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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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소개하는 책이나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담을 담은 책을 몇 권 읽었지만 빌 브라이슨의 미국에 대한 접근은 색다르고 흥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에 숙박업소는 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호텔을 빼놓고는 ‘여인숙’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모텔이라는 말은 90년대 이후에 들어 쓰이지 않았는가 싶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1950년경이 되어서야 모텔이 일반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것에 비에 상당히 늦게 차용되었다고 본다.   ‘모터’와 ‘호텔’이라는 단어가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이러 저리 궁리하던 끝에” 모텔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빌 브라이슨이 호칭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격식을 차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미국적인 방식이 내 인내심을 시험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체로 이런 대화 방식을 좋게 생각한다.(88p)"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영국과 미국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보다. 그렇게 자유스러운 나라도 듣기에 거북하고 무례한 호칭 문제의 민감함이 존재하니 굳이 우리의 아주 까다로운 높임법에 대해서 굳이 외국인에게 곤란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인이면서도 20년의 객지 생활로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오늘 날의 미국을 조명한다. 칼럼 형식이라 도막 난 글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반면, 여러 미국의 여러 분야의 생활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점도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미국 생활에서 부딪치는 낯 설은 문화에 주로 불편한 시각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소한 이발소 에서의 생긴 일부터  관료사회의 불편, 크리스마스 보내기의 차이, 자동차 전용 극장, 마약, 이민 등 생생한 오늘의 미국을 볼 수 있다.

  단순히 미국의 생활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나는 이 책을 흥미 있게 끝가지 잡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글재주가 이 책에서도 빛난다. 과장과 변형이 그 사실을 더욱 부각시키고, 반어와 풍자가 우리를 미소 띠게 만든다. 더욱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다가 갑자기 반전을 이루는 장면은 폭소를 자아나게 한다.

  미국 사회보장국의 불편한 행정 서비스를 비판하는  칼럼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빌이 전화를 거니 “ 지금 통화량이 많아 상당사와 통화하실 수 없으니 짜증나는 음악을 들으시며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니 전화벨이 정확히 270번 울린 뒤 진짜 사람 목소리가 나왔다.”(87p) 

  『나를 부르는 숲』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고 미국에 가보지 못한 나에게 여러 정보를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굳이 구체적 지적은 하지 않겠지만 이런 저런 번역상의 약간의 문제점이 보인다. 내가 잘 못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느 쪽에서는 반 갈호를 한 쪽은 빼놓아 눈에 거슬렸고, 빌이 공항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치약이 튜부에 남아 있을 수 도 있다”는 부분은 아무리 궁리해도 뜻이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미국의 속담이나 격언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문제가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크게 방해가 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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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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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면 소재지에 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에 그렇게 웅장하고 빛났던 학교 교사가 작고 초라하게 봄의 햇살을 맞으며 말없이 서 있었다. 서울에 있는 큰 경기장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던 운동장은 손바닥만 했다. 거기서 불행하고 때로는 행복했던 유년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 책 옮긴이의 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유년 시절이라도 성인되어 되돌아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그리워지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의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언듯 생각나는 것만 적어 보면, 김주영의『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문열의『변경』,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어둠의 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의뭉스러운 문체와 작가의 실제 체험이 녹아 있는 김주영의 소설과 이데올로기의 슬픈 역사를 조명한 김원일의 『노을』등이 감명 깊었다. 이문열의『변경』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처절한 가난과 외로웠던 어린 영혼의 슬픈 이야기에 이끌려 10권이나 될 성 싶은 대하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재밌는 세상』의 끝 부분을 읽으면서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생각했다. 그것은 빌 브라이스가 ‘월러비’ 와‘제드’라는,  이름 하여 ‘선더볼트 키드’라는 친구들과 극장에서 악동 짓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50년대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시골의 가설극장도 이런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빌은 성인 영화를 관람하려고 갖은 꾀를 다 부리며 몸살을 앓는데, 우리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는 글을 본 기억을 더듬으며 사람 사는 것 다 그러하듯이 동서양이 비슷하다는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살충제를 뿌리는 차가 오면 아이들이 하얀 DDT를 뒤집어 쓰며 차 뒤를 죽기 살기로 따라다니는 장면은 과거의 우리에 실루엣이다.

  미국과 우리와의 경제적 차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활 용품 등의 구체적 실례가 나와 자연적으로 비교가 되어 더욱 실감났다. “1951년 즈음에 약 90퍼센트의 미국 가정에 냉장고가 있었다. 4분의 3의 가정에 세탁기와 전화기, 진공청소기, 가스나로가 있었다. ”(16p) 그런데 이때에 우리는 전쟁 중이라 온 나라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빌 브라이슨을 연속해서 두 권 읽게 되었다. 먼저 영국 신문사의 요청으로 쓴 『발칙한 미국학』칼럼을, 그 다음이 『재밌는 세상』이다. 빌 브라이슨의 작품은 모두 재미와 웃음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그것이 큰 장점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내가 접한 그의 작품을 구태여 순위를 생각해 본다면 이렇다. 우선 『나를 부르는 숲』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으로 『재밌는 세상』, 『발칙한 유럽산책』『발칙한 미국학』의 나열 순이다.

 빌 브라이슨의 어머니와 달리 세 외삼촌은 약간 특이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었나 보다. 빌 브라이슨이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그렇게 묘사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빌의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서로 눈을 찌르는척하는 놀이를 하고 삶의 원기와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그들을 ‘세 똘마니’라고 불렀다. 바로 이어지는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해도 되나. “내가 봐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3형제 였다. 그들은 그 조그만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어쩌면 침대까지 함께 썼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라도 밖에서 일하거나, 빈둥대더라도 밖에서 한참 동안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음에 후속 설명 없이 바로 다른 내용의 문장이 시작된다. 삼사십 대의 성인 남자가 거의 방에서만 있었다는 모양이다.  큰 외삼촌은 사실혼 관계의 여자가 있었다고 나중에 알려졌는데 서로 약간 모순되는 내용이다.

  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을 읽는 내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관용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 자리에서 작살을 내고 싶은 쳐다보기도 싫은 아이들이 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열악한 사회 여건도 한 몫 했으리라 믿는다. 다시 말하면 한 치 양보도 없는 ‘성적 지상주의’와 ‘학력사회’가 효율성을 내세워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빌 브라이슨이 온갖 악동 짓을 다하고, 그를 담당한 진로 교사도 넌더리를 내며 그의 미래에 대해 아주 절망을 예감했다. 고등학교도 중병에 걸린 동료보다 더 많은 결석을 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졸업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그는 사악한 인간들의 소굴인 교도소에서 호모들의 제삿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과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영국 부인을 얻어 성실한 가장 역할을 하면서 신문 기자로 20년을 보냈다. 또한 그는 전 세계에서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를 내어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청소년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무조건 처벌하고 응징하며 포기하기 보다는 끈기 있게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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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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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카니스탄의 두 번째 소설을 읽게 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들이다. 그는『연을 쫓는 아이』로 성공을 거두었고 두 번째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한다.  번역 후기에 보니, 전자의 작품보다 이 작품이 문학성이 가미되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특이한 배경 설정 등 전자의 작품이 더 낮다고 생각한다. 

 ‘카불’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9.11테러가 아닌가 한다.  부시가 오사 빈 라덴을 잡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여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여 초토화 시킨 사건을 말한다.  방송에서도 이 책의 내용에도 일부 나오지만 큰 불상을 파괴하는 장면을 방영한 적도 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이유는 다르지만 마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 지배의 잔재를 없앤다고 중앙청인가를 없애는 무모한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노무현 정권 말기에 선교를 위해 막무가내로 들어갔던 기독교인들이 인질로 잡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사건의 중심의 도시가 ‘카불’이다.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알라를 믿는 이슬람교도들은 일부는 과격하지만 대부분이 선하고 순수하다는 한다. 공감이 간다.  원리주의로 알려진 탈레반들과 보통 이슬람교도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된다. 생각이나 행동 면에서. 아무리 자기들의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도 일단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생존을 우선시해야 된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는 무리를 지어 인종 별로 파를 나누어 머리가 터지게 싸우는 내용이 끔찍하게 많이 나온다.   자기들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종교를 빙자하여 학살하고 착취하며, 법을 자기들 멋대로 적용하면 아무리 좋은 국가를 만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특히 남존여비는 종교와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도에 지나치다. 우리의 유교주의 시대인 조선 시대 보다 더 후진적이다. 남자를 대동하지 않고 여자만은 어느 곳도 갈 수 없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공연히 용납된다.  이 소설 내용은 차라리 소련이 점령했을 때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던 걸로 묘사된다. 

아무튼 이 소설은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가서 두 여자의 기구한 운명이 전개된다.  불행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태어난 소녀 ‘마리암’의 슬픈 삶의 역사가 한 축이고 항상 이슬람권 여자들이 써야하는 부르카만큼이나  어둡고 희망없는 ‘라일라’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날 줄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특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놀란 사실은 이슬람권 여성의 열악한 삶에 대해서다.  이슬람권에 다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아프카니스탄 여성 인권에 대해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처참하다. 아무리 지고지선의 목표가 있더라도 국가가 국민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면서 까지도 그것을 추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소설을 예로 들면 ‘라일라’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병원이 군인들을 위해 제공되고 출산이라도 여성은 시설이 더욱 낙후된 병원을 갈 수 밖에 없다. 탈레반은 NGO의 모든 약품을 거절하여 병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라일라’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의사도 ‘부르카’를 입고 수술하도록 강요하여 몰래 벗고 하다가 탈레반이 오면 재빨리 입어야하는 코미가 연출된다.

  이슬람권 소설은 의외로 많은 흥미를 같게 했다.  처음으로 이슬람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많은 호기심과 생경한 삶의 방식이 소설에 빠져들게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이슬람을 소개한 책을 몇 권 읽은 경험이 있었지만,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만큼 느낌의 울림이 적었다. 작가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수려한 문체가 뒷받침이 되고 실제로 본인이 경험하고 들은 내용이 자가 발전 확대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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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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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살에 첫 시를 쓰고 열세 살에 소설을 발표한 문학 신동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은 나의 독서 성향에 부합되는 작품이다. 제 아무리 서스펜스와 기막힌 스릴러를 가미했다 하도라도 글발이 따러 주지 않으면 흥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장 구사력도 뛰어나고 특히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 학구적이다.  “플라톤의 시적 광기”니 “디오니소스적 광란 상태”니 하는 철학 연관의 언급은 뭔지는 모르지만 지적 욕구를 슬쩍슬쩍 자극하여 이 소설에 빠져들게 한다.

 의대를 다니다 부모님의 무관심을 뒤로하고 햄든 대학의 고전어과로 진로를 바꾼 리처드. 그는 줄리언 모로 교수 밑에서 5명의 학생들과 공부하게 되는데 그들의 대학 생활이 요모조모로 리얼하게 그려진다.

 특히 리처드는 자의식이 강한 내향적인 학생이다.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자주 수면제로 잠을 청 한다. 말하자면 자기 신경의 확대 혹은 과장된 자기 혐오증에 시달린다. 자기 입으로 뱉은 험한 말, 혹은 어리석은 말이 그 이상으로 명징하게 그를 겨냥하고 되돌아온다. (본문84)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되살아나 스스로를 옥죄면서 강한 자의식으로 강화된다.


  내용에 비해서 책 표제 제목이 너무 평이하다. 『배신의 계절』로 착각되기도 한다. 좀 더 중량감 있으면서도 몸부림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음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청춘의 함정』, 『젊음의 원죄』, 『우정과 배신』등은  어떨는지.

 이 소설은 고전 형식을 띠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면서 서술자가 직접 독자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두 살인 사건을 두고 주인공을 비롯하여 가담 학생들이 각각의 캐릭터로 갈등하고 설왕설래하는 묘사적 서술이 긴장감을 더 하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들은 어쩌면 살인을 한 파렴치범인데도 밉지가 않고 잡힐까봐 조마조마 하다는 것이다.  범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들의 완전 범죄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아무튼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광범위한 배경 설명과 심리 묘사로 점점 조여들어 가는 전개가 숨이 막히게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햄든 대학이 소재한 곳은 겨울 추위가 엄청나다.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 때문에 학교의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혹한 묘사는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서늘하게 리얼하다. 전적으로 이런 날씨 때문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종종 약물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상 많은 그리스어 숙제에 시달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의식에서 오는 불면을 술이 아니면  약물을 복용한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한 몫을 했으리라.

  등장인물 중 그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헨리’라는 자가 마음에 와 닿는다. 지적이며 상당히 공부도 잘하고 생각이 깊다. 특이한 면은 긴장을 떨치려 하거나 신경과민이 자기를 흔들면 그리스어(외국어)로 자기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펠라이우 부스 메가스 에인 아이데이.(저승 가면 황소 한 마리가 단돈 한 닢)”라고 중얼 거린다. 고전시대 사람은 지옥에서 물가가 싸다고 믿었던 모양이라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점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좀 더 관대하게 대했으면 한다. 그들의 실수를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들이 젊음때문에 저질를 수 있는 몇 번의 실수로 그들을 재단하지 말고 규졍한면 안된다는 것이다. 젊은 혈기로 인한 일시적 잘못을 관용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2권을 절반 정도 읽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다. 과연 어떻게 해결 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니 ‘이게 무슨 본격 추리 소설이니’ 하면서 폄하하는 글도 있는데, 성향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살인 동기에 대한 충분하고 광범위한 설명과 설득력 있는 개연성이 계속 읽지 않으면 못견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청춘들이 어떻게 좌절하며 극복하고 수궁해 나가는 가를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는 작가의 문체가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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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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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한얀 가면이 그려져 있는 『이누가미 일족』은 이미 60여 년이 지난 책이다. 국내에 소개됐던 『옥문도』,『팔묘촌』,『악마의 공놀이』와 더불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요코미조의 소개된 작품은 읽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누가미 일족』만큼이나 재미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품이 60여 년 전 나왔다니 경이롭다. 출판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수준이 우리 보다 경제와 더불어 훨씬 앞서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자주 그들에 대해서 감탄할 때가 있다.  일본은 한 번 밖에, 그것도 여행 삼아 가 본적 밖에 없고, 그 나라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대단하고 역량 있는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경제로는 10년이 우리가 일본에 뒤졌다고 하지만, 문화적인 면으로는 30여 년은 뒤졌다고 한다면 너무 자국에 대한 비하인가. 특히 책 출판에 대해 좁혀 본다면 이런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세분해서 추리 소설 면에서만 보아도 우리는 변변찮은 작품 하나 없다. 김성종인가 하는 분이 쓴 몇 편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도 신문에 연재해서, 특성상 본격 추리인지 음란 소설 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애매한 성과물로 기억된다. 그래도 근래에 와서는, 우리의 장르 소설이 나는 제목만 알고 있는 정도지만, 많이 읽히는 수작이 있다는 것은 약간의 위로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류를 제외하더라도 일본의 많은 책이 번역되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중국의 삼국지에 대한 평전만 하더라고 일본 사람들의 역작이 대부분이니, 그들의 독서 인구와 작가 층이 얼마나 두터운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름만 들어도 짜증나는 전모 여사가 ‘일본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들고 있는 것은 눈을 고정시킬 때가 마땅찮아서 그렇다.’는 르포를 본 적이 있다. 극히 소수를 일반화시킨 것으로 확신한다. 명사라는 인간이 이런 편견이나 가지고 있으니, 언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런지.

  요약하면 이 소설은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와 의외의 유언장으로 피를 부르는 내이 주를 이룬다. 어느 스릴러나 등장인물 몇 명은 죽으며, 그것도 얼마나 잔혹하게 죽느냐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다반사로 다루어진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연쇄 살인 사건이 어떤 옵션에 의해서 시신을 처리하는가를 중요 내용으로 다루어진다. 즉 이누가미 가문의 부를 상징하는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키쿠(국화) 모양으로 살인이 이루어진다. 아니 시체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냥 시신이 엎어져 있는 것보다 흥미는 있지만 약간은 작위적인 감이 들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탄탄한 줄거리와 빈틈없는 복선, 적재적소의 장치는 이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또한 일본 특유의 자극적인 살인은 소름이 돋도록 독자를 긴장시킨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궁의 연쇄 살인 사건이 계속되면서, 흐름을 따라 잡으려고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설로 강력 추천할 수 있다.

 허나 옥의 티라고 할까. 하얀 가면을 쓰고 전쟁에서 돌아온 첫 째 손자 ‘이누가미 스케키요’. 정체를 확신 할 수 없는 이 가면의 인물이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의 정점에 놓여 있다. 그는 독자를 궁금증의 계곡으로 몰아넣는다. 미래의 독자를 위하여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가면 속의 인물을 확인하는 과정이 개연성과 필연성에 있어서 상투적이다. 이 부분에서 좀 더 세련된 처리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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