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동아일보 광고란에 신간서적 한권이 크게 나와 있었습니다.<억지와 위선>(북마크).지금 한참 활동 중인 좌파들의 실상을 벗긴다...류의 책입니다.인물과 사상 류의 글은 좌파에서만 쓰느냐,우리도 좌파인물들을 본격비판해 보겠다는 취지입니다.평가대상은 백낙청,리영희,유시민,진중권 등인데 저자는 김광동,변희재 등 여러 명이 나누어 집필했습니다.리영희 항목은 김광동이 썼는데 친북좌파의 스승이라고 평가했습니다.역시 모택동주의에 대한 기울어짐도 언급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리영희 프리즘>(사계절)도 나왔는데 20대 논객들의 글도 있습니다.<억지와 위선>과는 다르게 호의적인 평이 많지요.리영희라는 한 인물을 놓고 이렇게 다른 시각을 거의 동시에 보여주는 책들이 나온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그만큼 논쟁거리가 많다는 것이지요.두 책을 제대로 정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영희에 대해서 제도권 교수의 비판으로는 90년대 말에 문학평론가 이동하의 글이 최초로 주목을 받았습니다.이동하는 리영희의 문화혁명론을 지적하며 "내가 20대 때 인간은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는 걸 알았는데 리영희는 40대에도 그걸 깨닫지 못했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렸습니다.역시 리영희의 문혁론에 비판이 집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동하의 글에 강준만이 반론을 제기하고 그래서 이 두 사람의 논쟁이 화제가 되었지요.이동하는 글도 잘쓰고 또 경제학 서적을 읽는 문학평론가라는 데에 대해서 상당한 자부심도 갖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그래서 리영희는 경제를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리영희가 문화혁명론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입니다.사실 그는 이에 대해 1991년 그러니까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문사회과학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히 흔들리던 시절 사회주의에 희망을 품던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고백을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사회주의의 실패,지식인의 사명' 신동아 1991년 3월호).하지만 2005년 임헌영과의 대담집인 <대화>에선 역시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당시의 생각을 쉽게 바꾸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리영희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어본 것은 '사회주의의 실패,지식인의 사명'이었습니다.그랬기 때문에 <고백>에서 모택동 노선에 대한 긍정을 발견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사실입니다.여전히 당산대지진 이야기는 빼놓지 않습니다(당산대지진을 모른다면서 리영희의 저작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웃기는 사람).그리고 <전환시대의 논리>를 정독한 것도 <고백>을 읽은 이후입니다.대학교 신입생 때 읽었더라면 뭐가 이렇게 어렵냐 하고 못읽었을 것입니다.리영희의 글은 쉽게 쓴다는 평이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독자에게나 쉽지, 교과서와 참고서,문제집 외에 독서라곤 해본 적이 없는 대다수 대한민국 대학생 신입생에겐 군사,안보,외교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인 그 책을 읽기가 고역일 것입니다.
제 서재 한쪽은 전쟁,군사,외교에 관한 책이 꽉 차 있습니다.만약 제가 전쟁,군사물을 읽다가 군복이나 무기 쪽으로 관심방향을 틀었다면 속칭 '밀덕'이 되어 있겠지요.블로그도 2차대전이나 태평양 전쟁 관련내용을 싣고...하지만 거기에서 전쟁외교,전쟁을 결정하는 정책결정자,전쟁비용을 걷는 메카니즘 쪽으로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국제정치나 외교에 관한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제게는 아버지가 구독한 77~78년의 주간조선을 보관하고 있는데 외신기사가 좋은 게 많았고 특히 베트남과 중국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을 쓴 외국기자의 르포가 있어서 관심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또 80~90년대의 신동아도 거의 다 물려받았는데 여기서 캄보디아를 침입한 베트남의 사정에 대해서도 읽었습니다.
중국 근현대사는 제가 독서를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관심사입니다.리영희가 편역자로 된 <중국백서>는 제가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책입니다.이 책의 원서는 <전환시대...>나 <우상...> 에도 종종 인용되어 있지요.이런 독서를 한 다음에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으니 대학에 가자 마자 읽은 사람과는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전환시대...>나 <우상...>에 실린 글은 거의 대부분 70년대 초중반의 것이 대부분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 일어난 중국-베트남 전쟁이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2005년에 나온 <대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올시다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작년엔 베트남전의 영웅인 보구엔지압(이 전설적인 인물이 아직도 살아있음)이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는데요.
문화혁명에 대해선 이동하와 비슷하게 윤평중도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생각의 나무 2008)에서 리영희가 문화혁명론을 이해하는 바탕엔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이동하보다 윤평중의 글이 좀 덜 거칠긴 한데, 컴맹이나 문맹이 있듯이 시장맹이 있다면 리영희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쉽게 말해서 인간의 소유욕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리영희의 문혁론에 대해선 이런 식의 비판이 대부분이지요.하지만 저는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공격대상에 주중 외국대사관이 있었다는 데 주목했고 혁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모택동사상 제일주의의 밑바탕에 일종의 중화주의가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당연히 저의 문화혁명 평가는 이동하,윤평중과는 또다른 각도에서 부정적입니다(문화혁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는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함).물론 리영희가 '문화혁명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상과 이성>은 몇년 전에 정독했습니다.<전환시대의 논리>도 그렇지만 이 두 책에서 사람들은 중국혁명과 베트남전쟁을 주목합니다.하지만 저는 한일관계에 대한 글이 더 객관적이라고 봅니다.특히 리영희는 우리나라의 보수건 진보건 고질병인 맹목적인 반일주의를 경계하는 냉정함을 보여줍니다.<대화>에서는 우리나라 진보는 일본 진보파의 저작에게서 그 자양분을 많이 신세졌다고 말하는데, 그런 솔직한 고백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잘 안합니다.반일 국수주의도 일본 국수주의자들 것을 표절하는 관행이 있는 분위기에서는...그런데 <전환...>이나 <우상...>에는 일본 지명이나 인명이 한자만 나오고 발음표기는 안해놓은 곳도 있고 해서 일본어 한자읽기를 못하는 사람들이 알아먹기 힘든 대목도 있습니다.그리고 책 전체가 국한문 혼용이라서 한자를 못읽는 사람들도 읽기 힘들지요.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사,외교에 관한 글도 일반독자들에겐 생소합니다(신문에서 제일 안 읽히는 기사가 이 분야라고 하지요).
저는 과연 <전환시대...>와 <우상...>을 제대로 읽은 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리영희를 읽어야 의식이 있다는 평을 들으니 읽었다고 꾸미는 이들도 많지 않을까요.글이 다루는 분야도 그렇고 국한문 혼용인 것도 독서에 장애가 될 것입니다.리영희를 읽었는데 어려워서 못읽겠더라는 고백을 하기도 좀 부끄럽겠지요.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저도 우연히 관심분야가 군사,외교,한일관계 쪽이라 그런 독서를 하고 나서 읽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에고 어렵다 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환시대...>와 <우상...>은 읽어서 얻을 것이 많습니다.베트남전과 중국 외에 특히 닉슨시대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공부할 때도 참고가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요즘 하토야마 내각에서 오키나와 기지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 문제의 뿌리에 대해서도 좋은 참고가 되는 글이 있지요.특히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이들이 젊었을 때 기성세대에게 무슨 야단을 맞았는가 하는 재밌는 정보도 있습니다.어차피 문화혁명에 관해 알아보려고 요즘 이 책들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없을테니까요.그리고 수필 류의 신변잡기도 재미있습니다.특히 <우상...>에 나오는 '불효자의 변'을 권합니다.
제 성격이 열정적인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리영희의 저서가 내 청춘을 움직인 책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아마 위에서 쓴 것처럼 제 독서순서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마루야마 마사오는 <문명론의 개략을 읽다>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혹시 제가 유명해진다면 <리영희를 읽다>는 제목의 책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아마 마루야마의 책처럼 두툼한 분량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