다고 하니 두려움마저 든다.
공산화 되었던 하노이는 남쪽 사이공에 비해 빈곤이 더하다고 한다. 북쪽의 관리들이 점령자로서 경직된 마인드를 가지고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인 부패와 비리의 늪에 빠져 비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고 하니, 그것이 진정 통일의 목적이었을까. 그래서 저자는 실용적 경제 발전을 통하여 파이를 키우고, 그 다음에 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많이 듣던 말이 아닌가 한다. 이래저래 이론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내 애를 낳거든 아빠는 안케 패스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었노라”(189쪽)고 부인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남긴 후,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기어가다 적이 쏜 소총에 전사했다는 맹호부대의 용사의 절규가 옆에서 바로 들리듯이, 상세히 묘사한 전투 장면이 있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인식되어온 베트남 군인들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전쟁의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저자가 북베트남 병사들이나 베트콩들이 쓴 수기나 소설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이들이 항상 전투 의지에 불탔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도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힘들어했고, 고통스러워했으며, 가끔은 회의했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소개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세계에서 베트남 깡패가 제일 무섭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호주에서도, 러시아에서도 그들이 가장 악랄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러시아 여행할 때 들은 이야기인데, 모스크바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무시하는 상점이 있었는데, 조금 있다 그들이 몰려와서 그 곳을 박살을 냈다고 한다. “무서운 애들이다.”라고 말하며 “하긴 중국, 프랑스, 미국과 싸워 독립을 지킨 친구들이니.”(275쪽)라는 작가의 코멘트는 씁쓰레하게 만든다.
이 번 나의 여행은 북쪽 하노이와 할룽베이 및 캄보디아를 둘러보는 것으로 남쪽의 구찌 터널이나 우리 부대가 주둔했던 중부 지방은 볼 수가 없다. 어차피 패키지니 더욱 제약적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나는 언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내 마음대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