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카니스탄의 두 번째 소설을 읽게 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들이다. 그는『연을 쫓는 아이』로 성공을 거두었고 두 번째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한다.  번역 후기에 보니, 전자의 작품보다 이 작품이 문학성이 가미되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특이한 배경 설정 등 전자의 작품이 더 낮다고 생각한다. 

 ‘카불’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9.11테러가 아닌가 한다.  부시가 오사 빈 라덴을 잡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여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여 초토화 시킨 사건을 말한다.  방송에서도 이 책의 내용에도 일부 나오지만 큰 불상을 파괴하는 장면을 방영한 적도 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이유는 다르지만 마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 지배의 잔재를 없앤다고 중앙청인가를 없애는 무모한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노무현 정권 말기에 선교를 위해 막무가내로 들어갔던 기독교인들이 인질로 잡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사건의 중심의 도시가 ‘카불’이다.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알라를 믿는 이슬람교도들은 일부는 과격하지만 대부분이 선하고 순수하다는 한다. 공감이 간다.  원리주의로 알려진 탈레반들과 보통 이슬람교도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된다. 생각이나 행동 면에서. 아무리 자기들의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도 일단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생존을 우선시해야 된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는 무리를 지어 인종 별로 파를 나누어 머리가 터지게 싸우는 내용이 끔찍하게 많이 나온다.   자기들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종교를 빙자하여 학살하고 착취하며, 법을 자기들 멋대로 적용하면 아무리 좋은 국가를 만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특히 남존여비는 종교와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도에 지나치다. 우리의 유교주의 시대인 조선 시대 보다 더 후진적이다. 남자를 대동하지 않고 여자만은 어느 곳도 갈 수 없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공연히 용납된다.  이 소설 내용은 차라리 소련이 점령했을 때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던 걸로 묘사된다. 

아무튼 이 소설은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가서 두 여자의 기구한 운명이 전개된다.  불행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태어난 소녀 ‘마리암’의 슬픈 삶의 역사가 한 축이고 항상 이슬람권 여자들이 써야하는 부르카만큼이나  어둡고 희망없는 ‘라일라’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날 줄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특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놀란 사실은 이슬람권 여성의 열악한 삶에 대해서다.  이슬람권에 다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아프카니스탄 여성 인권에 대해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처참하다. 아무리 지고지선의 목표가 있더라도 국가가 국민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면서 까지도 그것을 추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소설을 예로 들면 ‘라일라’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병원이 군인들을 위해 제공되고 출산이라도 여성은 시설이 더욱 낙후된 병원을 갈 수 밖에 없다. 탈레반은 NGO의 모든 약품을 거절하여 병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라일라’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의사도 ‘부르카’를 입고 수술하도록 강요하여 몰래 벗고 하다가 탈레반이 오면 재빨리 입어야하는 코미가 연출된다.

  이슬람권 소설은 의외로 많은 흥미를 같게 했다.  처음으로 이슬람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많은 호기심과 생경한 삶의 방식이 소설에 빠져들게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이슬람을 소개한 책을 몇 권 읽은 경험이 있었지만,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만큼 느낌의 울림이 적었다. 작가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수려한 문체가 뒷받침이 되고 실제로 본인이 경험하고 들은 내용이 자가 발전 확대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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