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들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이미 60대 초반만 해도 모르지요.하지만 전쟁을 비교적 생생하게 경험한 세대들은 그 전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지난 일요일에 도전 골든벨이란 퀴즈프로그램에서 남미에 있는 나라 중 한국전쟁 때 파병해준 나라를 꼽는데 학생이 맞히지 못하더군요.정답은 콜롬비아.하지만 이 학생이 고교생이라고 해서 "요즘 애들은..." 하고 탓할 수는 없을 겁니다.과연 16개 파병국 중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쪽 나라들을 꼽을 수 있는 노인들은 얼마나 될까요.필리핀이나 남아공이 파병한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전세대를 통털어 몇 퍼센트나 될지...그렇다고 그걸 모른다는 사람에게 정색하면서 "반공태세가 문제있다"고 눈을 부릅뜨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이상하구요.가스통 들고 데모하는 분들 중에서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우리 역사, 특히 일제시대부터는 학교에서도 잘 안 가르치니 문제가 있다고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그런데 우리는 역사교과서에 어떤 것을 더 넣어야 하나요?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어서 교과서가 엄청나게 두툼해져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흔히들 국사교과서에 이러이러한 것이 안 들어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 다 들어주다가는 교과서 부피가 백과사전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일본에서는 자국역사를 일본사라고 하지 국사라고 하지 않음 중국도 마찬가지) 왜곡이 동아시아 전체에서 문제가 된 계기가 된 시기는 1982년. 그 당시 한국의 일부 인사들이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위안부(성노예가 맞지만 관행상 위안부라고 쓰겠음)에 대해서 안 나온다는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자라나는 세대들이 배워야 하는데 그러면 쓰겠느냐는 쓴소리가 뒤이어 나왔지요.그런데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도 그 당시에 위안부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90년대에야 등장하지요.정대협이란 단체도 그리 오래전에 생긴 게 아닙니다.
작년부터 신문에 간간이 근로정신대 관련기사가 나오더군요.근로정신대에서 고생한 여성(왜 굳이 할머니라는 단어를 쓰는지...나는 그냥 여성이라고 하겠음)들의 체험담도 나오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내가 근로정신대 출신이라고 하니 많은 이들은 위안부인줄 알더라"는 겁니다.사실 우리나라에선 근로정신대라는 게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런 상황이니 무조건 정신대=위안부라고 여기고 있지요.얼마전 근로정신대에서 겪은 고생담을 들으러 온 일본 학생들이 "학교에선 배우지 않았다.놀랍다"고 말했다지만, 근로정신대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근로정신대 관련기사 밑의 댓글을 보면 거의 대부분 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알고 있더군요.우리가 일본 역사교과서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교과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게 드러납니다.한국전쟁에 파병한 나라를 잘 모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파병국이라면 미국을 우선 떠올리는 정서때문인 것 같고...근로정신대를 모르는 것을 보면 워낙 위안부 문제가 부각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여하튼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으니 차근차근 알아나가면 되겠지요.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너무 야단치지도 말아야죠.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이런 문제를 다루면 아무래도 결론이 좀 애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도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