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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가 마흔에 쓴 늙음을 경계하는 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8월
평점 :
‘고작 칠십생애의 희로애락을 각축(角逐)하다가 한 움큼의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암연(黯然)이 수수(愁愁)롭다’ 고교 교재에 나오는, 금강산을 기행하고 쓴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이다. 아마도 모두가 이양하의 <실록예찬>과 더불어 고교 시절에 배웠으리라. 요즘 고1 학년 국어 교재에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한문 투의 글을 왜 교과서에서 배우게 하는지 불만이지만, 어쨌든 기억력이 왕성할 때 배워서 그런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한 움큼의 부토’로 존재한다니 새삼스럽게, 정말 ‘수수’롭다. 노안이 오고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썰렁하기만 연속극에도 눈물이 가물거리 증상은 지금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니라.
같이 근무할 때, 애증이 엇갈리는 직장 상사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퇴직한 지 불과 1년도 체 안 되어 암이 재발되어 다시 못 올 길로 떠난 것이다. 그는 본성은 착하다 못해 심약했고 재미있었던 분이었다. 그는 미식가였다. 암에 걸리고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식탐이 강했다. 대충 때우는 식의 식사는 그를 화나게 만든다. 잘 차려야 먹고 기분 좋아했다. 대식가였으며 회식 때 술은 먹지 못했지만 음식만은 철저했다. 그러더니 요즈음으로 보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저승길로 돌아섰으니 인생 허무하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그래도 누구나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어야하니, ‘늙어가면서 경계’해야 할 경구 정도는 알아 두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불혹의 나이에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다니 자기에게 철저한 자라고 할 수 있다. (40세에 써서 50세에 증보했음)
저자의 이런 관용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노년에 경계할 것에 대해서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소제목을 보아도 그의 노년에 대한 다짐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소제목들이다. 가장 내가 유념해야 할 것.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할 것’
“훨씬 이전부터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실은 근래에 와서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19쪽) 아마도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통하여 많이 관대해 졌음이라. 타인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며 받아들이는 관용의 폭이 커져 갔음이라.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란 것은 어느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누구나 벽장 속에는 한 가지 불행을 넣어 두고 살고 있다. 자신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니 참고 견디며 자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푸념을 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불평만 늘어놓은 노인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평은 그늘진 느낌을 준다. 무엇이든 즐거워하는 노인에게 밝은 내움이 나는 것과 정반대인 것이다.(51쪽)
무슨 일든지 불평하며 중얼거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냅둬도 그냥 흘러가게 되어있다. 젊은 사람과 논쟁하지 말고 침묵하라.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자식이 걱정을 끼친다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71쪽)
사업에 성공한 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전용차와 운전수 간호원을 두고 모셨지만 그 집의 노인은 건강하지 못했다. 왠지 약하디 약해 보였다, 하얀 박꽃을 연상 시켰다. 그러한 ‘행복한 노년’의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무자극이 초래하는 비건강’등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자신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독립심이 강한 자식을 마냥 좋아해서도 안 된다. 마치 교통안전 표어처럼 보이지만 그런 해이한 마음이 늙음을 재촉한다는 설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만일 걱정을 끼치는 자식을 두었다면 그 자식이 그나마 부모에게 효도할 요량으로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72쪽)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심각한 결함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그 자식 앞서 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악착같이 일하고 부지런을 떨면 더 건강해 지는 것이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것은 걱정을 끼치지 않는 자식이 아니라 걱정을 끼치는 못난 자식이다.
저자는 비록 책 내용이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평이한 말씨로 조근 조근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다. 늙어서 그러지 말라고.
‘공격적이지 말 것’
나이가 들면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인격이 황폐해지고 툭하면 금 새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거나 비난하는 노인도 의외로 많다.(77쪽)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마구잡이 화풀이라고 스스로에게 경계하도록 하자. 아무리 해도 관심도 공감도 느낄 수 없다면 그저 조용히 물러서면 된다. (77쪽)
호르몬의 영향인지, 늙으면 짜증을 자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격해지는 사람을 종종 본다. 큰 소리로 왕왕대는 것은, 자기의 상대방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이다. 또한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 한다. 즉 욕과 칭찬이 공존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묘지 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것’ (96쪽)
사후의 일은 걱정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이란 그땐 이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깃이다. 나의 뼈가 어디에서 어떻게 되건 이미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지금 묘를 만들어 받아본들 언젠가는 연고자 없는 외로운 혼령이 된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나 나폴레옹의 묘는 남아 있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은 참배객이 아닌 구경꾼들인 것이다. (77쪽)
얼마 전 아직 정정하신 아버지가 불러서 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말했다. 돌아가신 모친의 묘가 좋지 않으니 이장을 하고, 당신도 선산에는 안가시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년 봄에 새엄마를 비롯하여 아버지의 가묘를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첩을 보면 부처도 돌아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두 어머니의 묘를 같은 장소에 모실지 걱정이다. 나눔이 있고 기쁜 일은 막내와 딸들에게 상의하고, 꼭 이런 대사는 나랑 같이 해결하자고 하니, 우리 아버지의 장남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사용에 실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노화인 것이다. (118쪽)
그렇다. 컴 같은 것도 젊은 사람만큼은 하지 못하지만, 여간해서 안 망가지니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면 다 되게 되어 있다. 시간이 약간 더 걸릴 뿐이다.
‘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
인간에게 일생 동안 행복감의 총량은 (당사자가 생각할 때) 모두들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전혀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불만의 정도가 강한 경우도 있고,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당사자는 불행하다. (239쪽)
오늘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저녁 식사로 빵 한 조각을 얻는 것은, 전 세계를 충족시킬 정도의 위대한 행복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호강에 젖은 일본의 어린아이들에게 곁들인 것도 없이 버터도 없는 빵 한 조각을 저녁 식사로 주게 되면 불만과 비참함의 극치로 여기게 된다.(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