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자에 꽤 익숙한 편입니다.학창시절엔 친구들이 과제물의 표지에 한자로 제목을 써달라고 내게 부탁하기도 했지요.서예를 배운 건 아니지만 펜글씨로 한자를 쓰는 것 정도야 괜찮게 한 편이라 그런 부탁 쯤은 들어주었습니다.하지만 한문을 안다고 우쭐대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내가 특별히 겸손하거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한문을 잘 안다는 이유로 전통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남에게 훈계나 늘어놓는 사람들이 싫어서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몰락한 양반입네 하면서 동네에서 거들먹거리던  몇 몇 나이든 한량들을 기억할 겁니다.이들의 특징은 가족부양능력이 없는 주제에 콧대는 높아서 걸핏하면 가문의 영광 운운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입니다.가끔 멋드러진 붓글씨 솜씨를 자랑하면서 한시를 쓰기도 하고 좀 더 나아가 난을 치기도 합니다.그러다가 "요즘 것들은 서양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우리 것을 소홀히 한다" 는 둥..."한문을 모르니 우리 전통을 모른다"는 둥 우국지사 같은 말도 합니다.하지만 동네에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아줍니다.처자식을 먹여살리지도 못하면서 자존심만 남은 그 처지에 동정하는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이긴 했지만 같은 남자로써 그런 영감님들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이상하게 그런 이들이 한학을 배웠다는 이유로 한문 실력은 좋았지요.내놓을 것은 왕년에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는 것과 가끔 한학실력을 과시하는 것 뿐...그래서 한문실력을 과시하면서 낡은 인습적 도덕을 장광설처럼 늘어놓은 이들이 싫었습니다.나는 한문을 공부해도 저런 좁쌀영감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굳게 맹세했지요.그래서 한자나 한문 외에도 오래전 60년대의 번역본을 구해 읽으면서 아직은 꼬부랑말이나 번역투 문체가 많지 않던 시절의 우리말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몰락한 양반가문의 자존심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출판사 후마니타스 대표인 박상훈 씨가 겪은 집안의 비극이 그 예입니다.박 씨는 6형제의 막내인데, 제일 큰 형은 아버지가 첫 결혼으로 맞은 여인의 아들이었습니다.배다른 형이었지요.박 씨의 할아버지는 경제적으론 무능했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양반가문의 혈통이란 것과, 전통적인 한학교육을 받아 한문에 능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무능한 남편을 만나 시집온 할머니도 역시 양반가문에 시집왔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두 분은 자신들의 초라한 삶에 대한 보상을 과거시대에나 어울리는 위신과 혈통에 매달려 찾으려 했지요. 

  그런데 그 배다른 큰 형은 떡방앗간을 운영하면서 가정경제를 책임졌던 박상훈 씨의 친어머니(그 형에겐 새엄마)를 돕기 위해  식모로 들어왔던 한 여성을 좋아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뼈대있는 가문임을 강조한 조부모는 식모와 결혼하다니 말도 안된다며 결사반대했고, 이에 비관한 그 큰 형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박상훈 씨는 그 큰 형의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이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문교육을 강조하면서 인습적인 도덕교육과 연결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어린이나 청소년들을 길들이기 위한 굴레로 활용하려는 속셈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나는 그런 덫에 빠지지 않으려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사상을 공부하면서도 새로운 사회과학적인 분석틀을 사용한 저서들을 읽으면서 최신학설을 익히는 데도 힘을 기울였습니다.덕분에 대륙이나 일본 사회주의 계열, 혹은 구미의 학자들의 저서까지 읽게 되었지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문을 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사람보다는 동양의 역사나 사상을 안다는 이유로, 낡은 인습적 도덕을 강조하거나,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자부심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오만하게 대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할 권리는 그 누구도 없는 것입니다.그가 양반가문의 후예이건, 한학실력이 좋은 사람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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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10-10-0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한문 공부를 해서 옛 고전들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고전번역원에서 학생도 모집하던데, 직장인이 가기는 어렵고 해서, 좀 더 나이가 들면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한문을 안다는 것으로 낡은 인습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한문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겠죠.

노이에자이트 2010-10-09 15:53   좋아요 0 | URL
요즘은 좋은 책이 많이 나와서 독학해도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한문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죠.

2010-10-09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19   좋아요 0 | URL
하하하...한문 잘한다는 자랑도 그렇게 한다면 애교가 있겠네요.모쪼록 좋은 성과 거두십시오.말로만 듣던 경주 최씨 가문 출신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딧불이 2010-10-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은 커녕 한자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저는 논어 맹자를 줄줄 읽으면서 해석하시는 분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논어 맹자는 분량이 좀 있으니 대학이나 중용 같은 적당한 분량의 고전부터 공부하면 부담이 덜 될 것입니다.

ChinPei 2010-10-0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안 어르신들께서도 가끔 가문에 대해서 이야기하시지요. 양반 집안이었다고요.
그러나 이 시대에, 게다가 일본에 있으면서 과거의 영화(榮華)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저속한 말이지만 "과거의 영화가 밥을 먹여 주지는 않다."

"우리는 세종 대왕 시기에 영의정 되신 분의 후손이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은 한국에 수두룩히 계실 것이지요.
그러나 일본이란 이국에서 민족심을 견지하려면 가끔 그런 공허한 과거의 "빛나는 업적"이 필요할 경우도 있어요.
저의 아들도 가끔 나에게 물어 봅니다.
"우리 집 조상님중에 훌륭하신 분은 없으세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말하지요.
"우리나라 글을 창시하신 대왕님 시대에 총리대신(總理大臣)을 하신 분이 계셨단다."
그럴 때 어린 것이 집안 = 민족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요. ^^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2   좋아요 0 | URL
영의정을 총리대신으로 알려주었군요.하기야 의원내각제에 해당하는 직책 중 영의정에 해당하는 직책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겠군요.적당한 자부심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카스피 2010-10-0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존심만 남은 뼈대있는 가문도 문제가 있지만 더 문제는 요즘 문제가 되는 이른바 고위 공무원 가문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원이라고 자식들도 여러 편법을 동원해 들어가는것도 참 문제지요 ㅜ.ㅜ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3   좋아요 0 | URL
그런 가문도 몰락한 후엔 자존심만 남은 뼈대있는 가문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흑해 2010-10-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선왕조가 혁명을 통해서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자칭 민주주의자들이 세습에 대한 태도는 왜 그런 건지? "대권"이라는 봉건적 용어는 왜 아직까지 쓰고 있는 건지? 또 역사학자 이태진 같은 분은 고종의 증손자나 고손자쯤 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지요.하긴 민주주의를 거론하면 등장하는 일이 잦은 영국의 명칭이 United Kingdom이니 세상은 요지경이지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스스로 독자적인 생각을 지닌 민주주의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새로운 "人間"의 출현은 꿈같은 일인 걸까요?

제가 이해하는 天上天下唯我獨尊은 개인의 고유성 또는 독자성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존심만 남은 뼈대있는 가문"의 사람들은 다르게 이해할지도 모르겠네요.

위의 글들을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세상을 뜬 巴金의 작품, <家>가 머리 속에 떠오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1 20:24   좋아요 0 | URL
이태진 씨야 이 세상 모든 기준을 고종을 존경하느냐 여부로 가리는 분이라서요...

뭐...그냥 저 잘난 맛에 사는 거지요.독선으로 무장하고...

요즘은 바진의 작품도 거의 안 읽히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2 13:42   좋아요 0 | URL
대학 때 유학을 전공한 한 교수님은 '주자'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어요. '주자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구요. 내가 저 분처럼 '주자'로 밥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뭘 그리 존경해야 하는지는 의문이었구요.
한학에 정통하셨지만 누구보다 평등한 세상을 바라고 실천하셨던-그래서 일평생 고생하셨던-노촌 이구영 선생 같은 분도 계시죠. 심산 김창숙 선생 같은 분도 계시구요.
빠진은 중국문학 전공하는 사람들도 높이 평가하는 작가는 아니에요. 특히 <家>는 졸작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10-12 15:09   좋아요 0 | URL
주자님이라...그런 교수가 실제로 있었군요...

노촌이나 심산같은 분은 정치적인 박해도 받았으니 고루하기만한 인습주의자들과는 달랐겠죠.

그래도 한때 노벨상을 중국인이 받는다면 빠진이 받을 거라는 말도 있었죠.요즘은 아무래도 좀 옛날사람 같다는 느낌이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2 15:50   좋아요 0 | URL
올해 노벨평화상을 류사오보가 받으면서 중국 당국은 연이어 노벨상과 악연을 맺게 되었네요. 2000년에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사람은 프랑스에 망명한 작가지요. 전형적인 반체제 작가인데 그의 수상에 중국 당국은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구요.
빠진은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는데, 실은 중국에선 그의 수상을 바랐을 거예요. 어쨌거나 체제 안에 있는 작가니까요. 그가 죽었으니 그 바람이 왕멍에게 가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왕멍은 후보로도 오른 작가인데 빠진에 비할 때 작품성도 있구요. 물론 그를 친체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죠. 그저 체제 안에 있을 따름이구요. 텐안면 사태 때 그는 책임을 지고 문화부장을 그만 두기도 했으니까요.
미국에 체류하는 반체제 시인인 베이다오가 있어요. 그도 후보로 종종 올랐는데 그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중국의 입장이 꽤 흥미로울 듯 합니다.

흑해 2010-10-13 16: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巴金 얘기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저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면 巴金만 아니라 파고세운닥나무 님이 높이 평가하는 작가들까지 포함해서 중국 출신의 작가, 그 누구에게도 노벨문학상을 하나도 주지 않을 겁니다. 줄 사람이 더 이상 없다면 모를까 보르헤스도 못 받은 상을 왜 중국 작가들에게 줍니까?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도 않겠지만 저는 그런 식의 "기계적 평등"은 거부하고 싶습니다.

그 대신에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작가들에게 좀 더 많은 상을 줄 겁니다. 19세기였다면 러시아 출신들에게 노벨문학상을 몰아줬겠죠. 왜 이렇게 특정 지역에 노벨문학상을 몰아주느냐고 비난을 받으면 당연히 받을 사람들에게 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군요.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거시기한 작가이기는 합니다만...(<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사람이죠.)

공자, 주자할 때 "子" 자체가 이미 높임말 아닌가요? 전 그런 거 보면 인간은 스스로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굴종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네요.

독서에 대한 제 태도를 밝히자면

저는 오히려 고전을 읽지 마라, 만일 고전을 읽더라도 인습적인 시선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읽는 베스트셀러를 절대 읽지 마라,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책들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마디 더 하자면 졸작도 읽어봐야 합니다. 졸작을 읽으면서 책들을 가려내는 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문학작품을 읽으면서도 그 작품의 생산`유통`소비 및 이데올로기적 효과까지 염두에 두며 읽는 게 바람직하겠죠. 노벨문학상이라고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4 12:17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얘기를 하셔서요. 저는 중국문학만 좀 거들게요.
저는 중국현대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제 입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지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중국현대문학을 싸잡아 무시하는 '흑해'님의 말씀은 수용하기가 힘드네요.
보르헤스가 상을 받지 못했대서 왜 중국작가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겁니까? 그게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네요.
가오싱젠에게 상이 돌아간 게 정치적 이유도 있을테죠. 하지만 제가 읽어내기로 그의 작품들이 그동안 노벨상을 받았던 여타의 작가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에요. 후보군에 올라있는 왕멍이나 베이다오 같은 작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구요.
졸작도 읽어야지요. 왕멍이나 베이다오가 졸작이더라도 읽어야지요. 저는 열심히 읽고 있어요.

흑해 2010-10-14 14: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반론이 아니라 해명입니다. 상당히 긴 글인 것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고세운닥나무 님에게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누군가를 배제하는 행위입니다. 선택과 배제는 실제로는 같은 행위죠.

100년 넘게 노벨문학상을 중국 작가에게 주지 않고 있는(또는 주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아니지요. 그리고 어느 나라 출신이 노벨문학상을 받느냐에 집중한다는 것은 이미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 보는 겁니다.

근대가 만들어낸 "어느 네이션의 문학"이라는 인식의 울타리 안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흑해 2010-10-14 14:4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또 단서를 붙인 걸로 아는데요. 저한테 그런 권한이 있다면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작가들에게 상을 몰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쪽 출신들이 충분하게 상을 받은 것 같아 보이겠지만 유럽 작가들 때문에 손해 본 것은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출신들입니다. 물론 아프리카가 가장 무시되어 왔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지요.

아마 파고세운닥나무 님은 이렇게 말하는 제가 중국 문학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도 반문할 수 있지요. 중국 외의 다른 지역의 문학에 대해 얼만큼 알고 계시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게 계량화하거나 수학화해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제시할 수 없겠죠. 그래서 저는 저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겁니다. 제가 정한 기준에 이의제기나 비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공개되지는 않겠지만 노벨상을 정할 때 어떤 식의 토론이 오고 가는지 가끔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 시인 네루다의 시나 마르케스의 작품들, 그리고 왜 노벨문학상을 못 받은 건지 알 수 없는 보르헤스의 작품들(그 외 기타 등등)은 노벨상을 한 번만 주는 게 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지역별 안배에 매몰되지 말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사람이 없다면 주지 말아야 한다고 보며 라틴아메리카 출신 중에 노벨문학상을 못 받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고령의") 작가들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마디 더 하자면 자신이 어떤 것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어떤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절대화하거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들이 만연되어 있다고 봅니다.

가령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과목을 없앨 때 그런 태도를 쉽게 볼 수 있죠. 역사학을 없애려고 시도하면 (전공하는 사람들이)역사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지리학을 없애려고 하면 (담당교사들이) 지리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말하지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의 전공과 일치시키며 그것들을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거기에 매몰되면 그 전공학문이나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이데올로기를 볼 수조차 없게 될 겁니다.

불가피하게 전공이나 그 조직에 머물면서 그것의 "한계지점"에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지평을 열거나 최소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속한 전공이여 영원하라를 외치지 말자는 뜻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4 17:27   좋아요 0 | URL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소속된 분야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절대화 할만한 시간도, 애정도 아직 가지지 않았구요. 시간이 지나면 절대화가 될지 알수도 없구요. 저는 한국 문학을 전공했는데, 더불어 중문학과 일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세 나라의 문학이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겠지요.
'흑해'님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어떤 부분을 높게 평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역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높이 평가합니다. 개인적으론 노벨문학상의 주류가 되는 영불독의 문학보단 다른 언어권과 생활권의 문학을 좋아하구요. 지금이야 말의 의미가 퇴색된 '제3세계 문학'을 찾아보며 공부한 적도 있구요.
지금 하는 공부가 본래 제 것이 아니기에 절대화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열심히 할 따름이지요. 전 그게 외국문학도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oren 2010-10-12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어보니 문득 제 아내가 추석이 끝난 직후(귀성하느라 법석을 떨고 시골에 벌초하고 돌아오느라 녹초가 된 이후) '당신도 한번 읽어보라'며 내밀던 글이 떠오르네요.

[송호근 칼럼] 조상숭배의 나라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478311&ctg=20

저도 어릴땐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회초리 맞아가며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운 경험이 있고, 아직도 고향에 갈라치면 동네 어르신들께 '출필곡, 반필면'을 의식할 정도여서 님의 글에 일정부분 공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나름대로 '뼈대있는 집안' 출신인 제 고교동기 한 녀석은 학부 때부터 '한문 공부'를 정말 엄청시리 하더니만, 마침내 작년 가을학기부터 그 친구가 내심 목표로 하던 국내 최고라는 국립S대의 정식교수로 전근을 가게 되더군요. 그 친구를 보더라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굴레'가 무슨 갑옷처럼 단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답니다.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10-14 15:35   좋아요 0 | URL
아...그 칼럼 신문으로 읽었습니다.제사를 정식으로 안 치르는 사람들도 가족 간에 불화가 있다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어려서 옛날 한문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그냥 옥편 찾아가며 혼자 공부했지요.하지만 가끔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한문공부해서 좋은 연구성과를 낸다면야 좋은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