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큼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불교의 윤회사상 때문인지 개가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도 대중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개만도 못하다는 말과 다르게 아예 개만큼의 품성만 갖추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사람이 개 정도의 인격을 갖추기도 힘들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말이지요.
옛 전설에도 개가 은혜를 갚았다든가,주인을 위해 충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요즘에도 개에 얽힌 미담이 있지요.떠돌이 개가 산에서 올무에 목이 걸려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그 올무를 잘라준 남자가 있었습니다.그 남자는 산 기슭에 살았는데 그 개를 구해준 후부터 누군가 집마당에 죽은 토끼나 너구리,고라니를 가져다 놓았지요.이상하다고 생각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밤에 지켜 봤더니 그 개가 물어 온 것이었습니다.그 개 나름으로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서울방송 프로그램에서 본 이야기).
자기가 키우는 개가 다치자 거금을 들여 치료해준 중년 남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그는 처자식이 있었는데(제가 '한 집안의 가장' 운운하는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실직상태에 돈이 꽤 쪼달리는 데도 무리를 한 것입니다.그런데 그 개가 무슨 족보있는 순종도 아니고 평범한 잡종견이라 개 값보다 수술비가 몇배나 더 들었답니다.주변에서는 정신나갔다고 수군댔는데 그 남자 이야기는 간단했습니다."실직했다고,돈없다고 친구고 지인들이고 다 떠나갔지만 유일하게 나를 반겨주고 내 말 들어주는 이는 이 개밖에 없다"는 것이었지요.그에게는 그 개가 단순한 개가 아니라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였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동물 다큐멘타리에서 동물을 대명사로 '녀석'이라고 하는 관행이 정착되었습니다.저는 '녀석'이란 대명사를 쓰기 이전부터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 봤기 때문인지 굉장히 거슬리더군요.원래 우리나라는 대명사를 그다지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사람이 동물에게 '녀석'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나 하는 소박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그냥 옛날대로 대명사를 안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예를 들어 요즘은 "이 지역은 코끼리가 많습니다.여기 이 녀석들은..."하고 말하지만 그냥 "이 지역은 코끼리가 많습니다.여기 이 코끼리들은..."이렇게 말이지요.
개만도 못하다느니 개같은 놈이라느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역시 성불하지 못할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런 말 대신 "개만큼만 하면 성불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는 게 착한 사람이 되는 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누군가 내게 위로해줄 사람은 없나 찾기 전에 나는 과연 남에게 얼마나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나 반성해 볼 일입니다. 개들만큼만 하면 남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고 그러면 성불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