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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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두 차례나 영화화 되어 성공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그 영화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와 같은 부류와 상영된 것이 아닌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벽지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왜 우체부는 두 번만 벨을 울릴까. 약속한 자들만 통하는 묵시적인 암호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 영화도 보지 않았지만, 이제야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진도가 나가도 포스트 맨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와 그리스인 남편을 두 번이나 살해하려고 시도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나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읽기를 마치고 해설을 보니 이해가 갔다.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 작품이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책 커버에 나와 있다. 그리고 선정적인 이유로 판매가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아울러 ‘느와르 소설’ 장르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1934년의 작품이라 그런지 폭력도 유장하다.  선정성도 차라리 같은 시기에 나온 <채터리 부인의 사랑>이 더욱 심하고 노골적이다. 영화에서는 정사신이 압권이라는데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짧은 문장에 신문 기사처럼 별 수식어 없이 그린 소설이니 그런 장면의 묘사를 할 수도 없다.

 

 

내용도 단순하다.  집시 같은 프랭크가 고속도로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약간 잘 생긴 주인 여자 코라에 호감을 갖는다. 코라의 남편 닉의 권유에, 코라가 예쁘다는 이유로 같이 식당 일을 하게 된다. 코라는 나이 차이가 많고 개기름이 흐르는 닉이 싫증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라는 프랭크와 공모하여  닉을 죽이기로 한다. 요즈음의 막가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별일이 아닌 흔히 있는 사건이다. 배우자 앞으로 보험 들어놓고 죽이는 수법이 이미 1930년대에 일어난 역사를 가졌다는 것만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다.

 

왜 이 소설은 세계문학전집에, 그것도 권위 있는 민음사 판 169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 보다 더 작품성이 뛰어난 동시대의 작품이 많은데도 말이다.  구성도 단순하고, 묘사도 세밀하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작품이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는 정사신이 볼만하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키스만 해대는 장면만 나오는데도. 그냥 맹물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는데도 인지도가 뛰어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역시 이 소설의 끝에 나오는 작품해설을 보고 이해되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세계문학전집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미국 문학 고전이라는 점이 하나의 근거요.  대중문학을 차별하는 모더니즘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점이 또 다른 근거다.”(171P)

 


그렇다. 사랑을 배경으로 한 우리 고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춘향전>, <운영전> 등 주제도 비슷비슷하고 내용도 밋밋하다. 뻔한 내용과 전개로 실망스럽지만, 이런 작품이 봉건주의 시대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고전으로서 힘을 가진다. 역시  <포스트맨>도 창작 시기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화기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세계문학전집에 편입시킬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톡 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의 <장화홍련전>이나 <운영전> 읽듯이 읽으면 무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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