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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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반부에서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또한 세 사내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 심상찮게 보인다. 술집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불경스러우면서도,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중 한 명인 바텐더 빌리는 더없이 선량해 보이고, 열심히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평균적인 남자로 비추어 진다. 그런 빌리가 술집을 나서면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된다. 즉 그의 자동차 윈도브러시에 발견된 쪽지는 그를 점점 연쇄 살인 사건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빌리가  이런 게임에 말려들어야 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며, 왜, 그는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망설이나, 하고 의문을 가졌다. 왜, 그가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지 답답했다. 왜, 그는 그 종이 메모의 내용대로 행동해야 하고, 살인자가 저질러 놓은 시신을 치우는 등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위에서 언급한 의문은, 인과 관계가 확연하지 않고 개연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범인과 빌리의 관계에 어떤 계기가 되는 동기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혹시 내가 잘 못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나에게 맞지 않았던가, 아니면 내가 이해를 충분히 하지 않고 덤벙덤벙 읽었던 가, 양자 중 하나 일 것이다. 이 소설의 전개에서, 꿈직한 살인이 일어나고, 한편으로는 빌리의 약혼자였던 바바라에게 갖는 인간애는 잘 된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를 쏘아죽이는 등 인명을 경시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와 대립적으로 소생 가망 없는 식물인간 바바라에 대한 빌리의 멈추지 않는 휴머니즘은 그래도 더욱 그것들을 선명하게 한다.  잔혹하게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추적하는 빌리는 집요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혼수상태의 약혼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데에서 그의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내부적 이야기는 세밀하고, 심리묘사 또한 압권인데, 큰 틀의 구성이 좀 물렁하다. 이 책의 제목이 ‘속도’라고 해서, 이어지는 사건에 시간이라는 옵션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이해가 잘 안 갔고, 나는 속도감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점차 속도를 빨리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빌리에게 던져주고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몰아대고 있었다. ‘속도’라는 단어는 아직도 더 빠른 상황 전개가 앞으로 남아 있다는 걸 약속하는 것 같다.”(247p)


영화 제목은 잊어 버렸지만, 범인이 형사에게 문제를 내고 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학교 등 공공장소를 폭발하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이유 없이 경찰과 이런 게임을 한다면 아무도 그 영화를  흥미 있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범인은 은행을 털기 위해서 경찰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속도라는 개념이 내용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내가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그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기도 하다. 후반 해설에서 딘 쿤츠를 스티븐 킹과 동급의 작가고 취급했는데 나는 거기에 섣불리 동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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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국 책의 언어 - 조우석의 색깔있는 책읽기
조우석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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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의 부인에게 저자가 물었다. 남편이 작품을 많이 쓰는데 부인은 읽어 보기는 하느냐. 최작가 부인의 거침없는 대답이 있었다. “저 사람 작품요? 아니요, 거의 안 봐요.”(10p) 이 일화를 통해서, 저자 조우석은 랑그(언어)가 아니라 파롤(말)이 당당한 주인공임을 강조한다. 즉 언어 보다는 입말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이 책에 소개되는 수준 높은 서평과 비교했을 때, 최인호 부인의 일화를 통해 진지한 담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종이 신문을 전혀 안 보고 있지만, 5년 전만 해도 나는 신문 마니아였다. 집에서 종합 일간지를 두 개씩 구독했고, 배달사고라도  있으면 보급소에까지 찾아가서 구해다 읽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신문들은 간지에 ‘책 마을’이니 하는 서평 기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실어왔다. 그 신문이 책 정보를 습득하는데 제격이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면이 되었었다.  현재는 서평 소개 신문을 제외하고, 종이 신문 읽은 자체를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거기서 조우석을 만났었다.  중앙일보, 근래에 우연히 이 신문을 보니 사이즈가 많이 줄었던데, 저자가 소속된 신문사이다.
 

 

리뷰 쓰는 것이  조우석 기자의 밥줄이긴 하지만,  전문가다운 솜씨였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나도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을,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근수를 재고’ 있었다.  어느 책 소개에서는 정말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빨리 인터넷에 들어가서 주문을 내지르고 싶었다.  


이 책은, 저자가 철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초반부에는 동양 철학, 신화에 대한 책자를 리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작가 녹을 먹고 있는 신문사의 입장을 따라서 그런지 ‘한국 현대사’ 소 제목하의 서평에서는 다분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까면 좋은 책, 박정희 등의 과오를 지적하면 아주 나쁜 책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이 책에 대한 평가이다.

 

 박정희와 구상 시인과의 우정을 거론하며, 구상 선생이 최고 권력자 박정희를 가슴으로 품어줬다는 것이다. “박정희를 품을 그릇이 대한민국에는 없다”(92p) 오로지 구상 시인 밖에 없었다. 저자가 구상을 예로 들은 핵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구상이 박정희 사후에도 그에 대한 일화를 발설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구상 시인이 박통과의 일화를 무덤까지 가지고 같다는 것이다. 모 교수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이, 그의 말마따나 ‘인상적’이었다. “구상 선생은 박정희를 무덤까지 가지고 간 것이죠. 봉황은 봉황을 알아본다던가요?”(92p)

 

놀고 자빠졌다는 표현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의문이 들었다. 봉황이 얼마나 세인들이 알면 안 되는, ‘허리 아래의 관대함’(91p) 등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감추었나. 그렇게 훌륭하다면, 오히려 봉황의 소소한 일화를 만백성들에게 알리어 귀감을 삼게 함이 올바른 것 아닌가.  

 

장하준 - 정승일 대담집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저자는 어떻게 읽었을까. 박정희 경제 성장에 실체를 비로소 알았다고 감탄하면서, 김대중 ․ 노무현을 ‘유사 좌파’ ‘사이비 좌파’로 칭하며, 그들 정부의 집권 10년의 결과물을 이야기하며 거품을 문다. ‘지금 우리 경제의 참담한 모습’, ‘고질적 저성장’, ‘실업의 공포’,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빈곤충의 급속한 확대로 한국사회는 거의 해체 직전이다’, ‘눈먼 신자유주의의 퇴행’,  ‘서툰 개혁’등의 말로 맹렬히 공격한다.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경제를 나는 잘 모르지만, 한나라당에서도 이제는‘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안다. 실제로 이런 견해가 그의 시각인지, 아니면 이 책의 글이 쓰여 졌을 때가, 축구만 져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공격하던 보수 신문들의 유행을 따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 <쾌도난마 한국경제>을 아주 좋은 책으로 보았다. 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아주 적절한 지적을 통하여 잘 공격했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가히 ‘한국 사회에 벼락같은 축복’의 텍스트였다.”(95p)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을 얘기 하려면 장하준의 지적을 경청부터 해야 해“(96p).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조선일보도 인용한다. 그 신문의 기사 내용은 이렇다.   ”삼성 비자금 문제를 터트린 MBC는 정․ 경․ 언 유착 끊기에 일단 성공한 듯 보이지만, 사회는 혼란스럽다.“


 조희연(성공희대 교수)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다> 어떻게 그에게 읽혔을까. 짐작이 갔으리라. 긍정적인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마디도 없다. ‘못내 실망스럽다’, 심지어는 “엄격하게 말해 책이 아니다”(97p)도 까지 했다. 책 읽고 서평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이게 할 소린가 의문이 갔다. 진보 논객의 거목 조희연 교수의 산고의 산물을 한 마디로 부정해 버리는 저자의 혜안이 두렵다 못해서 끔직하다. 계속 그의 저주를 따라 가보자.


‘학자의 무게 있는 저술로도 도무지 깜이 안 된다’, ‘재미도 덜하고 영양가 또한 없다’, ‘삼류 팩트로 얼기설기 끼워 맞춘 연구서들’, 등 끝이 없다. 조우석의 서평을 읽고, 모든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믿었다면 이 책을 구입할 독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진지하고 과격하며 신랄하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을 들이 대며서 ‘현대사를 다루려면 이만큼은 돼야한다’라고 말하며 조희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그는 박명림의 책을 읽고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무슨 책 이길래, 교수보다 더 똑똑하다는 메이저 신문 문화부 기자를 울린단 말인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또한, 나는 아직 수준이 안 돼서 읽지 못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대항하여 나온, 보수 학자들이 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어떻게 평가할까. ‘당당한 독설과 함께 펼쳐지는 레토릭은 그 자체로 흥취를 준다’, 툭 치고 나가는 기세도 대단하다‘ ,  ’맛있는 글‘,’고개가 끄덕여진다‘ (103p)칭찬이 대단하다. 그런데 같은 쪽에서 리뷰한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은 냉랭하기만 하다.  ’현대사를 보는 냉소적인 분위기‘,  ’삐딱한 시선‘,  '삐딱한 시선이 체질화된 것이다’, ‘붕어빵 가치판다’, ‘붕어빵 현대사’로 안타까워한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     가진 재주도 많지만, 헛소리를 잘 지껄여 잊을 만하면 파문도 일으키는 가수 아닌 가수 조영남이 쓴 책이다. 조영남은 이 저자와 친한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리뷰를 쓰게 된 동기를 조심스럽게 애기하고 있다. 그래도 쓰기는 썼다. 그리고 엄청나게 옹호한다. 내 기억으로는 언젠가 조영남이  한 ․ 일간에 대해서, 민감한 시기에 뭔 말을 지껄여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네티즌에게 욕을 먹었던가? 확실하지 않다.  


조영남 책 리뷰는 건성건성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물론 조우석의 조영남을 옹호하는 말인 것 같다. “왜 그들은 얼치기 애국심에 민족주의 감정으로 절을 대로 절어 있는 제도권 교육에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 피폭자 구성원들은 말하자면 자동인형이다. 당했다고 생각을 하면 벌떼처럼 일어서는 --- 그러면 누가 듀라셀 배터리를 집어넣었고, 누가 프로그램밍을 했을까? 그것은 제도권교육이다.”(144p)  결론은 제도권 교육이 문제라는 것이다. 글쎄다. 자동인형이라는 말이 섬뜩하고, 제도권교육으로 연결시키는 발상이 이해가 안 간다.  세상이 변했다. 일본의 침략은 잊어버리자. 이렇게 가리키라는 말인가. 그의 말마따나 정말 짜증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지은<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를 리뷰하면서 우리 교육계의 현실을 통탄한다.  “사람 잡는 교육, 교육도살 행위‘(269p)의 극단적인 용어 선택이 그의 우리 교육에 대한 참담함을 대변한다.  그리고 유학, 학교 혐오로 인한 의도적 탈락을 ’사람 잡는 생지옥을 떠나는 액소더스 행렬‘로 확대 시켜 질타한다.   바로 이 책이 저자에게 ’거대한 지옥도‘, 방사능 피폭 못지않게 위험한 교육 시스템’등 꼭꼭 감춰온 그런 생각을 일깨워 준 신간이란다.

 

우선 우리나라 교육이 아무리 잘 못되어 간다고 해도 이런 자극적인 용어를 쓸 수 있을까. 선명한 문제의식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좀 그렇다. 생지옥을 떠나는 액소더스는, 내가 있는 지방에서는 꼭 교육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거의가 집안에 돈은 많고, 아이가 공부를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모두가 교육학 박사 정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구난방 식으로 많은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해결책은 요원하다. 그래서 똑똑한 중앙 일간지 등에서 교육에 대한 어젠다 를 많이 제시해야 한다. 저자 말마따나 ‘입시 브로커 기사’같은 것은 지양하고 진정으로 우리 교육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저자가 몸담았던 신문을 그렇지 않지만,  돈 많은 메이저 신문에서, 자사의 입시 관련 책자를 팔아 먹으로고 특목고 입시에 영향을 주려한다거나, 주요 대 합격 현황을 너무 자세히 공개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오랜지’니 뭐니 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겨 놓고는 그 책임을 몽땅 모두 학교에 뒤집어씌우려는 몰염치를 성찰해야 한다.  


아무튼 이 책에서 앞으로 읽을거리를 많이 찾아 기쁘다. 날씨도 추워지고 눈발도 점점 굵어지는데  이 책에 소개된 책이나 읽어보고, 리뷰의 고수인 저자를 모방하여 서평을 써 보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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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벼룩 - 직장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는가, 개정판
찰스 핸디 지음, 이종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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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IMF . 우리나라가 부도났을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전긍긍 했다. 실업자가 넘쳐 났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었던 말이 구조조정이 아닐까 쉽다. 넘어가는 회사를 위해서 일가친척에게 보증을 요구했고, 더러는 그것에 응해서 망했고 거절하여 의가 났다.  아니면 파산으로 남은 재산을 조금이라도 건져 보려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담이지만, 국가 부도 이전의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살판났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에 무지한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는 엄청 잘나가는 것 같았고 그래서 행복했었다.  거래처에서는 연일 대접이 짭짤했고, 고기에 양주를 그렇게 많이 먹어 본 기억이 전무후무했다. 간신히 주택 몇 채로 지어서 팔던 내가 아는 어떤 건설업자는 차입금으로 아파트 수 천 채를 분양하는 대기업으로 변신해 있었다. 아무튼 신났었다. 지방 은행은 골목까지 지점을 개설해서 장사에 나섰고, 돈이 없으면 대출로 흥청망청 썼다. 

 


내가 알던 은행 지점장은 자신의 영업과 별 상관도 없는 나를 불러서 판공비로 술과 밥을 사주었다. 그것도 비싼 곳에서. 지역 방송사 부장은 판공비로 옷도 선물해 주며 자기를 과시 했었다. 그러니 식당도 호황이었고  겉으로는 잘 돌아 갔다.

 

 

그런데 점차 돈맥경화니, 당진의 무슨 철강의 부도니 하는 말이 떠돌았다. 관리들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느 경제 관료는 영삼이 대통령한테, 경제는 파도와 같아서 밀려가고 또 밀려오는 것처럼, 잠시 나빠졌다가도 곧 회복된다고 안심시켰다. 역시 여러 면에서 호황이었던 당시의 메이저 신문에 났던 기사이다.

당시에 시립 도서관에 가보면,  산에 갈려다 늦은 듯한, 후줄근한 차림의 우리의 가장들이 서성 거렸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서는 도서관 개관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코멘트까지 했었다.

 


바로 그때 나온 인기의 도서가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았고 심한 고통이 뒤 따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구본형 본인도 회사를 나와서 바로 벼룩이 된 처지였다. 또한 당시의 추천 도서도 실업의 어려움을 달래고 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교수에서 파면 당하고 노가다 벽돌공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의 <절벽산책>, 20세기 초의 대 공항을 그린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 같은 류 였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보수 논객 공병호가 대기업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고, 프린랜서로 전향했다는 말이 있다. 제목 자체가 특이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종신계약의 직장을 코끼리로, 자영업자나 파트타임, 포트폴리오, 프린랜서를 벼룩으로 지칭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반이 벼룩으로 살아갈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게 2000년이니, 10년 전 작자의 견해로 보면 될 것이다. “20세기 고용 문화의 큰 기둥이었던 대기업, 그 코끼리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벼룩처럼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15p)

 

그런데 지금 이 예측이 맞아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대기업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직업이 점점 증가하는 측면에서는 팔스 핸디의 말이 신뢰성을 얻고 있다. 종신고용이 줄어들고 임시직, 계약직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과도기로 볼 수도 있다.


찰스 핸디 본인 자신이 코끼리에서 떨어져 나와 벼룩으로 살아가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누구나 저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다.”(34p)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개인에게 과거처럼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다.”(27p) 이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공병호처럼 찰스 핸디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프리랜서를 선언했다면 어떠했을까.  공병호는 학벌도 좋고 글 쓰는 재주도 있으며, 보수 신문에서 잘 보도해 주니 그래도 괜찮지만 다른 장삼이사들은  곤란하지 않았을까.

 


어느 교수가 공무원 시험공부만 하는 대학 사회를 질타하고, 요즈음 대학생들은 생각이 단조롭다고 비난했었다. 자기가 철 밥통 대학 교수라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대기업의 졸업 전 입도선매니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취업이 심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교수라는 작자들은 오로지 학문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제자들의 취업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들이 많았었다.

 

 

취직에 안 되어 혼인이 안 이루어지는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에 프리랜서 선언이라는 말도 잘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행위이다. “나는 지금 글쓰기와 연설을 병행하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구도 이런 생활을 크게 부러워한 것 같지는 않다.”(34p) 무지하게 부러워한다. 허나 재주가 없고, 불러주는 연줄이 없어서 못한다.

 

 


작자의 성장 시절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이러니 한 내용이 있다.  찰스 핸디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많은 가족이 종교를 직업으로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검소한 삶 등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캐익 한 조각을 훔쳐 먹었다가, 그 벌로서 저녁을 굶고 잤다고 했을 정도로 엄했다. 이런 영향으로 그는 지금도 거짓말을 못하고,  다른 부하 직원이 거짓 보고를 해도 눈치를 못 채고 믿어서 낭패를 당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결코 단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68p)
대통령도 거리낌 없이,  어쩔 수 없는지, 국민을 속고 속이는 세상에 그런 교육을 받았으면 문제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늦게 대학 학위를 딴 작자 본인의 부인과 자식의 예를 들면서, “우리는 배우고 싶어서 배울 때 가장 많이 또 가장 잘 배운다.”(68p)는 말은 공감이 간다. 공부도 자기가 하고 싶어야 능률이 오른다. 흔히 말하는 주도적 학습, 주체적 공부가 중요하다.

 

 

“어떤 공동체 내에서든 질서와 기강이 핵심적 요소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호기심, 모험심, 실험 정신 등을 더 권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94p)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94p)   
"우리의 재능 - 우리 모두는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을 발견하는 곳.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96p) 

9시 30분에 등교하는 영국의 중고등학교의 개념으로 쓰인 글이다. 우리에게 이런 아량을 베풀다가는   학교 문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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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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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한국 추리소설의 거목 김성종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주었고, 창작 세계도 넓혀 주었다고 한다. 정말인가.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작가의 <자칼의 날>도 데뷔작으로 그를 장르 소설의 반석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어벤저를 사전에서 찾아보니,‘뇌격기’ 즉 함정을 침몰시키는 어뢰라는 뜻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캘빈 덱스터의 암호명으로 쓰인다.  대개가 작품 전체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책 제목이 어벤저라는 암호명으로 쓰인 것이다. 이런 군사 용어를 책의 제목으로 할 정도로 이 작가는 자료 조사를 충분히 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구찌 땅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굴에서 공격할 때의 요령 등은 군사 전문가를 방불케 한다. 아마도 그가 해외에서 기자 생활을 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내용 전개가 빠르고 문체 또한 별 수식어 없이 쭉쭉 뻗어 나간다. 구성 또한 치밀하고 뒤따르는 작은 이야기의 얼개가 뛰어나 작품 속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의 배경이 시원스럽게 소개 된다. 또한 그 인물에 대한 묘사가 여러 장치를 통하여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캐릭터가 확실히 설정된다. 이 소설 시작 부분에 캘빈 덱스터가 힘들게 조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끝 부분에서, 그의 활약에 신뢰감을 심어 준다. 그가 광산을 떠돌아다니다가 어떻게 결혼하고, 변호사가 되어, 어떤 아픔을 겪게 되고, 나중에 추적자가 되었는가 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리키 콜렌스로의 실종으로 시작된 덱스터의 추적도 흥미롭지만, 리키의 맘과 외조부의 이력의 소개도 작은 이야기로서 독자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구성이 소설에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450p되는 이 책을 한 자리에서 읽어 치우는 사람을 드물지 않을까. 그래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으려면 혼동될 수 도 있다. 이야기의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다 보니 앞부분을 뒤적거려야 흐름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소설에서는 줄기차게 큰 줄기의 이야기는 속도를 내어 앞으로 거침없이 나가고, 부수적인 내용은 보조하는데 머물러야 한다고 본다.

또한 정확한 자료를 들이대는 것은 작품의 개연성을 높이고 인과 관계를 탄탄하게 하는 데 중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어차피 소설은 픽션인데, 또 군사 전문가들만 읽는 책도 아니므로, 무기의 재원을 너무 자세히 묘사하는  방법을 피했어야 한다. 그러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 전개의 맥이 분산되어 힘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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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1 - 탈궁
이월하 지음, 한미화 옮김 / 산수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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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역사에 대해서 별반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옹정제가 누구고, 강희제가 누군지 금시초문이다.  그래도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측천무후>를 읽어 본 것이 전부이다. 중국의 현대 소설 작가로 위화와 쑤퉁을 좋아는 하지만, 전 국민의 애독서 <삼국지>도 항상 6권 정도에서 실패했던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삼국지>를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있다는 둥 말도 많지만 끝까지 간 적이 없다.  어쩐지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매복 기습 등 비슷한 작전이 계속 반복되고 구성도 창의적이지 못하며, 단지 인물 캐릭터 면에서 평가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 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옆의 동료가 이 <강희대제>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는 후배지만, 책도 많이 읽고, 박사 학위소지자로 평소 지적으로 존경해왔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책이 재미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이 크게 중국사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성도 뛰어나지는 않지만 중독성이 있어서 읽는 다고 답한다.  1권을 읽으면 계속 읽게 되고 그런대로 재미도 괜찮다고 한다.  또한 소설을 통해서 읽는 그 나라의 역사적 사실은 잘 잊혀 지지 않는 이점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1권을 읽게 되었다. “용이 기지개를 켜는 듯, 봉황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듯한 멋진 글씨체가 두 눈 가득 확 안겨왔던 것이다.”(122p)와 같은 고전에서 많이 보아온 문체가 눈에 뛰고  강희제를 중심으로 신하들과 벌이는 파워 게임도 기억에 남았다. 아무래도 역사 소설이니 변형과 과장이 심할 수밖에 없듯이 초반부터 강희제 띄우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 하고 있었다.


강희와 스승으로 받드는 오차우와의 대화이다. “<춘추(春秋) 같은 경우에는 통 이해가 되지 않더라구요. 주(周)나라가 어쩌다가 하루아침에 그 지경까지 이르러 눈 깜짝 할 새에 쪽박 차고  앉았는지 말이예요.”(300p)
 
오차우 답변“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해석은 어찌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경우가 많소. 하지만 주나라의 멸망은 제후들이 천자를 우습게 여기고 정치 강령을  제멋대로 발표-----(301p)
이 부분에 나오는 말처럼 역사 소설이야 이현령비현령이라고 작가 마음대로가 아닌가. 12권까지 다 읽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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