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3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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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청암 부인이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일월성신께 빌고 빌어 낳은 귀하고 귀한 강모는 만주로 떠나고, 청암 부인은 손자를 목메어 부르다 숨을 거두고 만다. 이 3권에서는 청암 부인을 추억하고 장례를 치르는 절차가 절반을 차지한다.    가느다란 실을 망자의 코 밑에 대어보고 사망이 확인되면 본격적인 장례에 임하게  된다.  상제는 바로 상복을 입지 않는데, 그것은 부모를 황망히 읽은 슬픔을  잠시 접어두고, 다른 사람이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 슬픔을 가늠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식은 부모를 잃은 죄인이라, 머리를 산발하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며 실성 발광하여 몸부림치는 것으로 그 자식의 효를 짐작할 수 가 있다고 한다.

초혼 행사는 망자와 인연이 있으며, 덕망이 있어 흠이 없는 사람이 망자의 평상복을 가지고 지붕 위에 올라가 떠나간 혼을 불러 오는 절차이다.     청암부인 보오옥! 하고 외치는 여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듯이 쟁쟁하다.  아울러 김소월의 ‘초혼(招魂)’에 나오는 ‘내가 부르다 죽을 이름이여……’가 생각이 났다.     이 책의 제목인 ‘혼불’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작가가 만든 조어(造語)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청암부인의 숨을 거두자 지붕 굴뚝 위로 떠나가는 푸른빛의 덩어리를 몇 명이 보게 된다.  그들은 그것이 청암부인의 혼백이라고 단정한다.   너무 절실하고 슬프면 그렇게 보이게 되는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 온다.


 “제 목숨을 다 채우고 고종명(考終命)하여, 제 맹대로 살다가 평안히 가는 사람의 혼불은, 그처럼 미리 나가 들판 너머로 강 건너로 어디 더 먼 산 너머로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서 다음에 태어날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아니면 저승으로 너훌너훌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104p)

 

그리고 인월댁의 침음(沈吟)을 통해 이렇게 청암부인의 넋을 위로한다.
“이 서러운 세상,  못 잊힐 게 무엇이라고 가던 발걸음을 돌리시겄소. 훨훨 벗어 버리고 …… 입은 옷도, 무거운 육신도 다아 벗어 버리고…… 부디 좋은 데로 가십시다. ”(105P)또한 무녀(巫女) 당골네의 낭랑한 입을 빌어 길닦음을 한다.
“ 망제님 극락 세계루 가시라구 시왕질로 가시라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질을 닦어 가옵소사
원퉁이 생각 서우니 생각 마옵시고 다아 잊어 버리고“(106P)

 

 

   여자가 죽으면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것도 모두 부인네 들이 맡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성이고 조심스러움이라.  삼가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거행해야 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아직까지 그래도 변형이 덜 된 풍속이 ‘상(喪)’이라고 했는데,  ‘혼불’에 나오는 장례 절차는 까다롭고 현재에 시행하지 않는 절차가 많다.  상여 소리도 이 소설에서는 몇 면에 걸쳐서 소개하고 있다.    상여소리도 지방에 따라 다르고, 후렴구는 같은 지방이 없을 정도로 각각 다르다.    청암 부인의 출상 장면을 읽을 때는, 언젠가 본 화면이 연상되었다.  전라도 진도 장례 풍속으로, 많은 여인들이 흰 광복을 잡고 애절한 상여 노래를 부르며 상여를 메고 나가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죽음이 라는 한 가족사에서 볼 때 엄청나고, 천붕(天崩)에 가까운 큰 대 사건이라, 당연히 경황이 없고 집안의 절대적인 행사가 된다.

“망인을 생시에 대하듯 정성을 다하여 꾸미고 치장한, 그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은 상여는, 운각(雲刻)의 구름을 타고 덩실하니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여를 운궁(雲宮)이라 하는가.     그러나, 돌아올 길 다시 없는  이 걸음에 이만한 호사가 무슨 위로가 되리오.  오히려, 어서가라,  재촉하는 것이 아니랴.
어어허어노 어어허어노
못 가아겄네 못 가아겄네
차마 서러소 내 못 가겄네에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멀고 먼 길 황천 길로
일락 서산 해 저문다 어서 가자 재촉하네“

    

그리고 이 3권에서도 몇 개의 삽화가 등장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다.     즉 ‘비오리라’는 주막집 처자가  ‘비월’이라는 술집 여자로 변신하는 과정은 ‘서편제’의 영화 처럼 한 폭의 슬픈 수채화다.  물론 그녀의 어미도 술청에서 술을 파는 과부지만 말이다. 
“월명사창(月明紗窓)에 슬피 우는 저 두견아
네가 울랴거는 창전(窓前)에  가 울지
세상을 잊고 사자는데
앞에 와 슬피 울어
남의 심사를 산란하레 하느냐아
아이고 대고오 어허어어
성화가아 났네에 흐으으응
그날로부터 비오리는 술청에 나앉았다. “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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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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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에서 양반들이 사는 곳과 구분되는 곳이 개울 건너에 자리 잡고 있는 거멍굴이다.  그 곳에는 백정, 무당 등  그 시대의 최 하층민인 무지렁이 들이 사는 곳이다.     상대적인 반가의 집안은 종가를 중심으로 몇 걸음걸이의 거리를 유지하고 모여 있다.     앞 권에서 언급 되었듯이, 청암 부인은 재행 오는 날 남편의 죽음 맞게 되고, 허물어져 가는 명색만 양반인 집안에 종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 3권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청암 부인이 아쉬워하고 후회하게 되지만, 모든 패물과 옷감을 팔아서 종가의 재산 복원에 나서게 된다. 

 아무튼 청암 부인의 양자로 들어 간 것이 기채이고, 기표와 기응이 결과적으로는 사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기응의 딸 강실이가 기채의 아들 강모와 사달이 난다. 반상의 집 안으로 남의 이목과 명예를 중시했던 그 때에 사촌끼리 상피를 붙었으니, 감히 상상을 불허한다.       음전하고 남 자식하고 다르게만 보였던 강실이와 우유분단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강모의 사랑.      운명적이었지만, 사회적으로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이 소설의 전편에서 끊임없이 읽는 이의 숨을 컥컥 막히게 하고 있다.


   그러면 거멍굴에서는 이에 대항하는 한 축으로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가.   맞는지 모르지만 어느 마을이든지 무당, 백정 등 천민들은 배산임수의 지형에서 물 건너 쪽으로 내좇기 듯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사는 중소도시에서도 큰 천 건너에 무당집을 표시하는 깃발이 많은 것을 보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툭하면 잡아다 패고,  일거리가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불리어 가서 제 일처럼 노동을 해야 되는 것이 이들이다.     이 책 어딘 가에도 나오지만, 춘복이 어떻게 재물 복과 신분 상승을 이루어 보려고 양반 선산의 묘에 투장했다가 걸려서, 멍석말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두환 시절 민주인사 잡아다가 통닭구이로 고문할 때,  상처가 나면 문제가 되니, 모포로 덮어 놓고 팼듯이,  멍석말이도 모포가 아닌 멍석을 사용할 뿐이지 별반 다르지 않다.     멍석으로 말아놓고  여러 비복들이 달려들어 멍석에 물을 뿌려가며 때리면 상처 등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속으로 골병들어 시들시들 앓다가 명줄을 놓는 무서운 형벌이다.    일찍이 조정래 ≪태백산맥≫에서 보면, 사상을 의심받아 지서에 끌려가 이렇게 얻어 터지면 그 때는 사람 똥물이 직방이라고 나온다.     즉 재래식 변소에서 곰삭은 똥물을 걸러 마시고, 고체를 환을 지어서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아주 찰지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애기를 여자 분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했다가, 식사도 못하고 쫓겨날 뻔했다.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졌지만, 거멍굴에서 소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는 옹구네와 춘복이다.    둘이 막상막하지만,  양반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만을 옹구네는 입으로 조지고,  춘복이는 의식 있는 행동으로 토로한다.    그래서 나중에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강실을 차지하지 않는가. 옹구네는 약간 음흉하면서도 현실적 욕망이 아주 강한 인물이다.  평순네 등 그 동네여자들이 모두 체념하고 자발적인 복종을 할 때,  옹구네만은 그렇지 않다.     ‘봉산탈춤’의 말뚝이처럼 양반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와 냉소, 저주를 퍼붓기를 서슴지 않는다. 아울러 노총각인 춘복이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가면서 말이다.     이 소설의 중간쯤 달려가다 보면, 옹구네가 강실이와 형님 아우를 자처하는 부분이 나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반상의 구별에 대해 반감을 가지다가도 가슴이 철렁한다. 

물론 2권에서도 시집살이 노래 등 풍부한 우리의 민요와 풍속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어쩌면 요즘 세대의 일부에게는 생경한 내용이고 뭐 이게 소설이야 민속학 대학 보충 교재지 하고 실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담한다.    그런 사람도 이 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던졌다가는, 며칠 후 다시 집어 들고 혼불을 따라 긴 여행을 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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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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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에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구멍을 뚫듯이  한 땀 한 땀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최명희의 ≪혼불≫을 다시 읽었다.    아니 지금 기억으로는 몇 번은 읽은 것 같다.  당시에 상당한 기간의 차이를 두고 한 권씩 발간되었던 초창기의 ≪혼불≫ 도 계산에 넣는다면 말이다.   무려 17년이란 세월을 통해 담금질하여 완성한 대작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그 당시에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혼불≫이 너무나 애달고 아름다워서,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혼사모’를 만들을 정도로 이 책은 굉장했었다.    그런데 이런 표면적인 명성만 듣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시 말하면 흥미 위주의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실망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성 면에서 특별한 것이 없다. 스피드도 없고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즉 간단히 요약하면, 집성촌 종갓집에서 강모라는 종손이 상피를 붙는 내용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집중하지 않고 쉽게 읽을 만큼 만만한 작품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기획되고 별다른 노력 없이 쓰여 진 작품도 더욱 아니다.     아울러 동일 작가가 1년에 몇 권씩 뚝딱 펴내는 책하고는 천양지차다.  다시 말하면 최명희의 각고의 노력과 그의 혼신의 몸부림의 산물이다. 

  인고의 긴 세월을 겪으며 나왔기 때문에 문체에서 깊은 맛이 나며,  오랜 습작 기간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였던 한스러움이 너무 깊고 사무치게 다가와 읽는 내내 가슴 조이며 편하지 못하였다.  작가의 묘사가 방대한 자료를 근거하여 리얼하기 때문에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하고 이미지가 확실하다.

  1930년대 말,  전라도의 한 집성촌이 문중 종갓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삶이 1권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른다.     종부인 청암 부인은 남편의 사망으로 인하여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종가 집에 들어와 조카 기채를 입양하여  쓰러져 가는 종가를 일으킨다.    요즈음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청암 부인으로 대표되는 봉건주의 시대의 일부종사에 대한 처절하고 허망함은,  서정주의 시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방에서 생긴 오해로 첫 날 밤도 치루지 못하고, 새신랑은 도망가고,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신랑이 찾아가 보니, 신부가 자기가 떠나던 그 당시의 족두리를 쓴 복장으로 있어서, 만져보니 재가 되어 스스로 내려앉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같았다.     우리 민속학의 보고요,  우리 선조들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혼불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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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의 마지막 3부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상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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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이 된다는 기사가 언론에 소개 되었다.
젊은 시절 부유한 가정환경 등으로 도박에 탐닉하며 방탕한 생활을 보낸 톨스토이지만 그의 말년은 청빈한 삶 그 자체였다고 평가하는 글을 보았다. 청빈한 그의 삶은 서거 직전 딸에게 남긴 유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톨스토이는 유서에서 딸에게 그의 저서에 관한 모든 출판권을 넘기 돼 저작권료는 받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이 결정은 그녀의 부인 소피야와 수제자 블라디미르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다.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몇 가지,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소피야는 아주 악처였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그의≪전쟁과 평화≫ 같은 대작은 분량에 질려 몇 번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한 쓸쓸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가 방황 끝에,  말년에 지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그의 지혜와 혜안이 녹아들어 있다.  무순 경구를 이어놓은 책이라든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라하고 충고 등을 하는 책은 딱 질색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순탄하지 않았던 오랜 그의 경험과  대작을 창작하면서 얻은 통찰력 있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

 

*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가장 중요한 일은
나와 인연 맺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몸이 불편한 이
영혼이 가난한 이
부유하고 비뚤어진 이
버림받은 이
오만한 이까지도
모두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
소박하게 식사하는 사람을
우리 모두는 본받아야 한다.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육체만 보살피며 살아간다면
결국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걸을 수 있는데도 걷지 않는다면
다리가 약해진다.
부와 사치에만 익숙해지면
소박한 삶을 잊게 되고
내면적인 즐거움과 평화.
자유를 잃어버리고 만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 언젠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리라.
30분 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녘에 잠자리에 드는 하루의 일과와 같다.

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행동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은 것은 더욱 중요하다.


*고통과 실패에서 배우다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인간은 고통을 이해하면서
육체가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크게 바랄수록 크게 속박당한다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 큰 속박을 당하게 된다.
크게 바랄수록 자유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노동이다.
그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일이고
둘째는 깊은 단잠을 선사하는 육체노동이다.

육체 노동은 우리를 고귀하게 한다.
게으른 사람은 존중받지 못한다.


* 입을 다물고 생각하라
장정된 총을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주 잊어버린다.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음보다 더 큰 해악을 입힐 수도 있다.

*말과 침묵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언제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험당은 세 방향으로 해악을 미친다.
험담의 대싱이 되는 사람.
험담을 함께 듣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험담하는 사람 자신이다.


*최고의 행동
사람을 괴롭히는 다섯 가지 큰 죄악이 있다.
과식, 나태, 정욕, 분노 혹은 증오.
그리고 마지막이 오만이다.

* 육체노동
두 손으로 노동할 때
우리는 세상을 공부하게 된다.
채소밭은 가꾸면서 나는  생각한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아
지금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까?‘
재소밭은 만드는 데도
건강과 지식이 필요하다.

*습관의 주인이 되라
배고픈 때만 소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병에 걸릴 일도 적고
과식이라는 죄를 저지를 위험도 줄어든다.

음식, 음료수, 그리고 노동의 양을
영혼에 적합하게 조정하라.
적합한 수준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주치의를 둔 셈이다.

자기 습관의 주인이 되라.
습관이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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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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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독일 남편과 부엌 가구를 만들 때의 일이다.  가구의 칠 문제로 무지개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공계 박사인 남편이 무지개 색 7가지를 모른다는 말에, 지은이가 학교서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적외선 자외선 파장 사이에 있는 색이 어찌 일곱 개뿐이겠냐. 거기 금을 그어 일곱 개라고 단정하고 이름을 붙이다니 말이 되냐”(203p)
그래도 저자는 미심쩍어서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물어보다 비웃음만 당하고 만다.  다 아는 명제이지만,  단편적 지식으로 시험보고, 아직까지는 암기적인 요소가 강한 교육,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의 교육이 완전 패배하는 장면이다. 물론 필자는 교육이 아니라 한일 역사 청산의 문제 서두로 다른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꺼낸 말이지만 말이다.

 

   필자가 관찰하고 생각한 독일식 교육은, 자율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한 개인의 견해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독일의 교육 문제 접근방법에 있어서 무언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받았다. 

  자율과 창조에 이어, 남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교육의 원천적인 힘이라고 강조한다.  즉 자신의 아들이 소속한 수학 반에서 실력 차이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더라고 서로 이끌고 협동해서 좋은 성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한 국가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려면, 관용과 배려가 원천의 힘이 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즉 이민도 받아들이고 힘없고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세에서 세계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떠한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라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현 정권의 집권 후반기를 넘어서면서 우리 교육계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인성과 창조’이다. 즉 학생들의‘창의ㆍ인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책읽기를 중요시 한다고 한다. 비록 타율적이고 인위적이라 성공할지 의문이 가지만, 학생들 각자의 독서 이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하여 보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통신망에 업 로드하여 대학 측에 제공, 입시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런 정서적이고 정의적인 교육은 대학입시라는 괴물에게 번번이 패해 온 사실을 우리는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 정권 들어서서 실시해 왔던 우리 교육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열 반 편성 안한다고 조자룡 헌 칼 쓰듯이 수시로 들이대는 우리 교육 당국과 서울대 합격생 수를 대서특필해서 경쟁을 부추기는 주요 언론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서로 돕고 협동하는 리더십을  지향하는 학교보다는 남을 밟고 일어서게 하는 무한 경쟁을 가르치는 우리 현실.  지나친 경쟁보다 인권을 존중하고 서로 배려하며 같이 이끌고 상생하는 교육은 설자리가 없다.   만약 이런 교사와 이런 학교가 있다면, 하향평준화를 부추긴다고 비판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빨갱이식 교육이라고 몰아붙이는 일부 학교장 및 교육 관료들이 분명히 등장하리라.


  하기야 입시사정관 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잘사는 집안의 외고생 20여명이 3천 만 원치 의료를 가지고가서 베트남에 가서, 고급 호텔에서 머물며 하는 봉사활동은 무어라 설명하여야 하는가. 이런 현실에서 독일처럼 자율성, 창조성 중시한다고 오픈 북 시험을 실시하면  아마도 소송문제로 발전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어쩌면 세계 공통이며, 그것의 영향은 교육 시스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치는 정성이 경쟁의식이 아니라 연대의식으로 모일 수 있다면 그들의 열성이 우리 교육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다. 강한 나라를 만드는 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다.“(247p) 

  필자가 자기 자식을 키우며 부닥치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참여도 돋보이는 책이지만,  그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도 신선하다. 필자의 남편은 남을 관리하는 일보다 직접 창조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보람도 있으며, 숭고하다고 여겨서 승진할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단다. 그리고 상사보다 학력도 높고 나이도 많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필자도 가족과의 함께할 시간을 중요시하여 멀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은 맡지 않는다. 

 

  즉 일할 시간을 더 투자하여 돈을 더 벌기보다, 차라리 가족과 함께할 여유를 더 갖고, 대신 무섭게 절약하는 쪽을 택한다. 돈 대신 자신의 시간을 더 중시하는 인생, 그러면서도 최저 생활비로 근심 없이 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목욕 한 번하려면 많은 생각을 하고, 더구나 돈 절약도 철저하지만 환경과 타인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띤다.  환경과 타인을 위해 고등어도 금하는 가족, 그러나 남을 돕는 기부에는 적극적 자세로 임하는 가족.  시시콜콜 자식 교육문제 등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이 책이 주는 느낌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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