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도살장과 육가공 업체를 생생하게 묘사한 소설<정글>로 알려진 업톤 싱클레어. 하지만 그가 문학사를 새롭게 해석한 책을 썼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싱클레어는 예술이 무엇을 섬겼고 무엇과 투쟁했으며 무엇을 선전해 왔는가를 알리려고 했고 그 작업을 위해 <매먼아트Mammonart>를 썼지요.이 책에선 우리가 찬양하는 숱한 시인 소설가들을 무자비하리만치 혹평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싱클레어가 사회주의자였음을 실감하게 되지요. 

  소련에서 나온 <세계철학사>나 연변대학에서 나온 <세계문학사>를 읽어보면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서 아주 조금만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사회주의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지요.그렇지만 분량 자체가 적으니 자세히는 알 수 없습니다.그 대신 싱클레어의 책에선 꽤 자세하게 나옵니다.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도스토예프스키를 맹타하니 도스토예프스키 찬양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라면 충격을 받을 만합니다.소개한다면... 

 ---이 작품(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내 견해를 분명히 밝힌다면 이작품은 높은 수준의 낭만과 주관을 나타내고 있고 매우 감격적이며 심지어는 광신적인 선전을 말하고 있다.도스토예프스키는 정통 동방교회 교인이거나 비잔틴 교회의  기독교도다.또, 그는 슬라브 민족숭배자이거나 신비로운 러시아 애국자로서 러시아 정신은 하느님과 비밀관계에 있는 놀랍고도 특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죄와 벌>에 나오는 젊은 대학생이 사람을 죽였다는 두려움에 눈떴을 때, 그는 자신의 교양있는 두뇌를 어떤 유용한 노동에 바침으로써 자신을 속죄하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는 경찰에게 자수하려고 마음먹는다.그 경찰은 자신보다도 더 나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수천만의 감추어진 범죄들의 추출물인 정부는 그를 시베리아로 압송할 것이며, 따라서 그와 그의 경건한 매춘부는 아마도 고뇌라는 황홀경을 이겨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모든 예술분야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보다 더 정신적인 비극을 다룬 작품은 없다.이 사람은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한 적도 있고, 짜르 정부는 그를 순교자가 되게 하였다.그러나 그는 되돌아왔다.계몽을 위한 투사로서가 아니라, 다만 먼지 속을 기어다니면서 그를 때린 손을 핥는 존재로서였다.그는 반동을 선전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러시아가 수도사들 덕에 구제된다고 선언하면서 되돌아온 것이다. 참으로 그는 앞날을 예언한 셈이다.러시아를 구제한다는 수도사가 나타났는데,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바로 그 이름이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 시절, 신비로운 주술로 불치병을 치료한다면서 궁전에 들락거리던 수상한 성직자.숱한 추문을 일으키다가 귀족들에게 암살당함.3년 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남.

 ---제멋에 겨운 아메리카의 평론가들이 이 병적인 신비주의자(도스토예프스키를 가리킴)를 찬양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벽돌이라도 던지고 싶었다. 

    ***<정글>은 최근에도 개정번역이 나왔지만 <매먼아트>는  1979년 광민사에서 <힘의 예술>로 박준황 씨가 번역한 것이 전부이고 절판된 뒤 감감무소식임.광민사는 <정글>번역판을 낸 출판사.그때는 '쟝글'이라고 표기했음.번역자는 평론가로 유명했던 채광석 씨. 

    ***도스토예프스키의 반동주의를  비판한 박노자의 글은 박노자 <하얀가면의 제국>에 실려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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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클레어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는 매서운 비판을 했군요. ^^ 도스토예프스키를 자주 읽는 저로서는 읽어도 읽어도 이해를 하는데 힘겨운 터라 싱클레어처럼 단언을 하고 작가를 평가할 수가 없네요.

싱클레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본 시각은 제 시각과는 많이 틀리네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찬양가는 아닐지라도 호감을 가진 독자로서 노이에자이트님의 말씀처럼 좀 충격적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5-28 15:19   좋아요 0 | URL
강한 표현을 하긴 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반동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것 자체는 사실이죠.

충격을 딛고 다시 한번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도전해 보시길...

루쉰P 2011-06-02 14:11   좋아요 0 | URL
도 작가는 톨 작가와 더불어 저의 영원한 동반자죠. 물론 반동적이고 국수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도 작가여서 그의 사상을 더욱 더 깊이 있게 파헤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작가를 온건히 모두 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1-06-02 16:03   좋아요 0 | URL
19세기 러시아 사상사, 특히 슬라브 민족주의를 함께 공부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루쉰P 2011-06-05 03:58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해요. 노이에자이트님 덕분에 공부할 것은 항상 늘어만 갑니당~~

노이에자이트 2011-06-05 14:39   좋아요 0 | URL
그렇기도 하겠네요.

비로그인 2011-05-27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엔가 '최근 개정판'으로 나온 <정글>을 봤습니다. 페이퍼로드에서 냈죠 아마. 개정판이라지만 채광석 씨가 번역한 것을 달리 손댈 수는 없었을 테니 츨판사를 달리해서 낸 것이라고 해야겠군요. 음, <매먼아트>도 번역이 되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8 15:20   좋아요 0 | URL
매먼아트는 조용히 서점가에서 사라져버렸죠.

blanca 2011-05-27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는 서머싯 몸도 진짜 악담을 퍼부었잖아요. 그가 각광받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적나라한 실토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그의 삶 그 자체는 비난받을 소지가 많긴 하더라구요. 작품이 위대한 것과 작가가 위대한 것은 조금 분리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특히나 도스토예스프스키는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8 17:09   좋아요 0 | URL
서머싯 몸은 <세계 10대소설과 작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생활과 인간성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었지만 정치관이나 사회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들어가지 않았죠.그것이 싱클레어와의 차이점입니다.

싱클레어는 이 글을 통해 작품과 작가개인을 분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작품과 그 작품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는 사상을 분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죠.

무해한모리군 2011-05-2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노이에자이트님의 이런 페이퍼는 보석같아요 ㅎ
저는 아주 힘겹게 죄와벌을 읽었을 뿐인지라, 통속극 같은 그 냥반이 왜 그리 대단한지를 알기는 더 어려워서 무척 이 글이 재미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5-28 15:24   좋아요 0 | URL
저는 보석 같은 남자!

박노자 씨의 글도 재밌어요.도스토예프스키 좋아하는 이들은 분노했지만...

미국사람 2011-08-18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광석 선생 이야기가 있어서 한자 씁니다. 저도 채광석이 번역한 정글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몰연대가 1948-87 이니 나보다는 많이 윗세대인데 40을 못넘기고 갔군요. 세상을 온몸으로 살고 갔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장에서 여러 사람이 목놓아 울었다고 하더군요. 살아있으면 평론가로 이름을 좀 날렸을 듯 합니다.

채광석의 정글은 완역판은 아니고 70% 정도 번역한 것 같읍니다. 영문책은 가지고 있는데 번역본은 어디론가 없어져서 확실치는 않읍니다만.... 개정판이 나왔다니 반갑군요.

20년도 더 지났지만 채광석 선생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업톤 싱클레어는 100권이 넘는 소설을 썼는데 시대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정글 한권만 남았읍니다. 정치적으로 너무 급진적이어서 자본만능주의가 횡횡하던 20세기초 미국 당시 상황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구요.

마몬아트는 제 기억으로는 종로서적출판부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만(아닌가요?) 사회주의적 입장에서 본 문학사입니다. 평론 쪽에서는 완전히 무시당한 책이구요. 이렇게 인기 없는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는게 기적같은 일인데 아마 당시 시대상황과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읍니다.(박정희 시대였는지 전두환 시대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어쨌건 노이에자이트님의 박식에 또 한번 놀랐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8-18 22:39   좋아요 0 | URL
예.교통사고였더군요.얼굴도 잘 생긴 남자였죠.

미국문학사에서도 싱클레어는 일종의 선전문학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정글 후반부에도 좀 노골적인 사회주의식 훈계가 좀 있죠.

마몬아트는 위에 적었다시피 1979년에 광민사에서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선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았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