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벼룩 - 직장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는가, 개정판
찰스 핸디 지음, 이종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IMF . 우리나라가 부도났을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전긍긍 했다. 실업자가 넘쳐 났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었던 말이 구조조정이 아닐까 쉽다. 넘어가는 회사를 위해서 일가친척에게 보증을 요구했고, 더러는 그것에 응해서 망했고 거절하여 의가 났다.  아니면 파산으로 남은 재산을 조금이라도 건져 보려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담이지만, 국가 부도 이전의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살판났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에 무지한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는 엄청 잘나가는 것 같았고 그래서 행복했었다.  거래처에서는 연일 대접이 짭짤했고, 고기에 양주를 그렇게 많이 먹어 본 기억이 전무후무했다. 간신히 주택 몇 채로 지어서 팔던 내가 아는 어떤 건설업자는 차입금으로 아파트 수 천 채를 분양하는 대기업으로 변신해 있었다. 아무튼 신났었다. 지방 은행은 골목까지 지점을 개설해서 장사에 나섰고, 돈이 없으면 대출로 흥청망청 썼다. 

 


내가 알던 은행 지점장은 자신의 영업과 별 상관도 없는 나를 불러서 판공비로 술과 밥을 사주었다. 그것도 비싼 곳에서. 지역 방송사 부장은 판공비로 옷도 선물해 주며 자기를 과시 했었다. 그러니 식당도 호황이었고  겉으로는 잘 돌아 갔다.

 

 

그런데 점차 돈맥경화니, 당진의 무슨 철강의 부도니 하는 말이 떠돌았다. 관리들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느 경제 관료는 영삼이 대통령한테, 경제는 파도와 같아서 밀려가고 또 밀려오는 것처럼, 잠시 나빠졌다가도 곧 회복된다고 안심시켰다. 역시 여러 면에서 호황이었던 당시의 메이저 신문에 났던 기사이다.

당시에 시립 도서관에 가보면,  산에 갈려다 늦은 듯한, 후줄근한 차림의 우리의 가장들이 서성 거렸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서는 도서관 개관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코멘트까지 했었다.

 


바로 그때 나온 인기의 도서가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았고 심한 고통이 뒤 따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구본형 본인도 회사를 나와서 바로 벼룩이 된 처지였다. 또한 당시의 추천 도서도 실업의 어려움을 달래고 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교수에서 파면 당하고 노가다 벽돌공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의 <절벽산책>, 20세기 초의 대 공항을 그린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 같은 류 였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보수 논객 공병호가 대기업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고, 프린랜서로 전향했다는 말이 있다. 제목 자체가 특이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종신계약의 직장을 코끼리로, 자영업자나 파트타임, 포트폴리오, 프린랜서를 벼룩으로 지칭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반이 벼룩으로 살아갈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게 2000년이니, 10년 전 작자의 견해로 보면 될 것이다. “20세기 고용 문화의 큰 기둥이었던 대기업, 그 코끼리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벼룩처럼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15p)

 

그런데 지금 이 예측이 맞아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대기업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직업이 점점 증가하는 측면에서는 팔스 핸디의 말이 신뢰성을 얻고 있다. 종신고용이 줄어들고 임시직, 계약직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과도기로 볼 수도 있다.


찰스 핸디 본인 자신이 코끼리에서 떨어져 나와 벼룩으로 살아가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누구나 저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다.”(34p)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개인에게 과거처럼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다.”(27p) 이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공병호처럼 찰스 핸디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프리랜서를 선언했다면 어떠했을까.  공병호는 학벌도 좋고 글 쓰는 재주도 있으며, 보수 신문에서 잘 보도해 주니 그래도 괜찮지만 다른 장삼이사들은  곤란하지 않았을까.

 


어느 교수가 공무원 시험공부만 하는 대학 사회를 질타하고, 요즈음 대학생들은 생각이 단조롭다고 비난했었다. 자기가 철 밥통 대학 교수라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대기업의 졸업 전 입도선매니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취업이 심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교수라는 작자들은 오로지 학문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제자들의 취업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들이 많았었다.

 

 

취직에 안 되어 혼인이 안 이루어지는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에 프리랜서 선언이라는 말도 잘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행위이다. “나는 지금 글쓰기와 연설을 병행하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구도 이런 생활을 크게 부러워한 것 같지는 않다.”(34p) 무지하게 부러워한다. 허나 재주가 없고, 불러주는 연줄이 없어서 못한다.

 

 


작자의 성장 시절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이러니 한 내용이 있다.  찰스 핸디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많은 가족이 종교를 직업으로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검소한 삶 등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캐익 한 조각을 훔쳐 먹었다가, 그 벌로서 저녁을 굶고 잤다고 했을 정도로 엄했다. 이런 영향으로 그는 지금도 거짓말을 못하고,  다른 부하 직원이 거짓 보고를 해도 눈치를 못 채고 믿어서 낭패를 당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결코 단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68p)
대통령도 거리낌 없이,  어쩔 수 없는지, 국민을 속고 속이는 세상에 그런 교육을 받았으면 문제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늦게 대학 학위를 딴 작자 본인의 부인과 자식의 예를 들면서, “우리는 배우고 싶어서 배울 때 가장 많이 또 가장 잘 배운다.”(68p)는 말은 공감이 간다. 공부도 자기가 하고 싶어야 능률이 오른다. 흔히 말하는 주도적 학습, 주체적 공부가 중요하다.

 

 

“어떤 공동체 내에서든 질서와 기강이 핵심적 요소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호기심, 모험심, 실험 정신 등을 더 권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94p)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94p)   
"우리의 재능 - 우리 모두는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을 발견하는 곳.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96p) 

9시 30분에 등교하는 영국의 중고등학교의 개념으로 쓰인 글이다. 우리에게 이런 아량을 베풀다가는   학교 문 닫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