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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섯 살에 첫 시를 쓰고 열세 살에 소설을 발표한 문학 신동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은 나의 독서 성향에 부합되는 작품이다. 제 아무리 서스펜스와 기막힌 스릴러를 가미했다 하도라도 글발이 따러 주지 않으면 흥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장 구사력도 뛰어나고 특히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 학구적이다. “플라톤의 시적 광기”니 “디오니소스적 광란 상태”니 하는 철학 연관의 언급은 뭔지는 모르지만 지적 욕구를 슬쩍슬쩍 자극하여 이 소설에 빠져들게 한다.
의대를 다니다 부모님의 무관심을 뒤로하고 햄든 대학의 고전어과로 진로를 바꾼 리처드. 그는 줄리언 모로 교수 밑에서 5명의 학생들과 공부하게 되는데 그들의 대학 생활이 요모조모로 리얼하게 그려진다.
특히 리처드는 자의식이 강한 내향적인 학생이다.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자주 수면제로 잠을 청 한다. 말하자면 자기 신경의 확대 혹은 과장된 자기 혐오증에 시달린다. 자기 입으로 뱉은 험한 말, 혹은 어리석은 말이 그 이상으로 명징하게 그를 겨냥하고 되돌아온다. (본문84)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되살아나 스스로를 옥죄면서 강한 자의식으로 강화된다.
내용에 비해서 책 표제 제목이 너무 평이하다. 『배신의 계절』로 착각되기도 한다. 좀 더 중량감 있으면서도 몸부림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음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청춘의 함정』, 『젊음의 원죄』, 『우정과 배신』등은 어떨는지.
이 소설은 고전 형식을 띠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면서 서술자가 직접 독자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두 살인 사건을 두고 주인공을 비롯하여 가담 학생들이 각각의 캐릭터로 갈등하고 설왕설래하는 묘사적 서술이 긴장감을 더 하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들은 어쩌면 살인을 한 파렴치범인데도 밉지가 않고 잡힐까봐 조마조마 하다는 것이다. 범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들의 완전 범죄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아무튼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광범위한 배경 설명과 심리 묘사로 점점 조여들어 가는 전개가 숨이 막히게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햄든 대학이 소재한 곳은 겨울 추위가 엄청나다.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 때문에 학교의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혹한 묘사는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서늘하게 리얼하다. 전적으로 이런 날씨 때문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종종 약물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상 많은 그리스어 숙제에 시달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의식에서 오는 불면을 술이 아니면 약물을 복용한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한 몫을 했으리라.
등장인물 중 그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헨리’라는 자가 마음에 와 닿는다. 지적이며 상당히 공부도 잘하고 생각이 깊다. 특이한 면은 긴장을 떨치려 하거나 신경과민이 자기를 흔들면 그리스어(외국어)로 자기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펠라이우 부스 메가스 에인 아이데이.(저승 가면 황소 한 마리가 단돈 한 닢)”라고 중얼 거린다. 고전시대 사람은 지옥에서 물가가 싸다고 믿었던 모양이라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점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좀 더 관대하게 대했으면 한다. 그들의 실수를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들이 젊음때문에 저질를 수 있는 몇 번의 실수로 그들을 재단하지 말고 규졍한면 안된다는 것이다. 젊은 혈기로 인한 일시적 잘못을 관용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2권을 절반 정도 읽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다. 과연 어떻게 해결 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니 ‘이게 무슨 본격 추리 소설이니’ 하면서 폄하하는 글도 있는데, 성향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살인 동기에 대한 충분하고 광범위한 설명과 설득력 있는 개연성이 계속 읽지 않으면 못견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청춘들이 어떻게 좌절하며 극복하고 수궁해 나가는 가를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는 작가의 문체가 보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