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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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을 마냥 쳐다보았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늘어져서 한없이 바닥으로 꺼지는 듯한 그런 순간이다. 특히 바깥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가 바닥나는 상태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세상은 벅차다. 이 책은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이다. 무언가 같은 과에 속하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남 얘기가 아닌 듯 해서 더 끌리는 이 책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정섭. 미약한 심성을 갖고 태어나 사소한 일상마저 버거운 '전문 미약꾼'. 아주 잠깐 신문기자, <대학내일> 에디터를 거쳐 요즘은 마케터를 하고 있으며, 브런치에 '주간 개복치'란 필명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어릴 땐 매우 소심했으나 나이가 들며 얼굴이 두꺼워졌다. 지금은 적당히 소심한 상태. 개복치처럼 덩치가 크지만, 개복치마냥 마음이 허약하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왠지, 나 인간 사회에 안 맞는 거 같다', 2부 '득이 되기도 합니다, 소심함은요', 3부 '그렇고 그런 교훈은 없습니다만'으로 나뉜다. 개복치의 위대한 삶, 뻔하디 뻔한 공감 에세이에 지친 이들에게, 당신은 전생에 코알라였을지도 모른다, 불행 중독자의 행복법, 상처받은 당신이 애써 세상과 어울려야 할 이유, 알아보면 부담스럽고 몰라보면 서러워한다, 사람과의 대화가 낯선 당신을 위한 대화 팁, 소심한 당신은 훌륭한 글쟁이, 무심해 보이지만 사실 예민한 거랍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아이 낳지 않느냐는 오지랖 대응법, 번아웃된 사람을 위한 육체적 리추얼, 민원상담실의 찌질이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개복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해준다. 개복치는 복어목의 물고기로 바다에 살며 덩치는 최대 3m까지 커진다. 둥글넓적한 몸에, 눈은 크고 입은 조그맣다. 지느러미는 몸에 비해 무척 작은데, 베개나 쿠션 가장자리에 달린 레이스를 연상시킨다. 개복치는 가끔 옆으로 벌렁 누워 물 표면에 떠다니기도 하며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얼굴' 같다 등등. 거북이와의 충돌을 예감하고 겁이 나서 죽거나 바닷속 공기 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죽는 등 소심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느낌이다.


책날개에 보면 '3개 이상 해당된다면, 개복치 맞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하나씩 체크해본다. 시작부터 '개복치' 당첨이다. 나도 '카톡'이나 문자는 편한데 전화는 부담스러우며, 버스에서 벨을 잘못 눌러 한 정거장 먼저 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빨리는 편이고, 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만성 싫어증'에 걸리니, 개복치는 남 얘기가 아니다. 내 안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개복치는 돌연사 전문 생물체다. 염분이 피부에 스며들어 쇼크로 죽고, 바다거북과 부딪힐까 겁먹어 죽는다. 여기 그런 '인간 개복치'가 있다. 저자 이정섭은 사람에게 질문해야 하는 기자였는데, 말 거는 것이 큰 스트레스라 기자를 그만뒀다. 그러나, 바다를 떠나지 못한 개복치처럼 여전히 글을 끼적이고 있다. 이 책은 소심한 인간 개복치의 사회 적응기이자, 동료 개복치에게 보내는 장문의 응원 편지다. 페이지마다 적정량의 유머와 우울, '소심이' 특유의 배려가 담겨 있어 조금씩 피식거리고, 조금씩 멜랑꼴리해지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내게 있는 '개복치'적인 면이 우리 공동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위로도 받았고, 개복치들이야말로 인류 공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전복적 결론마저 얻었다. 그러니 '개복치'들이여, 이 책을 집어 드시길.

_최민석 《꽈배기의 맛》,《고민과 소설가》작가


여기저기에서 들은 말에 의하면 '이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여지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고민이 좀 되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솔직히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고 재미있다. 그런데 글씨가 작아서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아파 눈물이 난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런 말을 할까 오랜 시간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개복치스러움을 느낀다. 묘하게 개복치 닮은 나의 일상과도 오버랩되며 그야말로 웃픈 현실에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다. 이 에세이에 공감할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소심한 개복치라면 조용히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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