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의 에로스 문화탐사 2 탐사와 산책 5
이병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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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병주는 나의 청년 시절에 많은 가르침을 준 작가다. 그의 작품 ≪지리산≫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고초를 겪어야 하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부족했던 자료들로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그를 통해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았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으면서도 때로는 진지하게 우리 근현대사에 접근할 수 하였다.  특히 당시에  그의 작품 ≪산하≫를 읽다가, 3권 이후는 구하지 못하여 헌 책방을 전전했던 기억이 난다.  이병주의 전 작품이 다시 나왔고, 물론 ≪산하≫도 전권 출판 되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하여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이병주 상당히 늦게 문학계에 등단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낸 작가로 알려져 있다.  국제신문 논설위원을 지내다, 작가가로 입문하여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가 간 분이다.  결국 폐암으로 세상을 떴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과 박학다식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책에 나오는 요설과 같은 긴 이야기는 그의 넓은 사고와 동서양을 뛰어넘는 박식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에로스문화 탐사≫ 역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성(性)에 접근한 것이다.  정말 이런 자료가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감탄할 뿐이다.  구체적이면서도 설득적이고, 상세한 묘사는 돋보이면서도 뒷받침 자료가 충분하다. 한 예로 ‘성문헌에 관해선 실로 궁할만큼 가난한 나라’인 우리나라의 성 풍경을 쓰기 위한 그의 노고를 들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인사동의 고서점을 헤매고 사계의 석학에게 문의한 바도 있었지만 ≪고금소총(古今笑叢)≫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소림집기(笑林集記)≫의 3권을 겨우 얻었을 뿐이다.”(46p)    


  중국의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금병매≫로 시작하는 동양의 에로스는, 종교와 성(性), 성에 대한 논문적 담론(談論) 등으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한다.   단지 한문체 문체가 많이 보이고, 또한  어려운 어휘를 많이 사용하여 학생들이 읽기는 힘들겠지만,  노골적인 성애를 묘사한 그림이 지루할 만하면 나오니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과 아울러, ‘음심을 품고 여자를 보기만 해도 간음은 한 것이니라’ 하는 예수의 탁선(託宣)이 있어도 기독교들은 열심히 간통을 했다. 에로티스즘의  문화가 가장 활발한 곳이 예외 없이 크리스천의 사회이고 프리 섹스를 구가하고 있는 스웨던, 덴마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그 도덕의 근본을 신약성서에 두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를 말세의 현상이라고만 보아넘길 수는 없다. 중세에 있어서 로마 교황들이 성적 향락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이다.”(108p)

 특히 인재를 등용하여 민중의 불만을 억제하는 등 낮의 정사(政事) 면에서 뛰어난 지략을 보였고, 밤의 정사(情事)에서도 힘 좋은 승(僧) 등을 취하여 육신의 쾌락에 몰두했던 측천무후(則天武后) 편은 흥미진진하다.  비록 분량 면에서는 짧지만, ‘쑤퉁’이나 ‘산샤’의 측천무후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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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새마을운동 - 한 마을과 한 농촌운동가를 통해 본 민중들의 새마을운동 이야기
김영미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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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ㆍ사회학 부류의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누구는 인문ㆍ사회학 및 과학의 읽기가 진정한 독서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소설 등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접해야 창의성 및 두뇌의 유연성이 발달한다고 믿고 있다. 아무튼 ‘인문학 고전 강의’의 강유원 선생이 추천해서 ≪그들의 새마을 운동≫을 집어 들게 되었다.


  유년 시절에 새마을 운동하는 것을 보아왔고,  당시에 관변 단체의 홍보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그들의 새마을 운동≫은 쉽게 이해되었고 친근감마저 들었다.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은 1971년 전국 33,267개 동리에 시멘트 300부대를 지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약간은 전시행정의 느낌이 들었지만 지붕개량을 하는 사업부터 시작되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기와로 얻는 마을 미화 작업이 경쟁적으로 각 마을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시작되었다.

 

  고등 국어 교재에도 나오는 이청준의 ≪눈길≫에서는 당시의 집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실감나게 언급되고 있다.      지붕개량 문제로 노심초사하며 안달하는 노모와 책임을 미루면서도 마음의 부체로 괴로워하는 아들의 갈등이 리얼하게 묘사된다.      마을 간 경쟁 문제로 여력이 없는 집에는 막중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절미운동과 금주 문제도 중요 이슈가 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쌀이 중요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아직 어렸지만 벼 품종인 ‘아끼바래’, ‘통일벼’니 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들 마을 내에서 노름을 금지하고 금주 ‧ 금연운동을 벌였으며, 절미운동과 가마니 짜기 등을 독려했다.”(61p)

 
 
 ≪그들의 새마을 운동≫의 집필 의도가  마음에 다가왔다.
“그동안의 한국사 연구는 국가정책사 위조였다. 민중사라고 하더라도 엘리트 정치세력이 주인공이었으며 정작 민중들의 생활세계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정치 ‧ 경제를 제외한 신변잡기를 다룬다고 해서 그것을 생활사라고 할 수 있을까.”(8p)
“민중의 생활세계와 경험세계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들의 낮은 목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신문을 뒤적이다가 연구실 문을 나섰다.     갑갑한 연구실에서만이 아니라 민중들의 생활공간을 탐방하고,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만나고, 곳곳의 역사적 경험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루어졌다.”


 박정희가 우리나라를 가난으로 벗어나게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영구집권 획책의 일환이나,  경제 발전으로 그것을 덮고 나가려는 심사가 있었을지라도 박정희의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은 우리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본다.


 ≪그들의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시대 뿐 만아니라 경기도 이천의 아미리와 나래리에 포커스를 맞추어 일제시대 부터의 발전상을 모니터링 한다.    지금까지의 근현대사의 연구가 정책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직접 민중들을 만나고 인터뷰하여 생생한 그들의 소리를 들려준다.  
“왜정때는 작업반을 만들어서 가마니 짜기 등의 일읈 시켰어,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지서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은데 제일 잔인했던 게 마을 사람끼리 서로 구타하게 한 거였어. 서로 마주보게 해놓고 상대방의 뺨을 때리게 하는데 아저씨, 조카여서 아주 고통스러웠어. 살짝 때리면 본인이 치도곤을 당하니까 어쩔 수가 없어.”(82p)


“경기도 이천의 아미리와 나래리의 신화적인 인물 ‘노구장’과 ‘강대철’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대응전략의 주도자로서 마을 주민들의 행위화 사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두 인물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편이 서로 다른데, 노구장은 일본에 우호적으로 대하며 동네를 위해서 일을 했고, 강대철은 항일적인 차원에서 당시의 관을 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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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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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지 않았듯이, 나는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 읽기를 저어해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그런 류의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열광적으로 읽었던 ≪88만원 세대≫도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단지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책을 읽다보면 ≪88만원 세대≫를 인용한 글이 많았고,  또한 이 책의 저자 우석훈은 요즈음 한나라당 의총에까지 가서 강의를 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공무원 시험은, 초등 교사를 선발시험을 빼고는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합격하면 가문의 영광이요, 일단은 안정된 직장으로 결혼을 하는 등 만사형통이 된다. 1997년 금융 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경찰 공무원은 2대 1정도로 수월했고, 다른 곳도 이렇게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이 높을 정도로 인기가 있지 않았다. ≪88만원 세대≫에서 말하는 포디즘 시대라 더 좋은 일거리가 많아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허나 지금은 고시원에 파묻혀 재수, 삼수를 해도 어려우니 참으로 안타깝다.

  안정된 직장 잡기가 어려우니 자연적으로 젊은이들의 결혼 적령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어 밥벌이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일본은 프리터라고 알바만 해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도 지난한 일이다.  청년들의 알바는 노동 착취에 불과하고, 임금 체불은 이이 사회 문제화 되어 있다.  ≪88만원 세대≫에서 제시한 도표를 보니 일본은 시간 당 우리나라의 3배, 노르웨이는 우리의 7배 정도의 알바 페이를 받고 있었다. 물론 그 나라의 물가를 감안해야 되지만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석훈은 ‘성욕이 살인적일 만큼 강할 때’ 젊은이들이 동거할 수 없음을 몇가지 사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유럽 같은데 18세가 넘어서 같이 사는 것을 ‘아기’라고 골리고, 문화 정서상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은 살집을 얻고, 살아가는 생활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국가에서 일단 집 얻을 돈을 보조해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고 한다.  또한 대학 등록금이 우리나라의 7‧8배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 나라는 선진국이니까 라고 생각할 줄 모르나 그들은 국민 총소득 1만 달러 때부터, 살림집 전세금 지원 등 젊은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면 1만 달러의 두 배가 넘었는데도 우리나라는 왜 이런 지원을 하지 못하는가. 올 해도 내년의 예산안 중 복지비용을 증액했다라고 하는데 말이 많다. 야당은 구체적 항목을 들어 복지 예산을 삭감을 했다고 공격하는데, 대통령 이하 여당은 그냥 막연히 올 해보다 많이 증액했다고 주장한다.   부자감세와 대기업 특혜로 투자를 유도하여 일자리를 늘린다고 했는데,  대기업은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하지 않다가,  정부에서 위협하면 수치상으로만 뻥튀기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고식지계의 술수를 부리고 있다. 금리 인하는 물가를 부추겨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르고, 주가는 2000대를 넘어서고 있는데 서민들은 아우성이다.  이쯤에서 대통령이 시장에 나가서 어묵을 먹으며 뭔가 허리우드 액션을 취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 때가 되었는데. 


 세계화에 따른 경제위기 설명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외부의 적을 상정한 음모론적 설명이다. 일본 총독부가 식민지 조국을 수탈했듯이, IMF가 우리에게 이런 변화를 강제했다는 식이다.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미국이 우리나라를 핍박했고, 그래서 IMF와 경제위기가 발생하였으며 그런 이유로 세상이 너무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종류의 설명들은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두 번째 설명은 국제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세계경제 내에서의 한국경제의 역할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적응 혹은 부정응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방식이다. 1990년대 중반 세계적 독과점화라고 부를 수 있는 실물경제의 세계화를 촉발시킨 힘은 세계적인 포디즘의 종말과 함께 도래한 포스트 포디즘 즉 탈 포드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82p) 이중 어느 견해가 더 세계화를 부추겼는가.  


 “시장에서 생선 다듬어 팔아서 두 자식을 대학까지 보낸 시장 아주머니에 대한 애기들은 이제 과거의 ‘전설’이 되었다. 지금의 20대에게는 이런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운영되는 작은 가게에서 기술을 배워 나중에 독립했다는 애기들도 1970∼1980년대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애기들이었다. 자영업 가게 시장과 대형 활인매장의 알바의 차이 그리고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가게와 프랜차이징 빵집 사이의 차이가 10년을 차이로 20대들 앞에 커다란 강처럼 놓여 있는 셈이다. 아무도 20대를 세대 간 차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지만, 현재 펼쳐진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일종의 게임으로 이해한다면, 이 게임은 20대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 (128p)


20대의 살아남기 위한 고전분투는 그들을 범죄 또는 신용 불량자로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20대를 환영하고 무료로 강의도 시켜주고, 집잔 합숙도 시켜주는 경제조직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 왜 20대 불법 다단계  조직원들이 막장 인생인지도 설명할 수 있다.”(133p)


  급격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우리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더 문제가 된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보다는 앞으로 10대가 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니 참으로 문제다. “지금 20대가  어렵다면, 같은 경향 속에서 지금의 10대는 더 어렵고, 더 강화된 승자 독식의 시스템에서 배출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고, 세대 독립의 지체 현상은 더 강화될 것이다. 아울러 삶을 우지하기 위한 비용은 더욱 높아지지만 직업의 안전성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140p)


  저자는 지금처럼 표준화된 교육이나 대학을 가기 위한 암기식 공부는 선진국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고 한다. 내가 보아도 수긍이 간다.  5지 선택지에서  정답 고르는 것만 가르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지금 한국의 우파와 좌파가 공히 동의하는 한 가지 원칙은 10대들에게 ‘독서’, 그것도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를 기다리는 포드주의(포디즘) 해체의 전면화와 탈 포드주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포드주의 체제에서의 표준화된 동부가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탈 포드주의 시대에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가 시켜주는 표준화된 공부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독서인 셈이다. 즉 지금의 기성세대가 10대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말대로 젊은 세대에게 독서를 권유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대학이라는 급선무의 과제가 있는데, 어찌 한가하게  독서나 하고 있겠는가. 


   교육 입안자들이 더 많은 연구와 단호한 정책의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 간의 관용과 이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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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노인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이성현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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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다보면 나도 언젠가 노인이라고 명명될 날이 있으리라. 아마도 20년 후인 그 때가 되면 ‘노인 천국’이 아니라 ‘노인 천지’가 된다. 그만큼 노인이 많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즉 의료 시스템의 발전과,  한국 전쟁의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  되는 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노인의 증가가 사회문제화  될 것이리라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아무튼 노인이라는 말 자체가 씁쓸하게 하고 때로는 외로운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것은 시작 보다는 해지는 저녁노을처럼 삶을 정리하고 마감할 준비를 할 때라는 것이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어머니의 어두운 자궁에서 나와서 조그만 흚 구덩이에 영원의 안식을 취해야 되는 그 때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리라. 모멘트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완숙미도 나고,  어떤 일이건 조정하고 수용하는 그런 노련함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노인 분들을 마주하다 보면, 세월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완숙함이랄까하는 이런 젠틀맨쉽한 모습 보다는, 나도 늙으면 저리 하지 말아야지 하는 성찰의 시선을 보낼 때가 많다.


   한 예로, 매일 새벽에 나가는, 규모가 작은 헬스클럽에서의 일화를 들어보겠다.   거의 매일이다 시피 거기에서 고희를 넘어 중반에 다다르신 노인 두 분을 만난다.  아침잠은 없으시고, 근력은 좋으시니 매일 운동하러 나오신다.  문제는 이 분들의 주변에 대해 갖는 끊임없는 관심이다.  상대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내밀한 문제까지 폭탄 질문을 쏟아낸다.   속으로 꾹 참고 있지만, 같이 다니는 아들 넘은 그분들과 같이 운동 안한다고 성질을 부린다.  신상에 대해서 묻고 또 묻고, 자기식대로 운동하라고 강요하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서 정신이 혼란하다.    힘이 천하장사인지, 목소리 보륨 조절이 안 되어 틀어놓은 텔레비젼의 소리를 능가한다.   특히 여자 분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고 한 편으로는 민망하기 까지하다.  싫은 내색이 역력한대도  끊임없이 들이댄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자신들의 정치색을 낱낱이 드러내고,  상대편에게도 설득하고 강요하려 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그 여자 분만 나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주 환장을 한다.  


  ≪폭주노인≫의 초반에서도 아무데서나 무례하게 고함을 꽥꽥 지르는 노인들의 사례로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에 털모자를 쥐고 왼손으로 주먹을 쥐어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고 있었다. 젊은 남자 점원을 할아버지를 외면하듯 테이블 믿을 보고 있었다.”(35p) 혹시 나도 늙어서 고함을 지르며 이 책 내용대로 여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시간 지연이 결국에는 노인의 분노 폭발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기다림’을 둘러싼 고찰이라는 항목으로까지 발전시켜 많은 분량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언론에서 언급한 사건 등 여러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핵심 내용과 동 떨어지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여러 사례 연구가 논거가 되어 빨리 이해하게 하고 글의 흐름을 탄탄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폭주노인≫은 폭력노인이 아니라 폭주(暴走)노인이다.  잘못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노인이 제목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노인들이 속도에 이렇게 민감할까. 저자는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로 설명한다.   “ 70세의 1년은 열 살에 비해 일곱 배나 빠르게 지나가는 셈이다. 50세의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초등하고 시절의 1년은 상당히 길었다. 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길고 여유로웠지만 50세가 넘은 지금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벼린다. 뜻밖에 빨리 흐르는 시간 때문에 초조해서인지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조급해진다.”(76p)  어느 책에서,  노인들이 많은   경험의 축척으로 그날이 그날이고 새로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모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좀 과학적 근거를 드는 내용도 있다.  “체내시간은 신진대사의 속도에 비례한다. 산소 소비량이 적으면 체내시계의 진행은 느리다. 소비량이 많을수록 빨라진다. 이 산소소비량은 맥박수로 추측한다.  맥박 수는 아이들은 빠르고 노인은 느리다.  즉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78p)
“신체가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초조함이, ‘기다림을 강요받을’ 때 감정폭발을 일으킨다.”(78p)
 

  순간을 못 참고 결국에는 가족과 등한시되고, 심지어는 범죄의 늪으로까지 빠지는 노인들의 문제.  국가에서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사회 복지 차원에서도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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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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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4≫에서는 무엇보다 삽화가 많이 나온다.  거멍굴의 공배네 집에서, 짧기만 한 여름 밤에 모여서 죽어라 일만 하는 그들의 하는 이야기 많이 나온다.  흥부전과 사명대사에 대한 그들의 입담은 다 얼개를 알고 있음에도 다른 색깔로 들려온다. 타성박이가 모여서 정신적으로나마 위로를 삼으려는지, 서얼로 태어난 성공한 축에 든 유자광 이야기가 삽화로 상당부분 언급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까지 올라간 유자광, 그의 태몽과 에피소드는 재미있으면서도 우울해진다. 오죽 원한에 맺혀 쓰면, 유자광은 서모가 죽으면 머리를 풀 수 있다는 법령을 만들었는가.


 청암 부인은 죽어서 땅에 묻히는데, 손자인 강모와 강태는 중국 봉천으로 떠난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따라붙은 오유끼를 만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결국 강모 일행과 동행하게 된다. 

 ≪혼불4≫에서는 반상의 구별과 천비소생 등 신분에 대한 문제를 많이 언급했다. 매안 종가집 침모 우례의 과거사를 들어 노비의 자식으로서의 설음을 엮어낸다. 기표가 우례를 범하여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다시 그 집안의 노비가 되면서 재산이 되는, 암울한 봉건주의 시대의 악순환이 주를 이룬다.  “노비의 신분 세습에 관해서 조선 전기에는, 부모 양쪽 중에서 하나만 천인이어도 그 자손은 천인이 된다고 했다가, 한때는 종부법(從父法)이 시행되어 양인(良人)과 비(婢) 사이의 소생은 양인을 만들기도 했는데, 아버지의 신분을 따라 종의 자식 신분이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양반층의 반발로, 얼마 안 가서 이 종부법은 폐지되었다. 그리고는 어미의 신분을 자식이 따른다는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었다. (27p)” 그러면 성춘향은 성대감과 천기 월매 사이에서 났지만, 천비소생으로 취급받은 것을 보면 종모법을 따랐음이라.


 후반부에서는 춘복의 야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결국 옹구네의 힌트에 의해서지만, 언감생심 그 당시에는 꿈도 못 꾸었을 양반가의 처자를 취하려 눈을 반짝인다. 신분 제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 부분을 읽을 때 안타깝게 여겨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가슴을 억누른다. 우리의 강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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