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사건이지만 작년 가을에 일본 자위대 항공막료장인 다모가미 도시오가 논문을 통해서 태평양 전쟁을 긍정하는 주장을 하여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비교적 온건진보적인 아사히나 마이니치에선 이런 논리를 비판하면서 어느 논픽션 저술가와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우리나라 일부 신문에도 그에 대한 기사가 나왔지요.그 저술가는 일본 현대사 전문가인 호사카 마사야스(68세).특히 이런 저술가를 독립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그는 책을 쓰기 위해서 관련자료 독파는 물론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여 엄청난 노트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왜 일본은 허망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나 하는 문제를 평생동안 탐구했지요.이런 일을 하는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인사들은 자학사관이라는 용어로 비아냥댑니다.매국노라고도 하구요.호사카 씨의 답변은 간단명료합니다."나는 자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반성을 하자는 것이다.자성사관이라고 해야지." 다음은 호사카 씨를 다룬 우리나라 신문기사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을 추려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가 저술을 위해 만났다는 사람 중에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직접 군인으로 출전한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그 중에는 "죄책감에 괴로웠는데 죽기 전에 털어 놓을 것이 있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네요.한 번은 전쟁 당시 중국 전선에서 중국의 민간인 수십 명을 살해한 지난 일을 반성하고 싶다면서 호사카 씨를 찾은 남성이 있었는데 호사카 씨는 그를 집에서 불러 스미다가와 제방에 데려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그 남성은 " 내 집에서 안 하고 왜 여기까지 나와서 이야기를 듣나요?"하고 물어서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네요."신문기자 시절,어느 퇴역 일본군이 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이야기를 자기 자택에서 해주었지요.그런데 취재 내내 그 집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그래서 그 뒤로는 이런 취재는 밖에 나와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정도의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기자를 비롯하여 글을 쓰는 이들이 곰곰 생각해 볼 대목이 아닌지요?
호사카가 만난 이들 중에는 정말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습니다.한 번은 그에게 중국 전선에 출전했던 이가 이런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우리 부대는 게릴라들이 다시는 준동하지 못하도록 어느 산간 마을을 모조리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우리는 명령대로 했고 초토화된 마을을 뒤로 하고 철수를 시작했지요.그런데 내 뒤를 어떤 아이가 울면서 따라오는 겁니다.네살 남짓 되었을까요.저는 머뭇거리면서 지휘관에게 물어보니 처리하라고 명령하는 거예요.결국 나는 명령을 이행한다면서 그 어린애를 죽여버렸는데 그 뒤로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전쟁이 끝나도 아이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고 심지어 늙어서 손자를 보았는데도 내가 죽인 어린애가 생각나서 안아주지도 못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그런데 나중에 그 지휘관을 만났는데 그는 '내가 언제 죽이라고 그랬나...처리하라고 했지...'하는 거예요."
신문을 통해 이 내용을 읽고 그 지휘관이라는 인간말종을 정말로 두들겨 패죽이고 싶었습니다.얼마나 뻔뻔합니까."죽이라고 그랬나...처리하라고 했지"라니요.호사카 씨가 이런 저술활동에 일생을 보내게 된 것도 전쟁 중 잔학행위를 한 병사들이 일생동안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비록 미흡하긴 하지만 그런 상처도 고백을 하면서 어느 정도 치유가 되고 또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의미도 있지요.하지만 군인들에 관해서는 "군인이니까 명령을 지켜야 되지 않았는냐"하는 식의 태도가 엄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