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 전후부터입니다.이 시기는 대학가 부근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것과 일치합니다.문화계에서는 80년대와 다르다며 포스트모던이즘이 정확한 정의도 되지 않은 채 유행하기 시작한 때지요.80년대에 노동이니 민중이니 하는 소재로 글을 쓰던 젊은 소설가들은 조로증에 걸려 중년남녀 같은 추억담을 소설화합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한 독서시장은 80년대를 옛날처럼 느끼게 만듭니다.광주 헌책방 가에는 1994년 무렵부터 80년대의 사회과학 서적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80년대 수많은 사회과학서적을 찍어냈던 중소출판사들이 모조리 문을 닫고 그런 책을 읽었던 이들도 헌책방에 책들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이미 그런 책들은 찾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광주의 중고교 앞에 두 서너개 개씩 있던 헌책방들은 이미 21세기가 되기 전 문을 닫습니다.내가 드나들던 경신여고 부근, 북성중 부근 서점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도 않지만 80넌대 20대와 90년대 20대의 독서성향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X세대는 80년대의 사회과학서적들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코드가 부착된 책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활자도 달라집니다.80년대 책의 자잘한 활자가 익숙치 않은 세대가 생깁니다.아마 지금의 30대 중반만 해도 활자가 생소해서 80년대 책을 못읽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요즘 나오는 열린책들의 활자도 너무 빽빽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입니다.이렇게 활자가 달라진 것도 헌책방 쇠락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 하는 데 대한 불편함을 지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 헌책방이 내리막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방송에서는 "물건 값을 깎아주는 재래시장의 매력...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좋아요...운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방송인들이 정말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흔히 재래시장이 사양길에 접어든  원인으로 대기업이 유통사업에 침투한 것을 듭니다.하지만 소비자들이 마트나 편의점을 더 많이 가게 된 것은 그곳이 그냥 깔끔하거나 고급스러워서 때문만은 아닙니다.물건을 고른 다음 주인과 흥정하는 관행을 불편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정가도 분명치 않고 때로 불친절한 주인한테 안 좋은 소리도 들어야 하니 그런 과정이 없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내 돈 내고 물건 사는데 왜 그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그런 심리죠.

 

 헌책방은 일단 헌책을 고르면 그 다음부터 주인과의 신경전이 시작되는 곳입니다.똑같은 책도 서점마다 부르는 값이 다릅니다.아무리 헌책방을 오래 다녀 도가 튼 나같은 사람도 주인이 얼마를 부를지 감을 잡기 힘듭니다.광주에도 헌책방 이용자들 사이에 다른 곳보다 비싸게 책값을 부르는 곳은 다 알려져 있습니다.헌책방 주인들도 "거기는 왜 그렇게 비싸게 파는지 몰라..." 하고 다 소문이 나있죠.하지만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귀한 책이 그런 바가지 씌우는 헌책방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책을 사게 됩니다.그런데 나중에 다른 헌책방에도 그 책이 있고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찜찜함이란...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면서 헌책방을 추켜세우는 사람은 많겠지요.하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새책방 가는 일도 드뭅니다.헌책방을 가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겠지요.내가 가는 어느 헌책방은 1990년대 후반에 매물로 나온 80년대의 사회과학 책들이 아직도 안 팔린 채 서가에 많이 꽂혀 있습니다.그런 책들은 이미 지금의 40대 초반에게도 버림 받기 시작했죠.그런데 30대나 20대가 그런 책들을 보겠습니까? 그렇다고 전통을 보존하자며 헌책방 살리기 운동을 한다면 이 무슨 새마을 운동도 아니고 무슨 짓이냐 할 것입니다.

 

  내가 단골로 가던 헌책방들이 한 두 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거의 이십년 전부터 하나 둘 씩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지요.하지만 이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받아들여야지요.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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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 책과 90년대 책의 확연한 차이는 바코드가 있나 없나의 차이이겠군요.
저도 동네 전철역 바로 앞에 헌책방 하나가 있어서 자주 가는데, 그냥 산책처럼
한달에 2번 정도 가는데 가면 항상 커피를 주세요. 여름에도요..ㅎㅎㅎㅎㅎ
땀 뻘뻘 흘리고 나면 기래도 기분이 좋던데. ㅎㅎ.
요즘은 몇달 계속 문을 닫고 계시네요. 안은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걱정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13-03-30 20:19   좋아요 0 | URL
92년까지는 바코드 없는 책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바코드가 정착했죠.

안은 그대로 비치는데 문은 닫은 헌책방은 광주에도 있습니다.전화연락해보니 폐점이더군요.

숲노래 2013-03-2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은 '전통'이 아닌 '문화'이니,
헌책방에서 문화를 찾는 사람들은 누가 무어라 하건 언제나 즐겁게 마실을 하겠지요.
그러나, 헌책방을 '전통'으로만 여기거나 '추억'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건값 깎아 주는 재래시장 매력" 읊으면서 정작 당신 스스로는 책방마실 안 하면서
'예쁜 화면' 찍기에 바쁠 테고요.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모두 똑같이 책을 다루는 아름다운 보금자리라고 느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3-30 20:18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이 말하는 문화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승주나무 2013-03-3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투쟁의 패러다임이 많이 남아 있고 그 녹슬음에 대한 반응들인 것 같아요. 헌책방에게 어떤 옷이 어울릴지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3-30 20:41   좋아요 0 | URL
알라딘처럼 변신하는 수밖에 없죠.
헌책방 주인들 스스로도 이런 식으로는 기존의 헌책방이 10년 내에 다 없어질 거라고 예측하더군요.

transient-guest 2013-04-09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처음에 바코드가 찍힌 책을 보면서 좀 낯설어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도 바코드는 666의 표현이라고 가르치고 믿는 매우 많은 '일부' 개신교인들도 생각이 나구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4-09 16:47   좋아요 0 | URL
아직도 그런 걸 믿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답답하긴 하지만...

transient-guest 2013-04-10 00:10   좋아요 0 | URL
요즘 버전은 나노칩이더군요...-_-::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한 징표라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노이에자이트 2013-04-10 17:06   좋아요 0 | URL
이리저리 논점 바꾸는 데 능한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