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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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두 차례나 영화화 되어 성공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그 영화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와 같은 부류와 상영된 것이 아닌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벽지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왜 우체부는 두 번만 벨을 울릴까. 약속한 자들만 통하는 묵시적인 암호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 영화도 보지 않았지만, 이제야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진도가 나가도 포스트 맨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와 그리스인 남편을 두 번이나 살해하려고 시도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나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읽기를 마치고 해설을 보니 이해가 갔다.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 작품이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책 커버에 나와 있다. 그리고 선정적인 이유로 판매가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아울러 ‘느와르 소설’ 장르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1934년의 작품이라 그런지 폭력도 유장하다.  선정성도 차라리 같은 시기에 나온 <채터리 부인의 사랑>이 더욱 심하고 노골적이다. 영화에서는 정사신이 압권이라는데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짧은 문장에 신문 기사처럼 별 수식어 없이 그린 소설이니 그런 장면의 묘사를 할 수도 없다.

 

 

내용도 단순하다.  집시 같은 프랭크가 고속도로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약간 잘 생긴 주인 여자 코라에 호감을 갖는다. 코라의 남편 닉의 권유에, 코라가 예쁘다는 이유로 같이 식당 일을 하게 된다. 코라는 나이 차이가 많고 개기름이 흐르는 닉이 싫증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라는 프랭크와 공모하여  닉을 죽이기로 한다. 요즈음의 막가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별일이 아닌 흔히 있는 사건이다. 배우자 앞으로 보험 들어놓고 죽이는 수법이 이미 1930년대에 일어난 역사를 가졌다는 것만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다.

 

왜 이 소설은 세계문학전집에, 그것도 권위 있는 민음사 판 169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 보다 더 작품성이 뛰어난 동시대의 작품이 많은데도 말이다.  구성도 단순하고, 묘사도 세밀하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작품이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는 정사신이 볼만하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키스만 해대는 장면만 나오는데도. 그냥 맹물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는데도 인지도가 뛰어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역시 이 소설의 끝에 나오는 작품해설을 보고 이해되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세계문학전집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미국 문학 고전이라는 점이 하나의 근거요.  대중문학을 차별하는 모더니즘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점이 또 다른 근거다.”(171P)

 


그렇다. 사랑을 배경으로 한 우리 고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춘향전>, <운영전> 등 주제도 비슷비슷하고 내용도 밋밋하다. 뻔한 내용과 전개로 실망스럽지만, 이런 작품이 봉건주의 시대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고전으로서 힘을 가진다. 역시  <포스트맨>도 창작 시기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화기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세계문학전집에 편입시킬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톡 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의 <장화홍련전>이나 <운영전> 읽듯이 읽으면 무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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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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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시대의 산물인 첩보전이 건조한 문체로 실감나게 전개된다. 완벽한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미와 함께 격조를 갖춘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더구나 이윤기와 더불어 번역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석희가 옮기어 더욱 신뢰감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독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물고 물리는 첩보전을 보면서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즉 게르만 민족이 우수해서 그런지 그들은 엄연히 통일 국가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분단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할 것이다. 비록 반군이 있는 나라는 있지만, 아직도 마음대로 통행도 못하고 철조망에 갇혀 있는 나라는 오직 우리 밖에 없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아무튼 피아가 서로를 의심하고,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첩보전의 냉혹함이   몸서리치게 만든다. 서로 상대편에게 정보를 팔아먹고, 우군의 정보통 우두머리가 다른 편의 첩자로 의심되고 있으니, 첩보전을 펴는 그들의 삶은 항상 불안하며 그래서  전전긍긍한다.  탄탄한 논리와 거침없는 이야기가 음침함의 포연 속에서 착오 없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거짓 전향, 위장 전향, 작전을 위해 그들은 사지로 들어가고 탄로가 나면 목숨을 내주어야 한다. 마침 인터넷 신문에, 이수근 사건의 무죄 판결하고 유족에게 67억 배상하라 판결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잊지도 않은 간첩을 잡아서 군사정권을 연장 시켜보려는 술책이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었었다. 고문으로 없는 죄도 만들어내고, 아울러 멀쩡한 사람을 간첩을 몰아서, 안보 불안을 야기 시켜, 잘못된 정권의 선전용으로 쓰였다.

 

 

“언젠가 스탈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50만 명이 숙청당하는 것은 통계지만,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스탈린은 대중의 부르주아적 감수성을 비웃은 겁니다. 스탈린은 위대한 독설가였어요.  반혁명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는 운동이 몇 사람을 착취하거나 재거하기를 망설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래야 하는 것이죠. 당신네 기독교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온당한 조치라고 말입니다.”(143p)
자신의 목적과 이념을 위해서 수십만의 인명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가볍게 여긴 인물을 인용하는 동독의 정보원, 그들이 저주스럽다.

 


리머스와 같은 엘리트 첩보원도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삶을 그리워한다. 저녁 식사 후에 부인과 산책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그런 아주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평범한 생활이 가치가 있다는 믿음, 빵 부스러기를 종이 봉지에 넣고 해변으로 걸어가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는 소박함. 하찮은 것에 대한 이 관심은 리머스가 이제껏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106p)


하드커버가 아닌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급판으로 읽었지만, 첩보전 소설의 가히 백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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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범우고전선 48
모리야 히로시 지음 / 범우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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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많이 읽힌 적이 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도 사회주의 체재 변경으로 유교로부터 멀어졌고, 일본도 일찍이 공자를 버렸다. 그러데 아직 유교는 우리의 생활에 이미 정형화 되어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다. 형식과 명분을 중히 여기고, 남아 선호 사상이 일부에서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공자를 무조건 부정하기 보다는 좀 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유교는 자고 일어나면 변화되어 가는 무한경쟁 시대에 오해될 소지가 충분하다. 효율성을 강조하고 피보다 돈이 강하다는 시대에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고리타분한 관념적 이론으로 치부(恥部)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시대가 변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변형과 적용의 다름이 있겠지만 우리 삶의 덕목은 크게 보았을 때 성현의 말씀은 늘 거기 있어 왔다. 현대적 해석으로 응용하면 모두 공자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온화하시되 엄격하셨고, 위엄이 있으시되 사납지 않으셨으며, 공손하되 안도감을 주신다.”
(子 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다시 말해서, 공자의 인격은 온화한데다가 엄격했으며, 위엄을 갖추었지만 위압감이 없고, 예의바르면서도 비굴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2p)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함을 걱정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基無能也)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자기에게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없음을 걱정하라는 것이다. 투덜거리며 불편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확실히 인생에 새로운 전망을 열 수 없다. 그럴 틈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기의 실력 연마를 생각하는 것이 성실한 생활 태도일 것이다. (35p)

 

 


자신을 연마해서 조금이라도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35p)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아무리 진화를 거듭하고 변화해도 수천 년간 축척되어온  진리를 벗어 날 수는 없다.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알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에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독서에만 탐닉하고 사색을 게을리 하면 지식이 몸에 배지 않고, 사색에만 치중하고 독서를 게을리 하면 독선적이 된다는 것이다. 책에 적힌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읽는다, 그렇게 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말이다. (36p)

 

 


“지혜로운 자는 반드시 유리한 입장에서도 불리한 조건을 생각하고, 불리한 입장에서도 유리한 조건을 함께 생각한다.“ 
 (知者之慮 必雜以利害)
그러니까 지혜로운 자가 사물을 판단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익과 손실의 두 측면에서 함께 생각한다는 것이다. 머리에 피가 끊어 오르면 아무래도 이 같은 냉정한 판단력을 잃고 만다.

 

 


일본의 옛날 노래에 이러한 가사가 있다.

"힘들지 않은 듯 헤엄치는 물까마귀
그러나 너의 발은 쉴 틈이 없구나."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이 무겁고 온갖 고초와 노력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며 괴롭다거나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오리의 물칼퀴’와 같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80p) 우리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남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안한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간사함에서 벗어나 묵묵히 ‘물칼퀴’를 저어야 한다.

 


“그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하여지고, 그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린다 해도 따르지 않는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103p)
윗사람이 얼마나 조신하고 정도를 걸어야 하나를 보여 주고 있는 말이다. 자기는 몇 번의 실정법을 어겨 놓고  백성에게 믿고 따르라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현 정권이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정모씨를  끌어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쓰고 있다. 정모씨는 현 공무원법을 적용한다면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 사람 말을 누가 듣겠는가. 노무현 시대에 왜 그가 좌고우면 했는지 짐작이 간다. 보수 언론에 휘둘려 목가지 달아날까봐 그런 것이다. 지금이야 보수 언론은 ‘당신의 아내 거기가 가렵다’라는 기사에 신경 쓰니 이런 사람이 설친다.  권력 감시 등 본연의 임무를 잊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인정은  옮겨가기 쉽고 세상살이는 냉혹하다. 그러므로 험한 길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길을 양보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서도 어느 정도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123p)
(人情反復世路崎嶇)

 


그렇다. 인정은 개인의 이익 찾아 옮겨가기 쉽다. 그리고 삶은 냉혹하다. 최선을 다하되 피 튀기는 경쟁은 피하고 양보하라. 나보다 무능한 인간이 승진했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나보다 양지만 골라 편한 보직만 찾아다니다가 한 방에 윗 놈들 선대서 높은 자리 차지했다고 너무 배 아파하지마라.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어찌 사람의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있겠는가.

 

 

“남의 잘못은 용서해 주어야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는 엄격해야 한다. 자신의 곤욕은 참아야 하지만 남의 곤욕을 못 본 체 해서는 안 된다.”
(人之過誤 恕  而在己則不可恕 己之困辱 當忍 而在人則不可忍)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들에게는 관용을.’ (128p)

 

 


현재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 구절이 격려가 될 것이다.
“오래 엎드려서 힘을 비축한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지는 것도 빠르다. 이것을 알면 도중에 지쳐서 비틀거릴 염려도 없고, 조급한 마음을 없앨 수 있다.”(135p)


힘들고 어려울 때 책을 읽어라. 상실감으로 인생에 회의가 생길 때 읽고 또 읽어라. 그곳에 답이 숨어 있다. 거기에 지혜의 네비게이션이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몸을 드러내고, 행해지지 않으면 몸을 숨겨라”(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라는 말을 하였다.  성실한 사회라면 관직에 나가서 봉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서 초야에 묻혀 지내라,  이것이 군자가 살아가는 태도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적용한다면 당장에 밥줄이 끊기고 만다. (137p)

 

 


<채근담>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훌륭한 인물이란 어떤 인물일까?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일도 빈 틈 없이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면, 실패하고서도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小處 不慘漏 暗中 不斯隱 末路 不怠荒 멱是個眞正英雄) (136p)
나도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몸가짐을 지나치게 결백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욕되고 더러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남과 사귈 때는 지나치게 분명히 해서는 안 되며, 선악과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持身 不可太皎潔 一切汚辱垢穢 要茹눌得 與人 不可太分明 一體惡賢愚 要句容得)(138p)
 자신이 깨끗하다고 해서 눈을 부릅뜨고 타인의 ‘탁함’ 속에 몸을 담고 있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138p)

그러면 부정한 돈이라도 상사가 같이 먹자면 먹으라는 가르침이신가. 자신의 깨끗함을  내세워 상대를 너무 무안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지혜롭게 어느 정도 호응을 하면서 암암리에 잘못됨을 알려주리라는 뜻일까.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짓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도 책망이 지나치면 동료들이 가까이 하지 않게 됩니다. 군자(君子)의 눈으로 보면 소인들이 하는 짓이 훤히 보입니다. 넓은 도량으로 대처한다면 만사가 잘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넌지시 주의를 주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공연히 소란을 피워서는 안됩니다.”(140p)
어느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에게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구성원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좋습니까?’그 사람 왈‘ 아무리 잘못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는 말을 안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지적하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아무런 악 감정을 같지 않다.’   이런 인간이 총리를 해 먹었으니 한심하다. 


<노자>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 휘어져 있기 때문에 뻗을 수 있다. 막혀 있기 때문에 물을 채울 수 있다. 낡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 소유하는 것이 적으면 얻는 것이 많다. 소유하는 것이 많으면 망설임이 생긴다.”(145p)
뻗기 위해서는 일단 굽히라는 말이다. 이처럼 유연성 있는 생활 방식을 몸에 지니면 굽히는 것도 괴로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과감히 물러서거나 굽히는 유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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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력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가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선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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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러지는 책읽기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 ‘책읽기를 위한 책’을 많이 있어왔었다. 이런 책들의 내용은 대체로 대동소이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책은 자신의 인생을 좌우 한다’   ‘천천히 읽어라’ ‘ 모든 책은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없다’ ‘ 한 번에 열권 같이 읽기’ ‘재미있는 것을 읽어라’ ‘게으르게 읽기’ ‘흥미 위주의 독서는 인생을 낭비 한다’ 등 결론적으로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말로 귀착된다.

 


이 책의 제목이 ‘독서력’이라 처음에 의아해 했다. ‘책 읽는 힘’정도의 말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그것이 약간은 다른 해석이었다. “독서력이란 무엇인가? 문학작품 100권과 교양서 50권(추리소설이나 흥미위주의 책 제외)을 읽었다면 독서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독서력’은 ‘독서 경험’이란 관점에서 설정한 기준이다.”(22p)

 

“독서력 측정 기준으로 왜 100권인가? 그것은 독서가‘기술’로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경계선이 얼추 100권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독서력은 달라진다. 유효 기간은 4년이다.”(42p)

 


즉 독서력을 책의 읽은 책의 권수를 계량화해서 표현했다. 객관성이 있는가. 언어 지능 등 개인차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렇게 단정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지에 다다른 필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나중에 리포트에“책을 읽느냐 마느냐는 자유니까 강요하지 마십시오.”라고 적어내는 학생도 가끔 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100퍼센트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16p)

"학문을 처음 시작하는 대학생은 신서본을(교양서) 읽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학생에게 신서본을 읽는 독서 습관이 사라지다니 그것만큼 부자연스런 일도 없다. 신서본을 손에 쥐느냐 마느냐가 독서력을 결정한다."(28p)

 

 위의 필자의 말에 쉽게 동의 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서 영어 책을 펴놓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어 여유도 없다. 여유가 있으면 컴 앞에 앉아 있다.  필자가 예로 든 <역사란 무엇인가>, <감정의 세계>등을 처음부터 과연 읽을 것인가.


 전에 어느 유수의 대학 도서관의 가장 대출 회 수가 많은 책이 판타지 류 소설이란 통계가 나온 적이 있다.  <묵향>이니 <가즈나이트> 등이 대학생이 많이 찾는 목록이었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요즈음은 그나마 이런 환타지 소설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는 전철 안에서도 전자 기기에 영화를 담아 와서 보고, 차라리 음악을 들을지라도 책은 읽지 않는다.  그것 아니라도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 신문에 많이 본 기사로, 연예인 소식이 맨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연예인들의 말장난에 희희낙락 하며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책은 읽어도 되고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독서로 길러진 사고력이 뭔가를 생각할 때 큰 힘이 되고 있으며 대화를 나눌 때도 독서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20p)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하게 된다. 교양이 있다는 것은 폭넓은 독서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눈앞의 한 가지 신비에 마음을 빼앗겨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지성이나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없다.”(68p)

 


“사고가 정지해 있는 모습을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딱딱하고 허약한 모습이다.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부드러움, 이것이 독서로 가꿔지는 강인한 자아의 모습이다.”(69p)


“책은 책을 부른다. 한 권을 읽으면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 그것이 독서의 묘미다.”(101p)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불행할 경우는 근본적으로 마음씨도 좋지 못한데,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을 상사로 둔 경우이다. 시대의 변화와 사고의 다양성의 추세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답습을 지고지선이라 여기고 밀어붙이는 상사는 조직의 불행이요. 같이 근무하는 후배 직장인에게는 재앙이다. 이미 박제가 된 논리를 들이대고, 용도폐기가 되어 버린 개념에 집착한다.  사고의 유연성이 없으니, 자기의 머릿속에 들은 것이 무조건 옳다고 여겨 위험한 곡예를 거듭한다.

 

 

그런데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배들에게 배우려는 직장 상사도 있다. 깍듯이 후배를 대하며, 모른 것이 있으면 배우려는 상사가 그래도 낳다. 개뿔도 장 파악도 안 되면서, 총에 설맞은 멧돼지처럼  꽥꽥거리며 날뛰는 모습은 가관이다. 세력 있는 연줄 잡고, 고래 힘줄 보다고 강하다는 학연에 기대어 아무런 준비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르니 모두가 불행이다. 초기에는 겸손한 척하고 직원들 의사도 잘 들어주는 것 같지만 제 버릇 개주랴. 이런 초발심도 오래 높은 지위에 있으면 본성이 들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아니 제발 책 좀 읽고 인성을 계발하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그렇게 무료하던 하루가 잘 갈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거의 안보는 종이 신문이나 토씨하나 안 빼고 탐독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문제다. 상사라는 작자가 체신 머리 없이, 쥐새끼 마냥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물어다 전달하는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할 수 밖에.     
  

 


이 책에서 독서력을 계량화하여 놓았는데, 이것을 직장의 진급에도 적용했으면 한다. 요즈음 독서 경영이니 뭐니 하여 책값을 개인당 1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이런 취지를 살려 공기업 등에서 진급하려면 책 몇 권을 읽고 일정한 테스트에 통과해야 된다는 규정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직장도 유연성이 있고 실적도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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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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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도 읽어 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것과 같은 책인 줄 착각했었다. 다음에는 <한국의 서평쟁이들> 정도가 나오지 않을지. 그런데 ‘장이’라는 접사를 안 쓰고 ‘쟁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 아직 달인의 경지도 아니고 책을 좋아하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무튼 ‘책쟁이’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희귀서 등 책을 소장하는 데 치중하는 사람과, 읽는 족족 남을 주면서 읽는 데 주안점을 두는 사람으로 구분될 것이다. 물론 책을 많이 소장 한 사람이 읽기도 하겠지만.

 

 

이 책은 책을 앞부분에는 책읽기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색다른 서재를 엿보는 데 더 많이 할애했다. 소개된 책 마니아들의 공통점은 공간 확보의 애로사항이 주를 이룬다. 방구들이 꺼진다는 말은 다반사고 심지어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면서도 행복해 한다. 그리고 대다수 소장가가 책으로 인하여, 부인과 약간의 불화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공간과 경제적 문제로 부인 몰래 바람 피 듯이 탐나는 책이 있으면 감추고 사들인다.

 

 


또한 그들은 헌책방을 많이 애용한다는 것이다. 자주 다니다 보니, 주인들과 안면을 트고 책 정보를 수집하며, 책방의 이력을 줄줄이 꿰고 있다. 오랜 기간 안 오면 서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고 하니 책으로 인한 인연도 끈질기다. 그런데 헌책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알라딘에서도 헌책방 코너가 마련된 걸로 아는데,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자기 처자식처럼 아끼던 사람은 노령으로 점점 사라지고, 그것에 관심 없는 세대의 등장이 가장 큰 이유로 본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학업과 취업으로 읽지 못하고 직장인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책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다행스럽게도, 대입에서,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입시사정관 제도가 있어서 고교생은 책에 약간은 관심을 갖는다.  학생부에 독서 이력을 자세히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읽었는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조정래가 <황홀한 글  감옥>에서 작가가 되려면 세계문학 전집 및 한국문학전집, 교양서 등 5백 권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5년을 주기로 반복하면 좋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이만교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자신은 중고 시절에 6권반을 읽었다고 했다.  6권이면 그만이지 왜 반 권이냐 하면, 자율학습 시간에 샘에게 걸려서 거기서 딱 멈추었다는 웃지 못 할 고교 시절의 그의 책읽기였다.

 

 

 

줄곧 대입 제도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꾸지 말고, 합리적인 평가를 위한 개발이 중요하다. 더 많은 예산을 평가 연구에 투입하여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즉 영어 말하기도 평가하고 개개인의 독서의 이력도 알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되어야 한다. 5지 선다형의 줄타기 기술만 측정하지 말고 말이다.

       

 

-  밑줄 긋는 여자 성수선
“독일 출장 때의 일이다. ‘요슈카 피셔 다시 뚱뚱해졌네요.’” 거래선 직원은 그이 말에 깜짝 놀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는 달린다>를 읽고 현재의 삶을 계속해 파멸하든지 새로운 방식을 찾든지 갈림길에서 달리기를 선택."(30쪽)

 


나도 그의 그 책을 읽었다  지금도 피셔의 이 책에서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늦은 저녁 피셔가 달리다 보면,  유리창 너머로 가족들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 그를 괴롭고 외롭게 했다고 한다. 은은한 조명아래 온 가족이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식사를 줄기는 데 자신은 계속 달려야만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나.       그런데 그는 그것을 이기고 살빼기에 성공했다. 잠시 얼마간,  결과적으로는 그런 신념과 의지도 요요 현상 앞에는 무너져 버렸다.

 


성수선이 최근에 읽은 책
김현경의 <천개의 공감>, 강준만․ 오두진의<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주경철의<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지승호의<금지(禁止)를 금하라>,  이정은의<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 하나>,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 <공부의 즐거움 : 우리시대의 공부달인 30인>,  강준만의 <인간 사색>,  레인몬드 카버의<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장정일의 <공부>, 오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와 <7월 24일 거리>,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이윤기의 <전작주의자> 조희붕이 화천의 조그만 사설 우체국장이라니, 참 그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도현의 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80쪽)처럼 현실은 그렇지 못한 가보다. 생존하기 위해서 옥수수도 팔아야 하고 무척 바쁘다고 한다.  흔히 글 속에 나오는 시골의 조그만 우체국장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이 박힌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사진을 보니 세월이 느껴졌다.

조희붕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평가
“우리나라 소설은 개인 체험이나 내적인 갈등 위주의 정서에 머물고 있지만 일본 미스터리는 인간 내면의 추악한 밑바탕까지 파고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한 대사회적 발언의 수위도 굉장히 높아요.”(84쪽)

 <이 책에서 내가 주시한 문구>

‘만권서 삼대면 정승이 나온다고’(161p)


<수학의 정석>이 고교생의 수학 공부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틀에 박힌 풀이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막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162p)

독서경영 이메이션 코리아 대표 이장우

그는 직원들 경조사를 챙길 만큼 부지런하지 않고, 부학직원 출퇴근 휴가 차량 운행 기록부를 따질 만큼 꼼꼼하지도 않다. 그런 것은 머리 없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이제는 포지션 파워가 지배하던 세상은 가고 소프트 파워의 시대가 왔다. (167p)

그가 한 해 읽어내는 책은 줄잡아 100여 권, 숙독한 것이 그 정도이고 뽑아 읽는 것을 합치면 수백 권이다. 책장에서 꺼내 보여준 ‘읽은 책’은 밑줄과 괄호로 중요한 부분이 표시돼 있고 중간중간 메모가 돼 있다. (167p)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의 책1천 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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