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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ㅣ 범우고전선 48
모리야 히로시 지음 / 범우사 / 1999년 2월
평점 :
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많이 읽힌 적이 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도 사회주의 체재 변경으로 유교로부터 멀어졌고, 일본도 일찍이 공자를 버렸다. 그러데 아직 유교는 우리의 생활에 이미 정형화 되어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다. 형식과 명분을 중히 여기고, 남아 선호 사상이 일부에서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공자를 무조건 부정하기 보다는 좀 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유교는 자고 일어나면 변화되어 가는 무한경쟁 시대에 오해될 소지가 충분하다. 효율성을 강조하고 피보다 돈이 강하다는 시대에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고리타분한 관념적 이론으로 치부(恥部)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시대가 변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변형과 적용의 다름이 있겠지만 우리 삶의 덕목은 크게 보았을 때 성현의 말씀은 늘 거기 있어 왔다. 현대적 해석으로 응용하면 모두 공자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온화하시되 엄격하셨고, 위엄이 있으시되 사납지 않으셨으며, 공손하되 안도감을 주신다.”
(子 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다시 말해서, 공자의 인격은 온화한데다가 엄격했으며, 위엄을 갖추었지만 위압감이 없고, 예의바르면서도 비굴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2p)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함을 걱정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基無能也)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자기에게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없음을 걱정하라는 것이다. 투덜거리며 불편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확실히 인생에 새로운 전망을 열 수 없다. 그럴 틈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기의 실력 연마를 생각하는 것이 성실한 생활 태도일 것이다. (35p)
자신을 연마해서 조금이라도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35p)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아무리 진화를 거듭하고 변화해도 수천 년간 축척되어온 진리를 벗어 날 수는 없다.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알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에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독서에만 탐닉하고 사색을 게을리 하면 지식이 몸에 배지 않고, 사색에만 치중하고 독서를 게을리 하면 독선적이 된다는 것이다. 책에 적힌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읽는다, 그렇게 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말이다. (36p)
“지혜로운 자는 반드시 유리한 입장에서도 불리한 조건을 생각하고, 불리한 입장에서도 유리한 조건을 함께 생각한다.“
(知者之慮 必雜以利害)
그러니까 지혜로운 자가 사물을 판단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익과 손실의 두 측면에서 함께 생각한다는 것이다. 머리에 피가 끊어 오르면 아무래도 이 같은 냉정한 판단력을 잃고 만다.
일본의 옛날 노래에 이러한 가사가 있다.
"힘들지 않은 듯 헤엄치는 물까마귀
그러나 너의 발은 쉴 틈이 없구나."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이 무겁고 온갖 고초와 노력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며 괴롭다거나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오리의 물칼퀴’와 같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80p) 우리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남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안한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간사함에서 벗어나 묵묵히 ‘물칼퀴’를 저어야 한다.
“그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하여지고, 그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린다 해도 따르지 않는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103p)
윗사람이 얼마나 조신하고 정도를 걸어야 하나를 보여 주고 있는 말이다. 자기는 몇 번의 실정법을 어겨 놓고 백성에게 믿고 따르라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현 정권이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정모씨를 끌어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쓰고 있다. 정모씨는 현 공무원법을 적용한다면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 사람 말을 누가 듣겠는가. 노무현 시대에 왜 그가 좌고우면 했는지 짐작이 간다. 보수 언론에 휘둘려 목가지 달아날까봐 그런 것이다. 지금이야 보수 언론은 ‘당신의 아내 거기가 가렵다’라는 기사에 신경 쓰니 이런 사람이 설친다. 권력 감시 등 본연의 임무를 잊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인정은 옮겨가기 쉽고 세상살이는 냉혹하다. 그러므로 험한 길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길을 양보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서도 어느 정도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123p)
(人情反復世路崎嶇)
그렇다. 인정은 개인의 이익 찾아 옮겨가기 쉽다. 그리고 삶은 냉혹하다. 최선을 다하되 피 튀기는 경쟁은 피하고 양보하라. 나보다 무능한 인간이 승진했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나보다 양지만 골라 편한 보직만 찾아다니다가 한 방에 윗 놈들 선대서 높은 자리 차지했다고 너무 배 아파하지마라.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어찌 사람의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있겠는가.
“남의 잘못은 용서해 주어야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는 엄격해야 한다. 자신의 곤욕은 참아야 하지만 남의 곤욕을 못 본 체 해서는 안 된다.”
(人之過誤 恕 而在己則不可恕 己之困辱 當忍 而在人則不可忍)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들에게는 관용을.’ (128p)
현재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 구절이 격려가 될 것이다.
“오래 엎드려서 힘을 비축한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지는 것도 빠르다. 이것을 알면 도중에 지쳐서 비틀거릴 염려도 없고, 조급한 마음을 없앨 수 있다.”(135p)
힘들고 어려울 때 책을 읽어라. 상실감으로 인생에 회의가 생길 때 읽고 또 읽어라. 그곳에 답이 숨어 있다. 거기에 지혜의 네비게이션이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몸을 드러내고, 행해지지 않으면 몸을 숨겨라”(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라는 말을 하였다. 성실한 사회라면 관직에 나가서 봉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서 초야에 묻혀 지내라, 이것이 군자가 살아가는 태도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적용한다면 당장에 밥줄이 끊기고 만다. (137p)
<채근담>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훌륭한 인물이란 어떤 인물일까?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일도 빈 틈 없이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면, 실패하고서도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小處 不慘漏 暗中 不斯隱 末路 不怠荒 멱是個眞正英雄) (136p)
나도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몸가짐을 지나치게 결백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욕되고 더러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남과 사귈 때는 지나치게 분명히 해서는 안 되며, 선악과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持身 不可太皎潔 一切汚辱垢穢 要茹눌得 與人 不可太分明 一體惡賢愚 要句容得)(138p)
자신이 깨끗하다고 해서 눈을 부릅뜨고 타인의 ‘탁함’ 속에 몸을 담고 있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138p)
그러면 부정한 돈이라도 상사가 같이 먹자면 먹으라는 가르침이신가. 자신의 깨끗함을 내세워 상대를 너무 무안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지혜롭게 어느 정도 호응을 하면서 암암리에 잘못됨을 알려주리라는 뜻일까.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짓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도 책망이 지나치면 동료들이 가까이 하지 않게 됩니다. 군자(君子)의 눈으로 보면 소인들이 하는 짓이 훤히 보입니다. 넓은 도량으로 대처한다면 만사가 잘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넌지시 주의를 주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공연히 소란을 피워서는 안됩니다.”(140p)
어느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에게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구성원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좋습니까?’그 사람 왈‘ 아무리 잘못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는 말을 안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지적하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아무런 악 감정을 같지 않다.’ 이런 인간이 총리를 해 먹었으니 한심하다.
<노자>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 휘어져 있기 때문에 뻗을 수 있다. 막혀 있기 때문에 물을 채울 수 있다. 낡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 소유하는 것이 적으면 얻는 것이 많다. 소유하는 것이 많으면 망설임이 생긴다.”(145p)
뻗기 위해서는 일단 굽히라는 말이다. 이처럼 유연성 있는 생활 방식을 몸에 지니면 굽히는 것도 괴로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과감히 물러서거나 굽히는 유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