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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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에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구멍을 뚫듯이  한 땀 한 땀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최명희의 ≪혼불≫을 다시 읽었다.    아니 지금 기억으로는 몇 번은 읽은 것 같다.  당시에 상당한 기간의 차이를 두고 한 권씩 발간되었던 초창기의 ≪혼불≫ 도 계산에 넣는다면 말이다.   무려 17년이란 세월을 통해 담금질하여 완성한 대작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그 당시에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혼불≫이 너무나 애달고 아름다워서,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혼사모’를 만들을 정도로 이 책은 굉장했었다.    그런데 이런 표면적인 명성만 듣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시 말하면 흥미 위주의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실망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성 면에서 특별한 것이 없다. 스피드도 없고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즉 간단히 요약하면, 집성촌 종갓집에서 강모라는 종손이 상피를 붙는 내용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집중하지 않고 쉽게 읽을 만큼 만만한 작품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기획되고 별다른 노력 없이 쓰여 진 작품도 더욱 아니다.     아울러 동일 작가가 1년에 몇 권씩 뚝딱 펴내는 책하고는 천양지차다.  다시 말하면 최명희의 각고의 노력과 그의 혼신의 몸부림의 산물이다. 

  인고의 긴 세월을 겪으며 나왔기 때문에 문체에서 깊은 맛이 나며,  오랜 습작 기간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였던 한스러움이 너무 깊고 사무치게 다가와 읽는 내내 가슴 조이며 편하지 못하였다.  작가의 묘사가 방대한 자료를 근거하여 리얼하기 때문에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하고 이미지가 확실하다.

  1930년대 말,  전라도의 한 집성촌이 문중 종갓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삶이 1권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른다.     종부인 청암 부인은 남편의 사망으로 인하여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종가 집에 들어와 조카 기채를 입양하여  쓰러져 가는 종가를 일으킨다.    요즈음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청암 부인으로 대표되는 봉건주의 시대의 일부종사에 대한 처절하고 허망함은,  서정주의 시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방에서 생긴 오해로 첫 날 밤도 치루지 못하고, 새신랑은 도망가고,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신랑이 찾아가 보니, 신부가 자기가 떠나던 그 당시의 족두리를 쓴 복장으로 있어서, 만져보니 재가 되어 스스로 내려앉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같았다.     우리 민속학의 보고요,  우리 선조들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혼불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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