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던 어느 여름 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당시의 간단한 메모를 통하여 이제 서야 이 리뷰를 쓰고 있다. 올 여름은 나에게 많은 정신적 어려움이 있었던 때였다.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아니 어쩌면 잊기 위하여 이 책 저책 닥치는 대로 많이 읽어 썼다.

  제목이 특이해서 집어 들었던 책이 <독고다이>다. 검색해 보니, 독불장군을 뜻하는 말로 일본군 카미가제를 칭하는 특공대(特攻隊-とっこうたい/) 발음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즉 톡꼬우타이가 독고다이가 된 것이다. 부연하자면 ‘카미가제’는 전투기 조종사가 혼자 가서 항공모함에 비행기 머리를 박은 데서  유래되었다.
요즘은 혼자 스스로 돌아다니는 싸움꾼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기호 한 뼘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한국일보에 연재 되었던 글이라고 한다. 부제에 걸맞게 아주 짧은 저자의 단상을 재미있으면서 유니크하게 실어 놓았다. 이런 식이다.
 
“ 시골 할머니를 뵈러 시골 갔는데, 안 계셔서 읍 약 파는 곳에 가서 ‘황간난’할머니 하니 10여명의 할머니가 일어섰다.” (할머니의 이름, 10쪽)
 
이름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발로이다. 또한 사회적 존재로의 인식에 방편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자기 이름 때문에 놀림감이 되고 상처를 밭는다.  아주 오래 전에 아들을 나면 학식 있는 자를 찾아가 돌림자로 잘 지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 어른들이 장날 볼일 볼 것 다보고, 거나하게 취해서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다. 아무거나 대충, 자식들이 잘 죽으면, 붙든다고 해서 ‘붙둘이’, 기괴하게도 ‘귀순이’등 요지경 속이다. 자신의 간난신고를 표현하기 위해선지 ‘간난이' 도 많았다.

 부모가 그러니 면사무소 직원도 별 성의 없이 제 마음대로니 나의 장모님은 호적 연세가 더 높다. 또한 아무렇게나 작명하면 명이 길다고 해서, 연배인 형을 ’돼지, 돼지‘하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늦은 밤 해장국 집에서 맞는 파인애풀 장사를 통해서 팍팍한 삶을 전해주고 있다. “새벽이지만 모두 만만치 않은 삶들 살아가고 있었다.”(18쪽)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늙지 않음의 ‘동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비정규직인 아내의 퇴직에 대해 언급하여 언급한다.(31쪽) 저자 자신의 팍팍한 삶이 아내의 주름살로 얼룩진 얼굴의 묘사를 통해 슬프게 한다.  동안이라는 말이 사치에 불과할 정도로 먹기 살기에 찌든 우리의 서민의 팍팍한 삶이 가슴 먹먹하게 한다.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냥 불이 들어온 줄 알았죠’의 ‘ 찜질방의 추억’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또한 반전도 있다. 글쓴이는 아파트의 풍물 시장 엿장수의 북소리에 경기를 하는 아이를 보고, 항의 차 찾아간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치마와 야한 화장을 하고 노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라고 중얼 거리며 발장단을 맞추고 서 있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구차하지만 위대한 것이고, 어쩌면 치사한 때도 있지만 거룩한 것이다.

이 책의 압권은 축구 시합에서 전반전 종료 후 이온 음료를 수분을 보충하는 대시 ‘카스’나 ‘참이슬’로 보강하는 21쪽의 ‘시인 축구팀’이다.  

촌철살인의 기지로 시대를 걱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성찰을 기대하면서도 기분이 안 나쁘게 촉구한다. 그것도 자발적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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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vol.1 - 모든 꿈이 조각난 여자
야마다 무네키 지음, 지문환 옮김 / 엠블라(북스토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보면 가볍고 달착지근 하기만한(완전히 개인적인 견해) 일본 소설을 읽지 말자고 다짐해 보았지만, 오늘도 딸이 사온 이 책을 집어 들고 말았다. 조금 만 조금 만 하다가 오전 내내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불안하고 혐오스런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재미있었다. 간혹 건너뛰기도 했지만,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꼬여만 가는 마츠코의 슬픈 인생사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제목 자체가 특이 했다. 얼마나 더러운 삶을 살았으면 좀 더 완화된 표현인 ‘기구한 마츠코의 일생’도 아니고 혐오스럽기 까지 했을까. ‘혐오스럽다’는 말은 마츠코가 자발적으로 막장 인생을 살아서, 마치 사람들이 ‘혐오시설’피하듯 저주하는 인생을 뜻하는가?  아니면 마츠코가 선량한 삶을 살아 보려고 노력했는데, 주위 환경이 따라주지를 않았는가? 

 전자와 후자가 반반이라고 본다. 즉 마츠코 주변 사람들의 모함과 몰이해가 빗어내 결과이다. 가족 구성원이 그녀의 한 번 잘못을 용서하고 포용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마츠코 가족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노대라가 내뱉은 말을 생각해보면 미움만이 되살아났다. 역시 나는 이상한 것일까? 자기중심적? 충동적? 지극히 좁은 대인관계? 정말로 그 말이 맞는 것일까? 나는 모자란 인간일까? 배려가 없는 인간일까?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2권 92쪽) 의 마츠코의 독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보편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또한 우유부단하여, 적극적으로 자기의 삶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여러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고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마츠코의 인생에 있어 비극과 불행이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를 동정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다음에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꼬일까. 아니면 여기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인가 생각하다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잡으면 단순에 읽게 되는 서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침없다. 짧은 단문으로 속도감이 있다. 수학여행 답사로부터 시작된  꼬리를 문 연속 불행속의‘빗나간 마츠코의 일생’

 그러면 마츠코의 불행한 삶에 마침표를 짝은 자는 누구인가? 누가, 내장이 파열될 정도로 폭력을 써서 마츠코의 삶을 끝장낸 것인가? 단 한 번의 평온한 삶을 살지 못한 마츠코의 불행한 일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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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에서 세상을 읽다
김상욱 지음 / 나라말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시 읽기 초보자의 따라 하기>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數三個)읜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황동규, 『열하일기』, 지식산업사>

  이 시는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차가운 겨울날의 항구의 모습과 눈송이를 통해 차분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다. 화자의 감정이나 사상은 배제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묘사로 일관하여 한 편의 그림 같은 인상을 준다. 

김상욱 교수의 해석 (51쪽): 항구는 ‘기항지’라는 제목에서처럼 머무름의 이미지, 안식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정반대로 오히려 떠남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화자의 지친 일상, 그 일상과 결별하고자 하는 은밀한 기도가 여실히 전해져 옵니다. ‘길게 부는 한지의 바람’는 도란거리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법한 집조차 이곳에서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하고 있습니다. 밤하늘은 낮고 음울하게 매달려 있고, ‘긴 눈’은 항구를 더욱 황량하고 삭막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지전(紙錢)을 만지작거리다 구겨 버리는 것으로 현실의 질서로 벗어나려 하고,  욕망을 뜻하는 ’담배‘ 꺼버려 타성과 욕망을 버리고 비로소 ’조용한 마음‘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감해할 수 있데 되는 것입니다.

화자는 막배로 내려가서야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곧 누더기 같은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적 화자는 관념적인 열망으로 벗어나 새로운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습니다. 용골들이 ‘모두’동경의 몸짓으로 그가 떠나고자 했던 세계를 향해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용부분)

 이를 통해 시적화자는 자신을 그토록 지치게 만들고 상처 입게 만들었던 이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되돌아보고 있다. 즉 ‘항구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배’를 통하여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버텨 이겨내는 견고함의 의미를 화자에게 떠올려 준다.
그로부터 비로소 화자의 암울한 의식은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정화되고 오랜 방황을 끝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수련한 문장과 감성어린 글 솜씨로 우리를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의 시 감상문이 더 시적(詩的)일 때도 있다. 이런 미문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로 우리를 바싹 다가서게 한다. 허나 너무 미적인 문장으로 인하여 나 같은 초보자는 의미를 놓칠 수 있다. 또한 모호한 표현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힌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를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민음사>


저자는 시에 대해서, 강풍에 홀랑 날러갈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안녕한 까치집을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저 우리가 끝없이 주절대는 말들일 따름인데, 그 말들이 모여 이렇게 견고한 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니, 실로 경이가 아닐 수 없다.”(65쪽)

 “시란 녀석은 체구가 아주 쬐그마한 놈이다. 허우대 멀쑥한 놈들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떤 덩치 큰 녀석에 뒤지지 않는다. 시는 자신의 내부에 빼곡하게 한 세계를 품고 있다. 그 작은 몸피기 때문에 정교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옹골차고 실팍한 고갱이만으로 자신의 내부를 단장하여야 한다.”(83쪽)


곽재구의 <사평역>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이 내용이 전부다.

저자가 이 시에 대해, 까치집을 통해 시사하고 있는 바를 짐작해 본다.

곽재구의 이 시는, 어느 추운 겨울날 자정 무렵의 사평역의 풍경을 통해 삶의 애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즉 ‘졸고, 쿨럭이고, 말이 없고, 낯설 하고, 뼈아픔을 느끼고’의 시어로 어렵고 힘겨운 서민의 삶을 나타내며, 또한 꺼질듯하면 던져 넣는 ‘톱밥’과 싸륵싸륵 쌓이는 ‘눈꽃’은 이들의 유일한 위로의 표현이다.

‘자정이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이 되듯이 현재의 고통과 상념들이 내일이면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공감하고 위로하는 징표로 눈물을 던져 주는 것이다.

보성댁의 여름

살 찔 틈 없이 살 마를 틈도 없이
닭장 밑에서 지샌 듯 새벽같이 일어나
솔가지 꺾어 밥 짓고 마당 쓸고
조반 차리기 전 빨래하고 텃밭 매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밭으로 나가
콩밭 깨밭 고추밭 미영밭 더터
골고지에 풀매기에 북주기에 물대기에
등짝이 죄 타도록 저 호러 미쳐나다가
엉덩이에 불 붙도록 짧아진 그림자 밟으며
풀 한 짐 이고 돌아와 점심 차리고
갓난애 젖 주고 큰애는 목욕시키고
오후엔 논으로 나가 농약 치고 피사리 하고
웃논 아랫논과 물쌈 하고  물꼬 막고
논두렁 풀 베고 한 벌 두 벌 거름 주고
산그늘 내리도록 저녁별 새하얗도록
이 손이 저 손인지 저 손이 이 손인지
아 그만 세월 모르게 헤매이다가
또 풀 한 짐 이고 돌아와 저녁밥 안치고
소밥 주고 쇠똥 치우고 돼지 닭 모이 주고
사랑방의 중풍 든 노인네 똥요강도 치우고
이윽고 오밤중 밥 먹고 샘가에 나앉으면
에라 오살헐 놈은 중동 떠난 남정네
여자 속 밴댕이 속이라 해도 좋으니
그래도 그리운 것은 이역만리 서방님네.
<고재종, 『나의 애송시』, 미래사>

“시 같은 순간이 있다. 어떠한 상상력의 윤색도 없이, 그저 드러내는 것만으로 시가 되는 참으로 시 같은 삶이 있다. 그 순간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일은 행이 되고, 연이 되고, 마침내 꽉 짜인 시간 되어, 깊은 밤 달이 뜨듯 둥드럿하게 우리네 앞에 떠 오른다.”(121쪽)

여성들의 고된 삶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간혹 TV 연속극을 자기 인생의 전범으로 삼으려는 듯 종일  TV앞에  배 깔고 자빠져 있는 여자들도 없는 건 아니다.  별 할 일 없이 외출을 밥 먹듯 하고, 집구석은 돼지우리 모양 만들어 놓는 여자들도 종종 있다. 요즈음은, 술에 취해서 비틀 거리며 대로가 좁게 느낄 정도로 나대는 여자를 자주 보게 된다. 술 먹고 주정하는 것도 남녀 평등하게 만들려는 의도인지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부들은 안 그렇다. 특히나 산업 시대의 초입에 살았던 농촌 여성들의 삶은 지난하기만 했다. 위의 시는 읽는 것만으로도 숨 가쁘고 고단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아플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이 시기의 우리의 어머니들은 위대했다.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지성사>

‘밤, 겨울 안개, 촛불, 흰 종이, 눈물’ 등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빈 집에 가두어 버린다. 사랑을 잃어버린 고통과 절망이 너무나 컸기에, 그 때의 모든 열망들은 지금은 소용이 없게 되어 눈물로 작별하고 있다.

“이제는 가엾게 되어 버린 자신의 사랑을 마음속의 ‘빈 집’에 가두어 버린다.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없도록, 사랑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고통과 함께.”(156쪽)

  이 꼭지의 글을 쓰며 저자는 줄곧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절한 비가가 그의 노래임을 알았다. ”(156쪽)

정말로 그렇다. 김광석의 노래와 이 시와 비슷한 톤과 정서가 있었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노랫말을 무작 정 적어 본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안에 가득한 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 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울까
창틀에 기다리다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오는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마음 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틀에 기다리다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오는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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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거꾸로 읽는 책 35
김상욱 지음 / 푸른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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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

“백기완은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신랄히 비판했다고 한다. 즉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술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이 새빨간 거짓마리며, 식민지 시대의 농촌을 얼토당토않게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탈과 착취가 판을 치는 가운데 어떻게 마을마다 술을 담글 수 있었겠는가. 박목월이 그렇게 본 것은 ‘그저 나그네’로 구경꾼으로 이 땅 민중의 고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86쪽)

  백기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가 꼭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터인데. 그런 마을이 있는 세상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또한 박목월은 이 시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달관(達觀)의 세계를 그리려고 하였다.

 물론 민중들이 독재와 싸우고 피 흘릴 때, 그는 한가하게 육영수 여사의 비명이나 쓰고 있었으니 백기완이 그런 말도 할만하다. 일제 때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의 저자는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도 비판적이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값싼 재롱만 피우고 있다며” 그것은 주책이라고 일갈한다. 조지훈이 최후의 선비로서 민족을 채찍질하였고, 박두진이 기독교적 부활을 노래하며 선지자의 목소리를 광야에 풀어 놓았던 것과 비교될 것이라고 말한다.(88쪽) 그런데 목월은 같은 청록파이지만 서정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서로 같은 입장으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 상황에서 목월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연 뿐이었다. 단순한 자연귀의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빼앗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의 의미를 갖는 고향이다.”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끊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널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신경림의 <목계장터>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힘든 민중들의 삶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민요와 유사한 형식의 서정시로 토속적인 시어가 정겹다. 그런데 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와 정언적(定言的) 명령법(命令法)을 쓴다는 형식이 비슷한 느낌이다. 두 시 모두 흔쾌한 권유 투로 구성돼 있어 어느 때는 혼동 된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

두 시 모두 우리의 전통 설화의 ‘견우와 직녀’를 차용해서 이미지를 형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간혹 두 시가 같은 것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도종환의 시는 최근 <담쟁이>를 빼놓고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가 대부분이다.(내가 읽은 작품) ‘사별한 아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접시꽃 당신> 비롯하여,  <인차리>의 연작, <병실에서> 등 기억나는 것만 이렇게 된다.  <인차리>는 그의 아내가 잠들고 있는 충북 청원군 가덕면의 한 지명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도종환은 그의 아내와의 사별을 주제로 한 시를 쓰면서 뜬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한 가난한 교사를 힘들게 내조하다가 병으로 죽어간 아내의 슬픈 노래. 홀로 남은 남편과 아이들의 비극적 상황이 어우러져 중앙 매체에 보도됨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도종환을 서정윤과 비교하면서 ‘닫힌 사랑, 열린 사랑’으로 설명한다. 물론 ‘열린 사랑’이 도종환이다.  도종환을 저자와 같은 전교조 해직 교사라는 동류의식으로 서정윤을 끌어들여 견강부회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웃기는 사실은 위 시에서 ‘살아 평생 옷 한 벌’ 못해 준 것이 해직 교사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학생들이 많이 애용하는, 국어샘이 만든 블로그에 나와 있었다. 사소한 문제지만, 이 시가 나온 것은 1986년이고 도종환이 해직 된 때는 1989년으로 알고 있다. 당시만 해도 교사 월급이 쥐꼬리 만 했고, 도 시인이 대학원 다니며 그의 아내가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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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가 마흔에 쓴 늙음을 경계하는 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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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칠십생애의 희로애락을 각축(角逐)하다가 한 움큼의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암연(黯然)이 수수(愁愁)롭다’ 고교 교재에 나오는, 금강산을 기행하고 쓴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이다. 아마도 모두가 이양하의 <실록예찬>과 더불어 고교 시절에 배웠으리라. 요즘 고1 학년 국어 교재에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한문 투의 글을 왜 교과서에서 배우게 하는지 불만이지만, 어쨌든  기억력이 왕성할 때 배워서 그런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한 움큼의 부토’로 존재한다니 새삼스럽게, 정말 ‘수수’롭다.  노안이 오고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썰렁하기만 연속극에도 눈물이 가물거리 증상은 지금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니라.  

 같이 근무할 때, 애증이 엇갈리는 직장 상사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퇴직한 지 불과 1년도 체 안 되어 암이 재발되어 다시 못 올 길로 떠난 것이다.     그는 본성은 착하다 못해 심약했고 재미있었던 분이었다.    그는 미식가였다.    암에 걸리고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식탐이 강했다. 대충 때우는 식의 식사는 그를 화나게 만든다.    잘 차려야 먹고 기분 좋아했다.    대식가였으며 회식 때 술은 먹지 못했지만 음식만은 철저했다.     그러더니 요즈음으로 보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저승길로 돌아섰으니 인생 허무하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그래도 누구나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어야하니, ‘늙어가면서 경계’해야 할 경구 정도는 알아 두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불혹의 나이에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다니 자기에게 철저한 자라고 할 수 있다.  (40세에 써서 50세에 증보했음)

 저자의 이런 관용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노년에 경계할 것에 대해서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소제목을 보아도 그의 노년에 대한 다짐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소제목들이다. 가장 내가 유념해야 할 것.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할 것’

  “훨씬 이전부터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실은 근래에 와서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19쪽)   아마도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통하여 많이 관대해 졌음이라. 타인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며 받아들이는 관용의 폭이 커져 갔음이라.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란 것은 어느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누구나 벽장 속에는 한 가지 불행을 넣어 두고 살고 있다. 자신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니 참고 견디며 자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푸념을 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불평만 늘어놓은 노인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평은 그늘진 느낌을 준다. 무엇이든 즐거워하는 노인에게 밝은 내움이 나는 것과 정반대인 것이다.(51쪽)

  무슨 일든지 불평하며 중얼거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냅둬도 그냥 흘러가게 되어있다. 젊은 사람과 논쟁하지 말고 침묵하라.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자식이 걱정을 끼친다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71쪽)
사업에 성공한 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전용차와 운전수 간호원을 두고 모셨지만 그 집의 노인은 건강하지 못했다. 왠지 약하디 약해 보였다, 하얀 박꽃을 연상 시켰다. 그러한 ‘행복한 노년’의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무자극이 초래하는 비건강’등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자신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독립심이 강한 자식을 마냥 좋아해서도 안 된다. 마치 교통안전 표어처럼 보이지만 그런 해이한 마음이 늙음을 재촉한다는 설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만일 걱정을 끼치는 자식을 두었다면 그 자식이 그나마 부모에게 효도할 요량으로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72쪽)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심각한 결함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그 자식 앞서 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악착같이 일하고 부지런을 떨면 더 건강해 지는 것이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것은 걱정을 끼치지 않는 자식이 아니라 걱정을 끼치는 못난 자식이다.


저자는 비록 책 내용이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평이한 말씨로 조근 조근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다.  늙어서 그러지 말라고.

공격적이지 말 것’
나이가 들면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인격이 황폐해지고 툭하면 금 새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거나 비난하는 노인도 의외로 많다.(77쪽)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마구잡이 화풀이라고 스스로에게 경계하도록 하자. 아무리 해도 관심도 공감도 느낄 수 없다면 그저 조용히 물러서면 된다. (77쪽)

호르몬의 영향인지, 늙으면 짜증을 자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격해지는 사람을 종종 본다.  큰 소리로 왕왕대는 것은, 자기의 상대방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이다. 또한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 한다.   즉 욕과 칭찬이 공존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묘지 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것’  (96쪽)
사후의 일은 걱정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이란 그땐 이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깃이다. 나의 뼈가 어디에서 어떻게 되건 이미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지금 묘를 만들어 받아본들 언젠가는 연고자 없는 외로운 혼령이 된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나  나폴레옹의 묘는 남아 있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은 참배객이 아닌 구경꾼들인 것이다. (77쪽)

얼마 전 아직 정정하신 아버지가 불러서 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말했다.  돌아가신 모친의 묘가 좋지 않으니 이장을 하고, 당신도 선산에는 안가시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년 봄에 새엄마를 비롯하여 아버지의 가묘를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첩을 보면 부처도 돌아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두 어머니의 묘를 같은 장소에 모실지 걱정이다.   나눔이 있고 기쁜 일은 막내와 딸들에게 상의하고, 꼭 이런 대사는 나랑 같이 해결하자고 하니,   우리 아버지의 장남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사용에 실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노화인 것이다. (118쪽)

그렇다. 컴 같은 것도 젊은 사람만큼은 하지 못하지만, 여간해서 안 망가지니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면 다 되게 되어 있다. 시간이 약간 더 걸릴 뿐이다. 

‘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
인간에게 일생 동안 행복감의 총량은 (당사자가 생각할 때) 모두들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전혀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불만의 정도가 강한 경우도 있고,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당사자는 불행하다. (239쪽)
 
오늘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저녁 식사로 빵 한 조각을 얻는 것은, 전 세계를 충족시킬 정도의 위대한 행복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호강에 젖은 일본의 어린아이들에게 곁들인 것도 없이 버터도 없는 빵 한 조각을 저녁 식사로 주게 되면 불만과 비참함의 극치로 여기게 된다.(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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