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불 2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이 작품에서 양반들이 사는 곳과 구분되는 곳이 개울 건너에 자리 잡고 있는 거멍굴이다. 그 곳에는 백정, 무당 등 그 시대의 최 하층민인 무지렁이 들이 사는 곳이다. 상대적인 반가의 집안은 종가를 중심으로 몇 걸음걸이의 거리를 유지하고 모여 있다. 앞 권에서 언급 되었듯이, 청암 부인은 재행 오는 날 남편의 죽음 맞게 되고, 허물어져 가는 명색만 양반인 집안에 종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 3권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청암 부인이 아쉬워하고 후회하게 되지만, 모든 패물과 옷감을 팔아서 종가의 재산 복원에 나서게 된다.
아무튼 청암 부인의 양자로 들어 간 것이 기채이고, 기표와 기응이 결과적으로는 사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기응의 딸 강실이가 기채의 아들 강모와 사달이 난다. 반상의 집 안으로 남의 이목과 명예를 중시했던 그 때에 사촌끼리 상피를 붙었으니, 감히 상상을 불허한다. 음전하고 남 자식하고 다르게만 보였던 강실이와 우유분단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강모의 사랑. 운명적이었지만, 사회적으로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이 소설의 전편에서 끊임없이 읽는 이의 숨을 컥컥 막히게 하고 있다.
그러면 거멍굴에서는 이에 대항하는 한 축으로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가. 맞는지 모르지만 어느 마을이든지 무당, 백정 등 천민들은 배산임수의 지형에서 물 건너 쪽으로 내좇기 듯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사는 중소도시에서도 큰 천 건너에 무당집을 표시하는 깃발이 많은 것을 보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툭하면 잡아다 패고, 일거리가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불리어 가서 제 일처럼 노동을 해야 되는 것이 이들이다. 이 책 어딘 가에도 나오지만, 춘복이 어떻게 재물 복과 신분 상승을 이루어 보려고 양반 선산의 묘에 투장했다가 걸려서, 멍석말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두환 시절 민주인사 잡아다가 통닭구이로 고문할 때, 상처가 나면 문제가 되니, 모포로 덮어 놓고 팼듯이, 멍석말이도 모포가 아닌 멍석을 사용할 뿐이지 별반 다르지 않다. 멍석으로 말아놓고 여러 비복들이 달려들어 멍석에 물을 뿌려가며 때리면 상처 등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속으로 골병들어 시들시들 앓다가 명줄을 놓는 무서운 형벌이다. 일찍이 조정래 ≪태백산맥≫에서 보면, 사상을 의심받아 지서에 끌려가 이렇게 얻어 터지면 그 때는 사람 똥물이 직방이라고 나온다. 즉 재래식 변소에서 곰삭은 똥물을 걸러 마시고, 고체를 환을 지어서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아주 찰지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애기를 여자 분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했다가, 식사도 못하고 쫓겨날 뻔했다.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졌지만, 거멍굴에서 소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는 옹구네와 춘복이다. 둘이 막상막하지만, 양반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만을 옹구네는 입으로 조지고, 춘복이는 의식 있는 행동으로 토로한다. 그래서 나중에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강실을 차지하지 않는가. 옹구네는 약간 음흉하면서도 현실적 욕망이 아주 강한 인물이다. 평순네 등 그 동네여자들이 모두 체념하고 자발적인 복종을 할 때, 옹구네만은 그렇지 않다. ‘봉산탈춤’의 말뚝이처럼 양반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와 냉소, 저주를 퍼붓기를 서슴지 않는다. 아울러 노총각인 춘복이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가면서 말이다. 이 소설의 중간쯤 달려가다 보면, 옹구네가 강실이와 형님 아우를 자처하는 부분이 나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반상의 구별에 대해 반감을 가지다가도 가슴이 철렁한다.
물론 2권에서도 시집살이 노래 등 풍부한 우리의 민요와 풍속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어쩌면 요즘 세대의 일부에게는 생경한 내용이고 뭐 이게 소설이야 민속학 대학 보충 교재지 하고 실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담한다. 그런 사람도 이 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던졌다가는, 며칠 후 다시 집어 들고 혼불을 따라 긴 여행을 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