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은 20대에 모든 것을 다 보여준 사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다재다능하기로 이름이 높던 그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이전에 만화가 생활도 했고 또 소설가로 입신한 뒤에는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도 하고 드디어 영화연출에도 손을 댑니다.그것도 그냥 아마츄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1968년 이어령 원작 <장군의 수염>을 각색하여 대종상 각본상까지 수상하니까요.자기의 대표작인 <무진기행>은 영화로 만들 때 직접 각색을 맡기도 했습니다.김동인의 단편<감자>는 각색은 물론 연출까지 맡았지요. 

  그의 작품은 50년대의 작품과는 달리 덜 어둡고 관능적인 내용도 많이 나옵니다.그것이 60년대식이라고 해야 할까요.한가지 특이한 것은 중편 <60년대식>이 실린 매체가 <선데이 서울>이었다는 사실.순수문학과 대중문학과의 경계가 유독 강한 우리나라에서 선데이 서울에 작품이 실렸다는 사실이 좀 독특하기도 합니다.그런 것도 60년대 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가 각색에 열중하게 된 계기는 1969년 단편<야행>을 발표하고 난 뒤라고 합니다.우리나라 독자들 중 김승옥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데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이 주로 사랑을 많이 받더군요.저는 <야행>이 좋던데요.소재도 독특하고....흔히 노인들을 볼 때 저 사람들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하지만 태어날 때 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없지요.그들도 한때는 젊었고 이성을 연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야행>은 60년대에도 길거리 헌팅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물론 그 당시 젊은이들인 지금의 60대들은 우리 때는 그런 건 안 했다고 강변할 지도 모르겠지만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같은 은행에 다니는  남녀가 함께 동거까지 하지만 직장에는 비밀로 합니다.여자는 결혼하면 무조건 퇴사해야 되는 당시의 관행 때문이지요.주인공인 여자는 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하룻밤 상대를 구하는 남자에게 유혹을 받습니다.하지만 남자들은 박력이 없어서 여자가 조금만 거부하면 포기하고 마니 싱겁지요.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남자와 낯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그 뒤에 또 몇몇 남자들이 밤거리에서 치근대지만 그다지 맘에 들지 않습니다.그녀가 남자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가려는 용기는 없고 그냥 울타리만 만지작거리기만 하는군! 

  이 영화는 1974년 김수용 감독,신성일,윤정희 주연(감독도 배우도 정말 최고 진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각색은 영화감독 홍파.내가 좋아하는 오수미,임성민이 나오는 <몸전체로 사랑을>(1986)을 감독한 바로 그 홍파입니다.예전에 영화평론가 중에 정영일이라고 있었습니다.부모님이 읽던 주간 조선 1977~1978년 분이 있는데 거기 정영일이 일주일에 한 번 영화평론을 썼습니다.1977년 5월8일 19면에  실린 <야행>의 평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애들 영화가 판을 치는 요즘, 오랜만에 성인을 위한 영화가 나왔다.신성일과 윤정희.방화 황금시대의 명콤비다."10대나 신인들의 연기와는 격이 다르다는 투로,"진짜 스타가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연기.대작이나 거작은 아니지만 매우 짭짤한 작품..." 이라고 했네요.

 여기서 애들 영화란 당시 한참 10대 관객들을 불러 모으던 임예진 이덕화 나오는 청춘물,또는 이승현이 나오는 얄개 시리즈를 가리킵니다.재밌는 것은 지금의 10대나 20대들에게는 이 배우들도 신성일이나 윤정희와 마찬가지로 이젠 옛날 배우라는 사실이지요.10대나 20대들에겐 40대나 70대나 다 따분한 기성세대일 뿐이니까요.신성일 씨는 이미 70이 넘었고 윤정희 씨도 60이 넘었습니다.임예진 씨는 50줄에 접어들었구요. 

 1974년 <야행>을 찍을 때 조감독이 김호선.이 사나이는 1977년 <겨울여자>를 감독하여 공전의 흥행기록을 세우지요.요즘은 주책맞은 아줌마 역으로 나오는 장미희 씨가 신인으로 주연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영화입니다.정영일 씨는 이 영화에 나오는 장미희에 대해서 "연기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평하니까 이 역시 세월이 지난 옛날 이야기지요. 

  정영일 씨가 고인이 된지도 꽤 되었습니다.예전 월간지나 주간지를 모아놓으면 이런  자료들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지금은 나이가 들거나 고인이 된 이들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면 참 새삼스럽습니다.그래서 가끔 흘러간 옛영화를 보내주는 교육방송의 한국영화 걸작선을 봅니다.저렇듯 미모가 뛰어난 이들을 주름진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세월은 참으로 심술쟁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서... 

  **<몸전체로 사랑을> 에 신인시절의 김청,최화정이 나옵니다.청춘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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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다.
저런 배우들에게 연기공부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ㅎㅎ
사람이란 배우고 익혀 발전할 수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17 16:05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요.그래서 종이가 누렇게 되어버린 옛 잡지를 봅니다.지금의 어른들이 젊은 시절 야단 맞은 사연을 보면서 웃기도 하구요.

비로그인 2009-06-1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라며 말을 거는 남자들이 멸종 위기라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6-18 00:13   좋아요 0 | URL
멸종 위기까진 아닌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8 15:10   좋아요 0 | URL
그러면 저라도 나서야겠네요.

카스피 2009-06-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나의 독서론 다음 주자로 난데없이 일방적으루 릴레이 부탁을 드렸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일방적인 강요니 매정하게 거절하셔도 됩니다.^^;;
*추신-근데 먼댓글 연결에 실패했읍니다.제글 한번 보아주세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8 15:18   좋아요 0 | URL
릴레이...? !

머큐리 2009-06-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 전체로 사랑을'...보고 싶어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6-18 15:15   좋아요 0 | URL
70년대에 만든 것도 있어요.그것도 홍파 감독 거에요.

2009-06-2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