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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ㅣ 거꾸로 읽는 책 35
김상욱 지음 / 푸른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
“백기완은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신랄히 비판했다고 한다. 즉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술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이 새빨간 거짓마리며, 식민지 시대의 농촌을 얼토당토않게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탈과 착취가 판을 치는 가운데 어떻게 마을마다 술을 담글 수 있었겠는가. 박목월이 그렇게 본 것은 ‘그저 나그네’로 구경꾼으로 이 땅 민중의 고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86쪽)
백기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가 꼭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터인데. 그런 마을이 있는 세상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또한 박목월은 이 시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달관(達觀)의 세계를 그리려고 하였다.
물론 민중들이 독재와 싸우고 피 흘릴 때, 그는 한가하게 육영수 여사의 비명이나 쓰고 있었으니 백기완이 그런 말도 할만하다. 일제 때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의 저자는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도 비판적이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값싼 재롱만 피우고 있다며” 그것은 주책이라고 일갈한다. 조지훈이 최후의 선비로서 민족을 채찍질하였고, 박두진이 기독교적 부활을 노래하며 선지자의 목소리를 광야에 풀어 놓았던 것과 비교될 것이라고 말한다.(88쪽) 그런데 목월은 같은 청록파이지만 서정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서로 같은 입장으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 상황에서 목월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연 뿐이었다. 단순한 자연귀의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빼앗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의 의미를 갖는 고향이다.”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끊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널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신경림의 <목계장터>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힘든 민중들의 삶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민요와 유사한 형식의 서정시로 토속적인 시어가 정겹다. 그런데 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와 정언적(定言的) 명령법(命令法)을 쓴다는 형식이 비슷한 느낌이다. 두 시 모두 흔쾌한 권유 투로 구성돼 있어 어느 때는 혼동 된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
두 시 모두 우리의 전통 설화의 ‘견우와 직녀’를 차용해서 이미지를 형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간혹 두 시가 같은 것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도종환의 시는 최근 <담쟁이>를 빼놓고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가 대부분이다.(내가 읽은 작품) ‘사별한 아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접시꽃 당신> 비롯하여, <인차리>의 연작, <병실에서> 등 기억나는 것만 이렇게 된다. <인차리>는 그의 아내가 잠들고 있는 충북 청원군 가덕면의 한 지명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도종환은 그의 아내와의 사별을 주제로 한 시를 쓰면서 뜬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한 가난한 교사를 힘들게 내조하다가 병으로 죽어간 아내의 슬픈 노래. 홀로 남은 남편과 아이들의 비극적 상황이 어우러져 중앙 매체에 보도됨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도종환을 서정윤과 비교하면서 ‘닫힌 사랑, 열린 사랑’으로 설명한다. 물론 ‘열린 사랑’이 도종환이다. 도종환을 저자와 같은 전교조 해직 교사라는 동류의식으로 서정윤을 끌어들여 견강부회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웃기는 사실은 위 시에서 ‘살아 평생 옷 한 벌’ 못해 준 것이 해직 교사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학생들이 많이 애용하는, 국어샘이 만든 블로그에 나와 있었다. 사소한 문제지만, 이 시가 나온 것은 1986년이고 도종환이 해직 된 때는 1989년으로 알고 있다. 당시만 해도 교사 월급이 쥐꼬리 만 했고, 도 시인이 대학원 다니며 그의 아내가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