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에 쓰시마 도주가 동래부에 편지를 보내 막부의뜻을 알렸다. 너희들이 왜국 다케시마에 배를 타고 들어와멋대로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현지 관원이 너희를 잡아 증거를 삼았다고 말이다. 이번에는 너희들을 조선으로 돌려보내 주지만 앞으로는 단속을 철저히 해서 다케시마에 조선어부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석 달 동안 조정이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썩은 줄 아느냐?"
용복은 그제야 석 달 동안 쓰시마 도주가 자신과 박어둔을 쓰시마에 가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모두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우리를 납치한 것은 왜국 관리가 아니라 왜국 어부들입니다. 또 왜인들이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 땅 울릉도입니다. 저는 왜국 어부들이 울릉도를 자기네 영토로 알고 있기에 따진 죄밖에 없습니다. 왜국 어부들이 저와 박어둔을 납치하여 왜국으로데려갔고, 저는 왜국의 막부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라는문서를 받아 온 죄밖에 없습니다."
용복은 그간의 사정을 조목조목 짚어 가며 설명했어요.
홍중하가 깜짝 놀라며 물었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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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는 국가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국법이 사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ㅡ29 쪽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놀고먹는 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이유는 사대부가 날로 번성하는 데 있습니다.
이 무리들이 나라에 온통 깔려 있어서 한 가닥 벼슬로는 모두 옮아맬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을 처리할 방법이 따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근거 없는 소문을 날조하는 무리가 사라지고 국가의 통치가 제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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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스스로에게 충고하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했습니다. 때로는 아벨과 아벨이 서로를상대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자신의 의견에동의할 수 없으면 심하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아벨은 자신을납득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자주 깨달았습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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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지요. 물론 자신을 위해서 아름다움을 기르는과정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내지인과 조선인이 융합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조선 여성으로서 교육을 받는 목적 아니겠어요?"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 말에 동의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이 곧 일본입니다. 여러분."

"그럼 일본은요?"
누군가가 물었다. 
사이토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일본은...... 일본이죠."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이토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리고 자신은 희덕 군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자리에 앉게 했다.
"소름끼쳐."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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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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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니 엘스펫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애국자가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줄지어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그런 심한 고통과 구속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많은한국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나 아픔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스케치한 어느 양갓집 부인은 감옥에 들어가서 모진 고문을당했는데도 일본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이 한국인의 민족성을말살시키려고 흰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일본 사람들은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자국에서의 악질적인 선전 때문에 한국 사람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린 마음을 가진 몇몇 일본인은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한국의 역사가 일본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고 또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1936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외국인을 상대하는 가게의한국인 직원들은 일본 사람들만큼 영어를 잘하는데도 대우나 승진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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