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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군대를 제대하고, 면 소재지에 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에 그렇게 웅장하고 빛났던 학교 교사가 작고 초라하게 봄의 햇살을 맞으며 말없이 서 있었다. 서울에 있는 큰 경기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던 운동장은 손바닥만 했다. 거기서 불행하고 때로는 행복했던 유년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 책 옮긴이의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유년 시절이라도 성인되어 되돌아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그리워지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의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언듯 생각나는 것만 적어 보면, 김주영의『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문열의『변경』,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어둠의 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의뭉스러운 문체와 작가의 실제 체험이 녹아 있는 김주영의 소설과 이데올로기의 슬픈 역사를 조명한 김원일의 『노을』등이 감명 깊었다. 이문열의『변경』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처절한 가난과 외로웠던 어린 영혼의 슬픈 이야기에 이끌려 10권이나 될 성 싶은 대하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재밌는 세상』의 끝 부분을 읽으면서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생각했다. 그것은 빌 브라이스가 ‘월러비’ 와‘제드’라는, 이름 하여 ‘선더볼트 키드’라는 친구들과 극장에서 악동 짓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50년대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시골의 가설극장도 이런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빌은 성인 영화를 관람하려고 갖은 꾀를 다 부리며 몸살을 앓는데, 우리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는 글을 본 기억을 더듬으며 사람 사는 것 다 그러하듯이 동서양이 비슷하다는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살충제를 뿌리는 차가 오면 아이들이 하얀 DDT를 뒤집어 쓰며 차 뒤를 죽기 살기로 따라다니는 장면은 과거의 우리에 실루엣이다.
미국과 우리와의 경제적 차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활 용품 등의 구체적 실례가 나와 자연적으로 비교가 되어 더욱 실감났다. “1951년 즈음에 약 90퍼센트의 미국 가정에 냉장고가 있었다. 4분의 3의 가정에 세탁기와 전화기, 진공청소기, 가스나로가 있었다. ”(16p) 그런데 이때에 우리는 전쟁 중이라 온 나라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빌 브라이슨을 연속해서 두 권 읽게 되었다. 먼저 영국 신문사의 요청으로 쓴 『발칙한 미국학』칼럼을, 그 다음이 『재밌는 세상』이다. 빌 브라이슨의 작품은 모두 재미와 웃음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그것이 큰 장점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내가 접한 그의 작품을 구태여 순위를 생각해 본다면 이렇다. 우선 『나를 부르는 숲』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으로 『재밌는 세상』, 『발칙한 유럽산책』『발칙한 미국학』의 나열 순이다.
빌 브라이슨의 어머니와 달리 세 외삼촌은 약간 특이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었나 보다. 빌 브라이슨이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그렇게 묘사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빌의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서로 눈을 찌르는척하는 놀이를 하고 삶의 원기와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그들을 ‘세 똘마니’라고 불렀다. 바로 이어지는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해도 되나. “내가 봐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3형제 였다. 그들은 그 조그만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어쩌면 침대까지 함께 썼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라도 밖에서 일하거나, 빈둥대더라도 밖에서 한참 동안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음에 후속 설명 없이 바로 다른 내용의 문장이 시작된다. 삼사십 대의 성인 남자가 거의 방에서만 있었다는 모양이다. 큰 외삼촌은 사실혼 관계의 여자가 있었다고 나중에 알려졌는데 서로 약간 모순되는 내용이다.
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을 읽는 내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관용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 자리에서 작살을 내고 싶은 쳐다보기도 싫은 아이들이 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열악한 사회 여건도 한 몫 했으리라 믿는다. 다시 말하면 한 치 양보도 없는 ‘성적 지상주의’와 ‘학력사회’가 효율성을 내세워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빌 브라이슨이 온갖 악동 짓을 다하고, 그를 담당한 진로 교사도 넌더리를 내며 그의 미래에 대해 아주 절망을 예감했다. 고등학교도 중병에 걸린 동료보다 더 많은 결석을 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졸업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그는 사악한 인간들의 소굴인 교도소에서 호모들의 제삿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과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영국 부인을 얻어 성실한 가장 역할을 하면서 신문 기자로 20년을 보냈다. 또한 그는 전 세계에서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를 내어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청소년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무조건 처벌하고 응징하며 포기하기 보다는 끈기 있게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