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전건우 「광기의 정원」, 전혜진 「단지」, 정명섭 「수산진의 비밀」, 황모과 「딱 한 번의 삶」, 김선민 「뱀무덤」, 사마란 「영등」 등 총 여섯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여섯 편의 소설은 '장르소설 대가들이 그리는 6편의 우주적 공포!'라는 설명에 부합한다. 첫 이야기부터 뇌리를 강타하는 공포감을 선사한다. 가장 먼저 읽고 가장 충격을 받았던 전건우의 「광기의 정원」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아야겠다. 이 소설을 읽는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충격받은 장면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 다리 내놔~'보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더 충격적이었다. 정말 우주적 공포다.
1.전화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마.
어머니는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것도 치매에 걸린 이후로 줄곧. 한 번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전화는 귀신이 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셨다. 귀신이 꼬드겨서 데려가려는 거야. 그러니 받지 마! (9쪽)
전건우의 「광기의 정원」은 이렇게 시작된다. 워밍업이나 주위 환기 등의 불 지피는 시간 없이 바로 훅 치고 들어온다. 한평생 교회를 다니셨던 분이 귀신 운운하다니 무슨 일일까. 여기에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네."
동료 교수 김동호가 5년 만에 최진만에게 전화해서 한 말이었다.
소설은 있을 법한 현실을 보여주는 도구인데, 이 말에서도 나는 정말 참신함을 느꼈다. 그동안 제주설화를 접하며 서천꽃밭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기만 했을 뿐인데, 소설가는 제주 설화에 나오는 가상의 세계를 실제 장소로 끌어오다니,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서천꽃밭.
그곳은 제주도 설화에 내려오는 가상의 세계였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펼쳐진 광대무변한 정원. 그곳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꽃, 폭탄처럼 폭발해 적을 섬멸하는 꽃 등 그야말로 전설 속에나 등장할 만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무척 흥미로운 장소고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실존할 수 없는 장소, 그것이 바로 서천꽃밭이었다.
"선뜻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네. 그렇다면 그저 여행삼아 오는 건 어떤가? 오랜만에 회포도 풀 겸 말이야. 내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돌아가는 걸세." (15쪽)
아, 나 같아도 그 말에 흔들릴 만하겠다. 최진만 역시 그 제안에 따라 바로 다음 날 제주도로 향했다. 그 이후에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휘몰아치듯이 격동적으로 다가와서 나를 뒤흔들었다.
'어어어~?!'하면서 읽어나갔다. 순식간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 되는 듯도 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후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코스믹 호러의 매력, 즉 코스믹 호러라는 이 생경한 장르가 독자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방식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기꺼이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란 단순히 상대가 크고, 무섭고, 혹은 해결해야 할 게 많은 조금 골치 아픈 일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거대한 괴물이나 신의 출현, 자연재해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90쪽)
이번에 코스믹 호러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