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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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작고 예쁜 풍경 속으로 걸어가 그의 아내와 아기의 곁에 앉았다. 아기가 무언가를 붙잡으려 허공에 팔을 뻗어 휘두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뭐가 재밌니, 응?” 하고 덩달아 웃었다. 그는 어떤 것들은 예고될 수 없으며 호명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담대해졌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는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손뼉을 쳤다.

‘전조등‘ 중에서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보편교양‘ 중에서



..그 글자들이 반짝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사마귀는 어떤 생각에서인지 도리질을 하고는 계속 말했다.
  “그때는 이게 우연 같지 않았지요. 잘될 것 같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초침처럼 한 칸 한 칸, 시계추처럼 침착하게 살 거라고요.”

‘태엽은 12와 1/2바퀴‘ 중에서



...쇳덩이를 쥐고 두 발로 바닥을 밀어내는 순간.
  눈 내리는 겨울 오후의 고요. 산등성이의 헐벗은 자리. 교정의 새파란 인조 잔디. 철교와 고가도로. 박물관 앞에 전시된 녹슨 탄차. 모텔과 마사지숍의 현란한 입간판. 주인 없는 자동차들. 모두가 공평하고도 아늑하게 하얀 눈에 덮여서, 미처 닿지 않는 그늘에서도 단정한 마음으로 목도리를 여밀 수 있었던 날. 왼발 오른발을 눈밭에 디디며 빙판과 진창의 시간을 예비하던 긴 겨울의 한가운데.
  그날이 송희가 정말로 역도를 그만둔 날이었다.

‘무겁고 높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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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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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꽤 똑똑해. 어쨌든 우리 둘의 친구인 저 녀석보다는 똑똑하니까. 하지만 자네에게는 오점이 있네. 오래된 약점.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옷을 입고 밭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해마다 일하던 곳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마른 흙 한 덩이를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스러뜨리며 달빛 속에서 어둡게 보이는 흙 알갱이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바지에 손을 털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하나밖에 없는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동이 틀 때까지. 땅 위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척박한 회색 땅이 그의 앞에 무한하게 펼쳐질 때까지.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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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 이정모 선생님이 과학에서 길어 올린 58가지 세상과 인간 이야기
이정모 지음 / 오도스(odos)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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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제1국은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에 끝났다. 3.5시간이 걸렸다. 어림잡아 체스 마스터가 6시간 경기하는 에너지만큼 쓰였다고 생각한다면 이세돌은 대략 1,680킬로칼로리를 소모했다. 조코비치가 단식 경기를 3시간 치른 셈이다. 알파고는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알파고는 1,202개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와 176개의 영상처리장치(GPU)를 사용했다. 대략 5만 킬로와트시(kWh)를 사용했을 것이다....알파고는 이세돌보다 에너지를 5만 배나 더 사용한 셈이다. 인공 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물론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인공 지능 하나가 인간 5만 명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칼 세이건은 1996년 암병상에 누운 채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메시지를 온 인류에게 보냈다.
“저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저것은 고향이며, 바로 우리입니다. 저기에는 당신이 이제껏 들어온 모든 사람, 살았던 모든 인간,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모두 있습니다. (…) 우리의 행성은 광활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하나의 외로운 얼룩에 불과합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를 구해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크산토필과 카로틴 같은 색소는 가을에 화려한 단풍으로 만산홍엽의 계절을 연출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여 주말 고속도로를 꽉 막으려는 음모를 품고 그 무더운 여름을 버텼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이 이파리에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은 엽록소가 흡수하지 못하는 약한 빛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엽록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알아주지 않을 뿐 그들은 꾸준히 일을 한다. 엽록소가 다 파괴된 단풍철에도 마찬가지다. 크산토필과 카로틴은 여전히 아주 적은 양의 광합성을 한다. 이들은 나무가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 물이라도 아끼려는 심정으로 이파리를 떨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쓰는 것이다.



...나무는 가장 풍요로운 계절에 이파리를 떨군다....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분을 열매에 저장해두었다. 열매는 나무가 겨울을 버티기 위해 양분을 저장해놓은 것이 아니다. 동물에게 주는 것이다. 열매를 먹고 먼 곳에 똥을 싸서 그곳에서 씨앗이 움트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무는 다음 해에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부터 꽃눈과 잎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게 늦가을에야 완성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같은 클리셰를 쓸 수 있을까? 이제는 끝났다. 우리는 이 멋진 클리셰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보다 훨씬 더 뜨거웠던 경험이 있어야 동감할 수 있는 문장인데 이젠 앞으로 영원히 그때의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여름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새롭게 맞이하는 올해 여름이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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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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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 다 죽어가는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새순도, 갓 태어난 아기도 계속 늙어가고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무엇도 더 젊어지는 것은 없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삶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다.



...문자를 남긴다는 것은 말을 남긴다는 것이다. 종이가 없던 먼 옛날에는 점토판에 쓰고, 두루마리에 쓰고, 그다음엔 양피지에 썼다. 양의 가죽을 가공해 만드는 양피지는 당연히 아주 고가의 재료였고,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 마리가 넘는 양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양피지에 글을 쓰는 시대였다면, 그 많은 양들이 희생되면서까지 나의 글이 가치가 있는가 하고 주저했을 것이다...책을 쓴다는 것은 동물들과 나무들의 희생을 무릅쓸 만큼의 가치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독자들의 시간의 가치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지게 된다. 얼마 전, 공군 내 성추행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고故 이예람 중사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법이 바뀌었으면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때 바뀐 법 때문에 살았다고 말해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사실 어려운 일이다. 병문안을 가거나 조문을 갔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론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는 것, 그 정도가 좋겠다 싶다. 간혹 옆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그동안의 기억을 자꾸 잊으라고 할 때가 있다. 그만 잊고 떠나보내라고 그런데 가까운 이는 그 사람의 경험이 내 몸에 체화돼 있다. 그 존재가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빨리 잊어라’ 그렇게 종용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내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본다면, 인간 세상이나 생로병사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삶,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다만 언제 죽을지를 알 수 없을 뿐. 불확실한 죽음의 달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것. 단 나를 둘러싼 것들에 관대할 것’이다. 사는 동안 내 삶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나의 죽음’이라는 말은 언어의 역설이다. 죽음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내 것 되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존재하는 이상 죽음은 결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오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 버티는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불안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즉 죽음을 수용한 상태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해가 뜨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출근하듯이,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듯이. 때가 되면 태연히 삶을 끝내고 갈 뿐이다.




...휘발유 차에 몰래 경유를 넣으면 절대 차가 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어도 갈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 바로 마음의 힘이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플라세보다. 약의 효과를 판별하기 위해 플라세보, 즉 위약 효과를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건 역으로 위약 효과가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정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들의 필요에 맞추면서 더 편해졌다. 그들의 필요 덕분에 지하철에 에스컬레이터가 생겼고,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졌으며, 버스 바닥이 높이를 낮췄고, 좌석 간격도 더 넓어졌다. 온갖 비난을 들으며 힘든 투쟁을 한 것은 장애인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달콤한 수혜를 맛본 것은 그들을 비난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득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데도 그들이 우리의 것을 뺏어간다는 생각이 옳은지 묻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날 교수님 강의를 듣고는 기존 학생들과의 갈등으로 속상해 있던 친구들이 울먹이던 게 기억난다.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강의였기 때문이다. 그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남긴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뭇잎은 바람에 흩날려도 서로 간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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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
짐 콜린스.빌 레지어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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