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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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 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때로 문학적인 담론의 지점을 넘어 이 책의 ‘영광’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질문하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문학은 성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사업이 아니고, 문학 작품은 사업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덧없는 것이고, 그 덧없음의 힘으로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고, 세계와 싸우며 동시에 말을 거는 것입니다.˝




....아직도 시간을 낭비할 용기가 없는 나는, 이렇게 못 이긴 척 상상의 손을 잡고서라도 낭비할 시간이 있다고 믿고 싶다. 가끔은 누군가 아직 낭비할 시간이 있다고 말해주면 참 좋겠다.



...˝네 말이 맞는다. 인제 꼭 맞춤법에 맞게 쓰길 바라.”
정말로 이런 자막이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막은 글이 아니라 말인데 늘 글의 규칙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에게도 소비자에게도 그 점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미 언중에 의해 널리 쓰이는 말들을 캠페인을 통해, 개개인의 지적을 통해 바로잡아 돌이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언제가 되건 언중이 입말에서 ‘바라’ ‘인제’ ‘맞는다’ 같은 것들을 사용하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럴 때면 언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철학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라는 거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언어의 복원력과 창조력, 생명력, 적응력 등을 가장 무시하는 건 오히려 언어를 약하디약한 아기처럼 귀히 떠받드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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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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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강자들은 부와 권세를 절제해야 하고, 약자들은 인색함과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 이 같은 평등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이론적 공론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 하지만 오류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것을 규제조차 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바로 사물의 추이가 항상 평등을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입법의 힘은 항상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루소는 ‘전체 의사’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몽테스키외는 영국 대의제를 극찬했지만 루소는 정반대였습니다. 여기서 유명한 루소의 말이 나옵니다.

‘영국 국민들은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원들을 선출할 때뿐이다. 의원들이 일단 선출되면 국민들은 노예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범죄와 형벌》에서 베카리아는 배심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지한 자는 감각으로 판단하지만, 전문가는 학설과 의견으로 판단한다. 전자의 판단이 후자의 판단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안내자이다. (…) 재판관은 유죄판결에 익숙해져 있으며, 모든 것을 그의 전문지식에서 빌려온 인위적 개념요소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재판관의 학식보다는 보통 사람의 상식이 증거판단을 잘못할 가능성이 더 적다. 법을 아는 일이 전문 학문이 아닌 나라는 얼마나 행복한가! 누구나 그와 동등한 이웃 시민들로부터 재판받도록 하고 있는 법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베카리아는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 (…) 형벌은 비록 온건하더라도 확실하기만 하면 형면제의 희망이라는 요행수와 결부된 무시무시한 처벌의 공포감보다 훨씬 더 큰 인상을 심어줄 것이 틀림없다. 처벌이 확실할 때는 최소한의 해악도 사람들의 마음을 떨게 할 수 있다. 반면 요행히 처벌되지 않겠지 하는 희망은 더 혹독한 처벌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설령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어떤 의견의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의 특별한 해악은, 전 인류의 권리를 강탈한다는 것과 같다. 즉 현존 세대와 마찬가지로 미래 세대, 또 그러한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강탈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고 하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바꿀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반대로 그 의견이 그르다고 해도 인류는 마찬가지의 엄청난 이익, 즉 진리가 오류와 충돌함으로써 생기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확한 이해와 더욱 생생한 인상을 상실하게 된다. <밀, 자유론>



...한편 밀은 “우수한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불경이나 부도덕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해서 활기차고 자유로운 사상의 줄기를 철저히 탐구하려 하지 않는 비겁한 성격의 사람들”, “일단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조를 전수받게 되면 보통 그 신조에 대한 의문을 허용함은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리란, 스스로 사색하지 않고 오로지 타인의 주장에 맹종할 뿐인 사람들의 진실한 의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에 의해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울프피쉬 호리’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1센티미터까지 자라는데, 연못에서 키우면 5센티미터, 강에 있으며 15센티미터, 바다에 있으면 50~60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틀입니다. 이 틀이 우리의 사고를 속박하도록 짜여 있다면 우리는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그 틀이 짜여 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예링은 나아가 저항이 “공동체에 대한 의무”라고까지 말합니다.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이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왜냐하면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법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샤일록이 비열한 기지를 통해 그의 권리를 좌절시키는 판결의 중압감에 못 이겨 무너졌을 때, 그가 지독한 조소와 박해를 받으며 낙담하고 부서지며 그리고 비틀거리는 다리를 끌고 법정 밖으로 사라졌을 때, 그와 함께 베니스 법률도 굴복당했으며 법정에서 도망친 사람은 유태인 샤일록이 아니라 중세 유태인의 전형적 인물 내지 법을 향해 헛되이 외친 사회 천민 계급이었다는 데서 발생하는 감정을 누가 막을 터인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라는 정치공동체와 그 절차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이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유죄평결과 사형선고는 ‘국법’을 잘못 운영한 사람의 탓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법률의 희생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희생물로서 순결하게 죽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악법도 법이다”로 요약하는 오류는 2000년대 초 대한민국에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수정됩니다. 2002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인권침해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수정을 권고했고,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입니다. 2004년 11월 헌법재판소도 동일한 권고를 했습니다.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 이 사례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때는 헌법을 여러 가지 법 중 하나로 대접했고 ‘국민의 기본권’을 공동체를 위해 양보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다. 이 때문에 교육이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준법정신이 잘못 기술되고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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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24 - 트렌드 & 활용백과
김덕진 지음 / 스마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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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도구의 진화에는 항상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20년 이상 AI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일하며 트위터에 27만여 명의 팔로워를 가진 Santiago (@svpino)의 트윗 한 줄이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Al will not replace you. A person using Al will(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체할 것입니다).”




...언어모델들에게 MBTI 검사를 위한 질문을 해서 답을 받아 분석했더니 챗GPT 3.5버전은 ENTJ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좀더 똑똑해지고 길들여진 GPT-4버전은 INTJ로 성향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외향적인 성격의 챗GPT가 내향형으로 바뀐 것이죠. 전문적이긴 한데 확실히 예상외의 답변이나 웃긴 답변이 줄어든 GPT-4를 보면서 마치 인간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챗봇 네이티브(Chatbot Native)’ 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들은 AI와 대화하며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방식 때문에 하지 못했던 ‘토론과 대화’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루시네이션은 환각성 답변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신비한 얘기, 새로운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막는 것은 마치 상상력이 정말 뛰어난 어린아이에게 “이런 것 하지 마, 저런 것 하지 마” 하며 제한을 자꾸 두니 창의성이 오히려 말살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나온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도 편향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들을 못하게 인간 피드백 강화학습(RLHF)을 상당히 많이 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이퍼클로바X를 가지고 소설을 쓰거나 창의적 결과물을 만드는 게 상대적으로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할루시네이션을 잡는 것이 언어모델의 신뢰도를 높이는 행위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여러 개성을 죽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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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읽는 역사
한순구 지음 / 삼성글로벌리서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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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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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느꼈던 열등감과 압박감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흩어졌다. 참석했던 강연에서 에머슨이 했던 말이 다가왔다. “나는 투명한 눈동자가 된다.” 들판과 숲에서 그는 무(無)였다. 모든 걸 보았다. 이름 모를 힘의 흐름이 내면에서 순환했다. 킹스 예배당, 강의실, 케임브리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방식으로 신의 일부이자 한 조각이 되었고, 억압받지 않고 자유로웠다. 나무들 사이를 지나 완만하게 경사진 풍경 너머 서쪽 멀리 지평선의 극히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발견되지 않은 본성만큼 아름다운 무언가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러한 일상은 종교의식과 같아졌고, 되풀이되면서 갈수록 무의미해졌다. 그렇지만 이 의식만이 지금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형태를 가졌다. 광활한 평원의 공간 위를 힘겹게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했지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시간이 그와 함께 움직이고, 구름이 위에서 맴돌다가 그가 앞으로 나가면 달라붙는 것 같았다.




...평원은 오랫동안 알아 왔던 친구의 모습을 했다. 안도감과 편안함을 주었고, 평원에 대해 알게 된 이제는 원할 때면 언제든 그 안도감과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몸을 돌렸다. 미지의 평원이 위와 앞을 뒤덮었다. 어디로 가는지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래 있는 평원과 다른 평원들을 보고, 자신이 보게 될 것을 생각하자 평온함을 느꼈다.





....겨우 조금 전만 해도 당당하고 고귀하며 생명의 위엄으로 가득했던 존재가 이제 속절없이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죽은 고깃덩이가 되어, 존재 자체 또는 그 존재에 대한 앤드루스의 개념을 완전히 빼앗긴 채 기괴하게 조롱하듯 눈앞에 걸렸기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도망쳤다. 그것은 들소 자신도, 앤드루스가 상상했던 들소도 아니었다. 그 들소는 살해당했다. 앤드루스는 그 살해를 통해 자기 안에 있던 무언가가 파괴되는 걸 느꼈다. 그걸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맥도널드가 말했다.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서부를 떠날 거야.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겠어. 어쩌면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갈지도 모르지. 서부는 오래 있을수록 감당이 안 돼. 너무 크고 너무 텅 비었어. 그리고 거짓이 자네에게 찾아오게 하지. 거짓을 다룰 수 있기 전에는 거짓을 피해야 해. 그리고 더는 꿈같은 건 꾸지 말게. 난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밖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




....그 허영심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깜빡거리던 합숙소 등불의 불빛 아래서 맥도널드가 말했던 그 무(無)였다. 찰리 호지의 시선에 있었던 밝고 푸른 공허감─그는 찰리의 눈 안에서 그 공허감을 언뜻 보고 프랜신에게 말해 주려 애썼다─이었다. 슈나이더가 강에서 말발굽이 얼굴을 당혹하게 만들기 직전에 보였던 경멸적인 표정이었다. 산에서 하얀 눈보라가 몰아치기 전에 밀러의 얼굴에 나타났던 맹목적인 인내심이었다. 찰리 호지가 꺼져 가는 불에서 몸을 돌려 밀러를 따라 밤 속으로 따라가기 전에 그의 눈에 있었던 텅 빈 반짝임이었다. 맥도널드가 가죽이 불타 버리는 데 광분해 밀러를 쫓아다니는 동안, 얼굴에 격노한 가면을 쓴 것처럼 만든 끝없는 절망이었다. 베개 위에 죽은 듯 늘어진 프랜신의 잠든 얼굴에서 지금 보고 있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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