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교육을 걱정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인 후쿠다 세이지가 핀란드 교실을 방문하여 꼼꼼히 스케치하고 느낀 학교 관찰 기록 및 수업 참관기이다. 이런 핀란드 교육적 상황에 우리 교육 현실을 비교하여 박재원 교육전문가가 코멘트 하여 놓았다.    확실하게 장담은 못하겠지만, 우선 일본은 우리 교육현실과 대동소이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방과 후 교육 활동이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분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14p)    경쟁력 고취니, 하향평준화니 뭐니 하여, 학교 별 성적 공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현실과는 아주 다른 고품격 교육적 접근 방식이다.  우리 주요대의 입학 사정에서, 총점 0.1에 동점자가 17명이 걸려 있는 경우를 보았다. 1점도 안 되는 점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슬플 뿐이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있는 부모를 비롯하여 조금이라도 교육과 관계있는 사람까지 합하여 거의 전 국민이 교육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교육에 대해서 한 마디씩 조언을 던지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좀 유연해 지고, 수요자 중심의 방향으로 점차가고 있다는 것일 뿐 우중충한 교실 색깔이 몇 십 년 전이나 비슷하듯이 변화가 없다.

 

“직접 핀란드에 가보니 무척 느긋하고 진기한 수업이 펼쳐지고 있었다. 의무교육(기초교육)에 해당하는 16세까지는 상대적인 학력평가가 없었다.    공부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협력했다. 시험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높은 학력을 자랑한다.   그 비결은 뭘까?”(22p)    우리나라 교과부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초등학교까지 학업 성취도 평가로 교장을 평가한다고 하니 초딩들도 보충이다, 자율학습이다 하여 방학 때도 학교를 나간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성적이 오르면 몇 십 만원씩 그 자리에서 준다고 하니 이것도 신자유주의에 들어가나 모르겠다.

 

 

 

“1990년대 전반 핀란드는 교과서 검정도 폐지되고 장학관제도 같은 관리나 감시에 소요되던 불필요한 인력이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지식(교육과정)은 국가 관리에서 해방되어 학습 주체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되었다. (23p)     김대중 정부에서 학생 수 많이 줄었다가 최근에는 더 늘어났다. 교사 당 수업 시수도 역시 증가했다. 장학지도 더 심해지고 학교 평가를 해서 예산을 준다고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더 자주 있다. 그러면 우리 교육이 거꾸로 가는 것인가?

 

 

“핀란드 와 한국의 비교에서 학생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데 마땅히 적용할 만한 학칙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한국에서는 가장 연관성이 있는 학칙을 적용하여 신속하게 처벌한다. 반면 핀란드에서는 교육적으로 당사자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37p)       박재원 교육 전문가가 실제로 교육에 관계된 분인지 의심스럽다. 본인이 학생 때 경험을 많이 인용하는 게 아닌지. 현재 학교에서 처벌이 없다고 보면 된다.  봉사활동 며칠 어영부영 하는 것으로 무마되고, 수업에서 열외 시켜 혼자 공부하는 벌을 주면 도망가서 안와 오히려 교사가 애를 탄다. 아주 중죄를 저지르고 본인이 원하면 전학을 가는 정도다.


“핀란드의 핵심적인 교육과제는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한국은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 되어 있다. 핀란드가 수준별 수업을 폐지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즉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실제로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하위권 학생들만 희생시킨다.”(55p)        말해 무엇하겠는가. 특목고, 수준별 수업 안하면 교육청에서 달달 복아 댄다. 다행인 것은 성취도 평가에서 미달되는 애들을 교육할 예산을 확보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정말 수능 고득점에 필요한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진행하려면, 학생들의 자발성이 반드시 요구된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는 제대로 준비시킬 수 없다. 교재를 선택해서 문제 풀이 위주로 교육하는 것도 크게 빗나간 방식이다.”(68p)       우리의 학교에서 행하고 있는 문제 풀이 위주 교육 문제 있다. 그런데 현행 5개 선택 지문에서 답을 골라내는 기술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제집 풀이가 가장 효율적이다.

 


백 번 강조하지만 우리 중 ․ 고 교육이 변하려면, 대입 평가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평가 방법에 예산을 대거 투자하여 발전시키면 고교 교육 정상화 된다. 창의적 재량이니 진로진도니 교육과정에 넣으면 무엇 하나 모두 국 ․ 영 ․ 수 자습하던지 방송 강의 듣는데. 예체능 과목을 자습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던데 헛소문이기를 바란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기회균등이 하향평준화의 주범으로 거론되고 있다. 교육 관료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명문대 진학 실적이 최우선이다.    교육은 서열화를 위해서 존재한다. 메이저 신문에 명문대 진학 상황 대서특필하지 않나. 그래서 3년 담임 샘 안면 때문에 서울대에 진학해서 머릿수 채워 놓고, 재수해서 의대 가는 비극이 종종 일어난다.

 

 

질문: 수업 시간에 개별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한 반응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해답: 한국의 경우 그런 학생은 교실의 질서를 깨고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존재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교사의 지시를 위반하는 문제 학생으로 둔갑하기 일쑤이다. 반면 핀란드에서는 그런 모습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그런 개인적인 행동을 필요 이상으로 통제할 경우, 특히 교사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경우 사회적인 공적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75p)  

한국에도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들 많다. 깨우면 다른 얘들 방해하기 때문에 적당히 묵인한다.  깨워서 함께 가는 것이 교육이지만, 그것은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교실 질서, 수업 분위기를 깨는 학생들 문제는 많이 완와됐다.   필자가 말하는 것하고 많이 다르다.

 


“잘못된 시험과 시험공부가 정말 중요한 것을 희생시킨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는 정말 깊이 고민해야 한다.(78p)    학생들을 단순한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스타 강사의 동영상 강의는 엉터리 수능 교육이다.(80p)    지방자치에서 예산 준다. 유명 동영상 강의 들으라고.   오늘 조선일보에 ‘사교육 때려잡기 위한 동영상 제작 교사 소개’라는 조선다운 제목의 기사가 났다.

 

 

“교사가 학생들을 추궁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는 과연 어떨까? 과제를 하지 않아도, 수업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도,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추궁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20분이 지나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업에 참여 했다.스스로 공부하는 태도를 키워주기 위해서는 정말 철저하게 통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줌으로써 말로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갖게 해주는 것 같다.”(115p)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지방에서는 자율 학습이라 하여 한 밤중까지 학생들을 보내지 않는데, 자율 아닌 타율적인 학생을 기르는 것이다.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을 하기에는 이런 것은 방해가 된다.

 

 


“대한민국교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심지어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했다는 과잉반응도 있지 않을까?   자신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체벌에 인격모독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교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116p)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똑 같을 수 없고, 교사도 개인차가 심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진짜 교육에 관계된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선생님의 태도 - 학생들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지각생을 대하는 태도를 기억하자.  학생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각종 제도와 규칙들이 학생들을 압박하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154p)

 


“학생들은 반드시 정해진 수업 시간에 자기 교실에 가서 바른 자세를 취하고 선생님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런 규칙을 따르느라 압박감이나 거부감을 갖게 된다면 과연 규칙을 지킴으로써 남는 것이 무엇일까? 제도는 유지되겠지만 개인은 결국 희생되는 것이 아닌가? 정학이나 퇴학 같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학교에 가지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갈등으로 인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235p)    교실에 가서 바른 자세를 취하고 선생님을 기다린다.    현실과 거리가 먼 애기다.  필자의 학교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다.   현재의 교육 상황을 아는 사람인지  정말 의심스럽다.  내가 나무만 보고 너무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책 읽기가 양적 ․ 질적으로 부족한 나로서는, 똑똑하고 유명한 독서의 고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었고, 그로 인한 어떤 고민과 성찰을 했는가. 이것이 내가 엿보려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스스로 읽고 느끼지 못하며, 남의 독서 로드 맵이나 스토킹 하듯이 따라다니는 내가 한심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유명 고수들이 읽고, 멘트 하는 부분을 나의 책읽기에 귀감으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위로 삼는다.

 

 

“30년 전 <맹자>를 읽었을 때도 이 말들은 거기 있었다. 나는 분명 그것을 읽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공자님 말씀, 맹자님 말씀’이었을 뿐이다. 옳은 것 같기는 한데, 뭘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말이었다.”(132p)  그래 30년 전의 유시민이라 생각하자.

 

 직장에 얽매여 살아 왔고, 직장 생활 외에는 다른 분야에서 뭐하나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없다. 물론 생업을 위하여 직장에 충실 할 수밖에 없었지만,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냈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휴일 등을 술로 때우고 어영부영 보낸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책읽기에 더 매진했을 것인데.

 

 

언젠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편지 내용이 막내아들과 손자들에게 무슨 책을 읽어라 하는 등 독서를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원래 책을 가까이 한 분이라 <김대중 독서 일기>라는 책도 나와 있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다독한 분으로 알고 있다.  

 


그분이 청주 교도소에 있을 때, 사모님이 책 사다 나르느라고 고생깨나 했다고 한다.  아무튼, 욕먹을 소린인지 모르지만, 그는 감방에서 불행하지만 또한 행복했었다. 머리를 박박 밀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서, 불편한 노안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초라하고 안쓰럽지만 그래도 내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왜, 간섭받지 않고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있으며. 그것도 독방에서 오로지 읽고 생각 할 수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큰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 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통일의 꽃 임수경도 감옥에서 3년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차라리 감옥에나 들어갈까.(?)  

 


내가 존중하는 유시민의 독서의 이력을 엿보게 되었다. 그가 대학생 시절 등 젊었을 때 감동을 주었던 고전을, 다시 읽고 쓴 독후감이다. 그가 읽은 책 목록 중에는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어쩐지 따분할 것 같아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많았다. 그가 읽은 감상을 훔쳐보고 많이 늦었지만 나도 경험해 보리라는 생각에 집어들은 책이다. 읽는 동안, 그와 삶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나의 여러 멘에서 그보다 부족함에 씁쓸했다.

 

 

“초 ․ 중등 학생 시절 문교부가 주최하는 ‘자유교양대회’라는 게 있었다. 일선 학교들은 ‘책 읽기 선수’를 선발해 ‘자유교양 도서 목록’에 올라 있는 책들을 읽게 했다. 나도 학교 대표로 뽑혀 두 번 참가한 적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논어> 등이 도서 목록이다.”(114p)

 


나도 그런 ‘얄궂은 시합’(114p)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도 읽은 기억이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도서목록이 <촛불의 과학>, <춘향전>, 등이다. 학교에서 책을 사서 나누어주면, 읽고, 학교 대표들끼리 상위 단위의 교육청에서 시험을 보았다. 거기에 따르는 문제집도 나왔으며, 시험도 개관식으로 된 문제로 보았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나 당시의 교육 당국이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만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지금은 너무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지만, 박통 시절에는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는 말을 뜻도 모르고 배운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유시민이 발췌한 내용만 봤을 때, 맬서스는 인구가 증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질병이나 전쟁 등을  방치하여 사람이 죽게 만들고, 극단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악으로 보았다. 시대적 상황이 변해도 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시민은 이 책을 통하여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 위험성을  경계했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91p)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의 푸시킨,  그의 <대위의 딸>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  아니 읽었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서 그렇지. 다시 한 번 재독해야겠다.

 

맹자, <맹자>
맹자가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119p)
나는 유학의 성인 반열에 오른 맹자가 이와 같이 ‘불온한 혁명 이론’을 펼쳤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119p) 그러면서, 이혜경의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을 통하여 맹자를 탐구해 나간다.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131p)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하고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고 한다. 그러면 보수주의라는 말을 신경을 써서 사용해야겠다.

 

  
표도르 도스토옙프시키, <죄와 벌>
“왜 사람들은 가난한가.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이 책을 읽고 가지게 된 저자의 유년 시절에 품은 의문이다. 이제 중년이되어 다시 읽은 <죄와 벌>을 통하여, 소냐와 동일시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누이동생 두냐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녀들은 작가가 끝없이 흠모했던 ‘도스토옙프시키의 연인’들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바라던 ‘초인론’을 실행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는 실패하고 만다. 
결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라 결론 내리고 <죄와 벌>의 독후감을 마친다.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없었던 시절,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참 지식이 리영희. 나도 그의 자서전 <역정>을 읽어 본 적이 있다. 허나 유시민처럼 책을 읽었지, 시대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지 않아서 그런지 내용은 별 기억이 없다. 유시민은 리영희를 이렇게 반추한다. “리영희 선생은 놀랍도록 맑은 영혼을 가진 지식인이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며 무서울 정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자기 성찰의 능력을 지닌 지식인이다.”(44p)

 


리영희의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기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 고등학교부터 남의 눈총을 받으며 공부하여 어렵게 대학 마치고 신문기자가 되면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만다고 한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만찬에다 기생과 술로 밤 지새우느라고 전에 가졌던 의식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고 한다.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기사는 ‘매니큐어의 예술’이니 ‘바캉스를 즐기는 법’ 따위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게 언제 적 얘기 인가. 1971년의 <기자 풍토 종횡기>의 글이다. 노통 시절에 기자가 밥 얻어먹고 다니고 기사 쓴다고 하자, 메이저 신문 기자가 우리는 법인 카드 쓴다고 반발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론 자유가 신문사 사주의 독점적 특권이 되고, 언론사가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세습적 권력이 되고, 기자가 언론인이 아니라 기업의 직원처럼 행동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이글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47p)

 

 유시민 본인도 많이 당했다. 보수 신문에서 동료들이 ‘유 촉새“라고 한다고 희화화하지 않았나.  아무튼 요즘 보수 신문에는 기사가 없다. 있다는 게, 현재는 태평성대요, 아무 문제될 게 없다고 만사태평이다.

 

  노무현 시절 그 투철하게 투쟁하고 권력을 감시하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죽은 노무현 꺼내서 가지고 노는 것도 싫증나면,  종종 이런 기사가 메이저 신문에 톱으로 장식한다. ”당신의 아내 거기가 가렵다“,  ”노인의 성생활이 건강에 좋다“ 수십 번 보았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말이다. 지금은 이런 신문을 보지도 않고, 보아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는 게 그래도 희망이다.

 


이영희를 읽고 난 유시민의 성찰이다.”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성찰을 게을리 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어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느냐.“(48p)

 

 

카를 마르크스, 프리딜히 엘겔스 <공산당 선언>
유시민이 읽은 공산당 선언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고 한다.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55p)  얼마 전 타개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로 엄청난 피해자이다. 나는 성장해 오면서 정말로 그가 빨갱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오히려 박정희가 친일주의자이고 여수 반란 시에 그가 빨갱이 짓을 하다가 목숨이 위태로웠던 위기를 맞았었다는 사실을  안지 10년도 안 된다. 족벌 신문을 너무 열심히 보았고, 나의 시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이 번 지방자치 선거에서  유시민이 서울 시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소원성취하길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래도 나에게는 불경스러운 책이었다. 이런 뭐, 콩가루 집구석이 있어 하고 던졌다가 며칠이 지나서 다시 집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이상한 점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반도덕적, 반사회적이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작품이다. 이것을 세상에 내놓고 한 번 묻고 싶었다.”제138회 나오키상 수상작에 대해 이 상의 심사위원인 기타카타 겐조 씨는 이렇게 칭찬인지 혹독한 비판인지 분간하기 힘든 심사평을 내놓았다.(알리딘 서평인용)

 

 

그렇다. 뭔가 뒷부분에서는 반전이 있던지, 바로 잡아 가겠지 하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바람은 가차 없이 무너졌다. 뉴스에서, 간혹 이 소설과 동일한 상황을 저지르는 도라이 같은 놈들을 본다. 그런 패륜이 보도되면 이런 내용을 내보내는 방송국을 욕하며 TV를 꺼버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고,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를 저주했다. 일본은 사촌과도 결혼을 하는, 성 문화화가 개방된 나라라고 중얼거리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논리가 가당치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부모 자식 사이애 해서는 안되는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258p)  "우리 피붙이라고! 다른 사람과는 달라! 해서 안되는 일이 어딨어, 아버지와 딸사이에!(258P)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말았다. 던졌다가도, 집어 들고, 외면하면 할수록 보고 싶어 졌다. 이 불경스러운 책이. 안개가 서서히 강가로 내려앉듯이, 작가의 끈적끈적한 문체가 나를 휘감겨 들어오면 나는 벌써 축축해지고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든다.  아무리 쇼킹한 경험을 소재로 한 여행기도 문체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나는 읽지 않는다.  이 소설의 표현은 진지하면서도 개성적이고 참신하면서도 대중적이다. 다시 말하면 글발이 최고라는  나의 판단이다.

 


등장인물의 묘사 또한 압권이다. ‘내 남자’구사리노 준고는 큰 키에 서글픈 눈에, 고독하며, 무엇인가 결핍된 사람으로 등장한다.  살인을 하면서 까지 하나를 지켜 줄 때는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대부분, 그는 나약하고 처절하게 고독하게 보인다.  하나 역시 ‘내 남자’를 위하여 올인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기성의 온정주의를 과감히 척결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그 남자를 떠나려 한다.  걱정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완전하지가 않다.

 

 

준고와 하나의 섹스 장면은 더러우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그런 완전한 사랑이 없을 정도로 서로가 하나가 된다. 준고가 하나고 하나가 준고이다.  일체의 합일이고, 영혼도 한 몸이다. 이불 속에서 서로 뒹구는 모습은 지저분하면서도 애절하다.    

 


문제는 있다. 준고는 아버지를 여위고 지독하게 엄격한 모친에게서 자란다.  소설 내용 중, 준고가 하나의 가랑이에 얼굴을 묻고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다. 이것이 엄격한 엄마를 겪으면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 아닌지 의문을 가져 본다. 또한 준고 자신이 아동 취향의 성장애자는 아닌지. 청소년기, 모친의 애정 결핍이 성인 여자를 꺼려하게 만든 이유가 아닌지.

 

 

아무튼 일본 소설이 국내에서 잘 읽히는 이유는 이 소설과 같은 부류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이 4쇄가 나온 것을 보면 많이 읽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은 개인 체험이나 내적인 갈등 위주의 정서에 머물고 있지만 일본 미스터리는 인간 내면의 추악한 밑바탕까지 파고들기 때문은 아닌지. 일독하여 추악하고 불경스러운 사랑을 느껴 보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가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한 나에게는, 영화감독들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화에 문외한이지만, 박찬욱 만은 낯설지가 않다.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등, 비록 TV를 통해서 보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해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우리나라 영화보다는, 보여 주려는 메시지가 폭 넓으면서도 분명하다. 시사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거창하게 나가지 않고, 소박한 소재에서 조그마하게 시작해서, 영화 말미에서 우리의 가슴에 폭풍을 불어오게 만든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그의 작품의 최우선 덕목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박찬욱은 개성 만점, 창의성의 덩어리로 보인다. 그가 자기 딸의 숙제로 쓴 가훈이나, 동화만 보아도 그가 남다른 참신한 뇌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하기야 작품성 있으면서, 또한 돈 되는 영화를 그렇게 많이 만들었으니 그 능력이 어디 가겠나.   

 


그의 딸과 공동으로 창작했다는 ‘짝짝이’라는 동화는 재미있으면서도 남과 같은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그의 개성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가 평범하고 밋밋한 삶을 싫어함은 이 책 곳곳에 보인다.  누구든 그리 하니, 나는 그리 하지 않았다. 남과 달리하면 불안하고 불편함을 그는 감수하고 체질적으로 같음을 싫어한다.  짝짝이 신발을 유행시키고, 다른 사람이 모두 따라하니, 다시 같은 신발로 돌아오는 행위는 그가 항상 일탈을 꿈꾼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런데 그의 선천적 재능만으로는 그의 성공은 불가능했으리라. 거기에 그의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불굴의 노력이 작품의 가치를 배가 했을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AS>,배경음악을 위해서 김광석의 노래를 5백번 정도 들었다." 100번도 아니고 5백번씩 같은 노래를 듣는 의지가 그에게는 있었다. 사소할 것 같은 뒷배경 신도 20번씩 반복해서 촬영하는 지극정성의 노력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박찬욱을 만들었으리라. 

 

 

“처음 박찬욱 감독임의 <공동경비구역 JAS>의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남북문제라는 소재 면에서 상당히 의외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택하게 되었습니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영화 속 남북한 병사의 교류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공상영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가능하다. 최전방 GP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나의 경험으로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목이 터져라 소리쳐야 하지만 수시로 그들과 대화가 거의 매일 있었다. 내 앞의 부대는 간식으로 나온 라면 및 과자를 가지고 작전 나가서 그들의 담배와 바꾸어 즐기다가 부대가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른바 80년대 세대로서, 내가 가진 시대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혁명을 애기하던 시절  B무비와 히치콕에 탐닉하던 나와, 인터넷이나 밴처니 매트릭스니 뭐니 떠드는 지금 이런 영화를 만들고 --- 자신이 당대의 유행에 거슬러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승인해야 되려 맘이 편해지고 안정감이 생기는, 그런 타입이니까요, 나는.”(161p) 그렇다. 민주화에 무임승차했다고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 시대에, 영화에 몰입하여, 남북문제 등 현재의 과제를 우리에게 진지하게, 때로는 흥미 있게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감독의 배우 캐스팅도 영화의 성패 여부를 좌우한다고 볼 때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도 박찬욱의 안목은 탁월하다. “영애씨처럼 불면 날아갈 것같이 생긴 사람이 이를 악물고 불의에 대항하는 모습이 더 멋지지 않은가요?”(168p) 소피라는 역할로 왜 이영애 씨를 캐스팅 했는가의 답변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그가 본 B급 영화 수십 편을 소개했다. 거기에 무지한 나에게는 너절하게 느껴졌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이 책이 아주 달콤하고 매력 덩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 한국경제 대전망
심영철.선대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내 집을 돌려도’ 라고  절망하며 외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한 사람은 이렇게 절규할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이 2008년도 11월 판이니, 그때 금융 외기로 한참 헤매고 있을 때이다. 하루에도 주식이 100포인트씩 급락하고, 국민 펀드라 지칭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금융 자산이 죽을 쑤고 있을 시기이다. 그 당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시대기적인 분위기로 더 이 책의 내용에 설득을 당하고, 저자의 주장에 신뢰감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잽싸게 집을 팔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잔치는 끝났다. 거품의 시대는 가고 붕괴의 시대가 온다. 나라 전체가 아파트 거품에 취해 살던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빚잔치를 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한국 경제에 엄동설한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5p) 

 


최영미 시인의 시집 제목과 같이 서른 살이 아니라 부동산 잔치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지금 시점에서, 2009년을 되돌아보면 이 주장이 수긍이 가는가. 오히려 수도권의 집값이 전 년 대비 30%를 급등했다고 하니, 이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엄동설한이 엄습’하는 것이 아니라 동빙한설의 시대는 거하고 화풍난양의 시대가 왔으니, 그 때 섣불리 부동산을 팔아치운 사람은 땅은 치고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쟁점을 선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한 것인지, 아니면 모든 책이 부동산 사라고 하니, 그 반대의 논리를 펴 책 팔아먹으려는 술책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김광수 경제 연구소와  관계있는 사람들로 아는데, 이 연구소의 이미지로 보았을 때 그렇게 막나가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전에도 이런 주장을 하였는가 보다. 마침내 세계 금융 위기가 오니, 봐라 이넘들아 내 말이 꼭 맞아 떨어졌지, 그렇지 하고, 자기의 선경지명을 알리려 했는지, 이런 말도 덧붙인다. “필자는 3년 전 공저했던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라는 책에서 이미 경고한 적이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붕괴된다. 따라서 이제는 부동산을 떠나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한다. "(17p)

 


그러면서  이번에는 단기적인 조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번 집값 거품 붕괴는 단시일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엉터리 전문가들이 ‘외환위기 학습 효과’운운하며 집값이 떨어져도 단시일 안에 반등할 것처럼 떠들어댄다. 과연 그럴까?”(16p)  그렇다. 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러 가지 부수적인 원인이 있었지만 이 책의 필자의 말이 틀린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부동산이 ‘승자독식’의 시대를 만들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시장 시절부터 서울 집값 올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11p)   “대통령 뉴타운 대통령, 현 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각종 규체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집값을 올린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위해 경제를 파탄 냈고 서민들의 주름살을 늘렸다.”(14p)

 


왜 필자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을까. 초기 정부의 주요 핵심 브레인들이 부동산으로 부자 되고, 투기 안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강부자 정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위장전입을 비롯하여 각종 실정법을 어기면서도 부동산에 애착을 보여 온 사람들 아닌가.

 

나는 경제와 특히 부동산에 문외한이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수도권 부동산은 약간의 조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로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자기 임기 내에 나라를 말아 먹어도, 부동산 버블인지 거품인지를 걷어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 주요 관심과가 무슨 과인가. 수십조 단위의 돈을 쓸어 넣고 부양책을 쓸 것이다. 건설 부양책은 김대중도 쓰고 누구나 손쉬운 경제 띄우기 정책 아닌가.  부동산 값은 올랐지만 오로지 노무현 정권만 부양책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이명박 천하장사’의 괴력을 믿는 것이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집값을 반드시 다시 올려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18p) 우리는 믿고 있다. 그리고 올려주었다. 그대만 믿지 않고, 계속 팔라고 한다.  이명박 임기에는 은행돈을 풀던 외채를 쓰든 결코 부동산 값 떨어트리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살펴보자.


1. 대한민국 집값 폭등의 진실
“우선 투기로 집값 상승, 그리고 건설업계와 중앙 정부의 유착, 건설업계의 담합 및 투기에 편승한 분양가 조작, 건설업계의 분양광고를  매개로 한 언론 매체의 선동적 왜곡 보도, 부녀회나 반상회 등 주민 등의 집 값 단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31p)

 


매우 올바른 지적으로 본다. 특히 건설 광고의 주요 대상이었던 보수 신문 3사의 힘이 크다. 노무현 시절 그 신문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었다. 노무현과는 꼭 반대로 만 갔다. 그 당시 정부 각료가 집이라도 사면, 이 자식들 봐라. 국민한테는 투기 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들은 집을 샀다. 좌파도 집을 사냐.  이름도 이백만이다.(모 수석이 이름이 이백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서울을 까려던 노무현은 실패했다. 결국 그 보수 신문 3사의 승리였다. 그들의 사주는 서울에 부동산이 많다고 하는데, 결국 그들은 승리했다. 비열하지만 잘 싸웠고, 서슴없이 왜곡했다.

 

2. 경제를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거품을 빼야 한다.
“일부에서는 집값 거품이 붕괴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건설업체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학계 인맥들, 재벌계 경제연구소,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그렇다. 그들은 집값이 폭등할 때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니 정부가 억제책을 쓰지 말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97p)  

보수 신문과 강부자 정권, 그리고 극우 세력은 환상적인 결합을 하고 있는데     그럴리가 없다.  절대로 나라를 망하게 했으면 했지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영원할 것이다.


“1초라도 빨리 손절매하라.”(164p)
“그렇다면 지금 서민들이 내 집 마련에 안달한 필요가 없다. 거품이 가뜩 낀 집을 역사적 고점에 가까운 지금 사는 것은 미련하다 할만하다.”(168p) 
“시간은 많다, 충분히 바닥을 확인한 다음에 사라 (180p)” 헐 헐 헐 ․ ․ ․

“세계 부동산 트렌드를 일고 대비하라.”(193p) 아니다. 우리나라는 특수하다.

 


왜 필자는 이명박 정부가 강력한 부양책 쓸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 했을까. 그들은 경제 전문가 아닌가.   어느 인터넷 신문에 김광수 소장과의 인터뷰가 실렸었다.  인터뷰 당시, 집값이 급락하니 빨리 팔아야 한다고, 책 내고 각종 언론에 떠들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을 때이다. 기자가 물었다. 당신 말만 믿고 집 팔고 부동산 팔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어 고통을 당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의 취지였다. 상당히 경제적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김 소장의 말이 걸작이었다.
분명히 부동산 가격이 떨어 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정권이 떨어지려면 부양책을 써서 하락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심하다. 그러면 그런 전제를 예상해서 더 크게 부각시켜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