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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ㅣ 학력을 묻는다 1
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 옮김 / 북코리아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부제 : 언년이에게 쓰는 러브레터
지각
나의 사랑 언년아
어제는 하루 종일 우울한 회색빛 하늘에서 비가 오더니 오늘은 조금씩 햇살이 비치며 밝은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 언년이도 보이니?
어느 날인가 네가 학교에 온 모습이 보이지 않더구나. 그래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숙제 내 준 것을 다 못해서 다 하고 몇 분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더구나. 숙제를 못해서 방과후에 남아 다 하는 것을 참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엄밀히 말하면 수업시간에만 제대로 서로 배우기와 교과일기를 쓰는 등의 공책정리를 했으면 집에 가서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아침에 공책 검사를 해서 못한 것을 집에 가기 전까지 다시 해서 검사받으라고 했기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조금만 내어서 쓴다면 숙제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인데 왜 힘들어할까라는 생각도 들더구나. 그 때 떠오른 것이 그 전에 읽은 책과 시청한 방송이더구나.
진단
사토 마나부 교사가 쓴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너는 알고 있니? 136쪽 밖에 되지 않는 작고 얇은 책이지만, 일본 사회와 좀더 넓혀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와 교육을 배경으로 왜 아이들이 배움을 싫어하고 도망갈까에 대한 오랜 고민과 연구가 담긴 책이더구나. 이 책에서는 언년이처럼 배움을 싫어하는 이유를 니힐리즘(허무주의)과 시니즘(냉소주의)이 아이들에개 팽배해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단다. 니힐리즘은 “무엇을 배워도 소용없다”, “무엇을 배우든 인생은 어차피 변하지 않으며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고, 시디즘은 “일편단심 공부에 매달리는 일은 바보 같은 짓”, “배우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 “나는 바보라서 배워도 모른다”, “어떤 내용의 지식과 문화도 나와는 상관없다”, “세상이야 어찌 되었던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의 가치관이 배어있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니 이 책이 기억이 났겠지? 원대한 꿈을 갖기를 원하지만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그 꿈의 크기가 작아지는 언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예 무엇이 되며 어떤 일을 하며 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단다. 그렇게 꿈이 없는 언년이와 함께 생활하며 네 모습을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기에 나도 더욱 힘들구나. 더 나아가 초등학생이지만 성적 비관으로 자신의 생명으로부터까지 도망가는 저 멀리 떨이진 지역에 살았던 네 친구 언년이를 방송으로 보며 눈물까지 나더구나.
작년 연말에 EBS에서 방송했던 다큐프라임 “삼동초등학교 180일의 기록”이라는 저기 남해에 있는 네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그 친구들을 돕기 위해서 현재의 모습을 찍어 온 방송팀의 동영상을 보며, 교수님과 전문가들이 보였던 얼굴 표정과 말들처럼 나도 충격을 받았단다. 더 사토 마나부 교수의 진단이 맞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목가적이고 낭만적이며 꿈을 품고 힘차고 생명력이 넘치게 사는 모습을 기대하며 방송을 시청했는데 수업시간에 딴짓하거나 엎드려 자고, 선생님의 훈계에 눈을 똑바로 처다보며 말대답을 하는 모습, 여기에 성취도평가 결과는 낮았던 모습이란다.
언년아, 이렇게 너와 친구들이 변해가는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급격한 산업화와 경쟁원리가 팽배해지기에 경제적인 부익부 빈익빈으로 가정이 붕괴되어 문화 자본이 빈약한 가정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토 마나부 교수는 말하더구나. 우리 나라 식으로 쉽게 말하면 ‘개천에서 용나기’ 힘들어지는 사회구조가 점점 되어간다는구나. 급격한 산업화와 경쟁원리로 교육의 공공성이 성숙할 틈이 없었고, 민주주의도 불완전하기에 문화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식민지화되어 가는 모습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언년이가 생활하는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은 6, 70년대와 달리 현재는 실패와 좌절 밖에 없기에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더구나.
삼동초등학교의 네 친구들도 그렇더구나. 부모가 없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 아버지와만 살아서 아침을 챙겨 먹고 나올 수 없는 아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부모님이 맛벌이하기에 공부하는 것을 봐줄 수 없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의 아이가 있더구나. 물론 꿈도 없는 아이도 많았단다.
만남과 대화
언년아, 그럼 이런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어떻게 하면 깨뜨리고 배움을 향해 나아갈까? 사토 마나부 교수는 공부가 아닌 배움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신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존재하는 특이한 ‘이항대립의 개념구도’에 속박된 사고를 하기에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교사중심과 아동중심의 수업관’, ‘남자와 여자’, ‘지식․기능교육과 ’관심․의욕․태도교육‘, ’교사와 학생‘ 등의 속박된 전형적 사고를 한다는구나.
일본말 ‘공부’라는 말에는 원래 학습이라는 의미가 없다는구나. ‘무리하는 일’이라는 뜻이 있고,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개념에서 어원이 시작되었단다. 학습의 의미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20년대 이후일 것이라고 한단다. 공부로부터 배움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계속 배우는 의미를 잃고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 친구를 잃고, 배움을 뒷받침해주는 교사를 잃고,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된다는구나.
그렇다면 ‘배움’은 무엇일까? 배움은 공부와 달리 ‘만남과 대화’가 있는 것이란다. 공부가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수행되는 것에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항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와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란다. 즉 ‘사람이나 사물’, 일과 만남과 대화에 의한 활동적인 배움과 ‘타자와의 대화’를 통한 협동적인 배움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이란다. 예금개념 또는 전달의 공부개념으로부터 ‘만남과 대화’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란다.
삼동초등학교 네 친구들도 아키타 현의 친구들이 서로 배우기(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서당형 교육)와 교과일기, 복습공책 등으로 교사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진리와 만나고 자기 자신까지 만나서 대화(특히 교과일기)하며 배움을 찾아 달려가는 것처럼 다양한 만남을 갖고 배움을 사랑하게 되더구나. 미래의 희망을 꽃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되더구나. 네 친구들뿐만 아니라 밤늦게까지 네 친구들과 함께하며 선생님들도 배움이 일어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단다.
사랑의 도움
나의 사랑 언년아, 네가 태하와 다시 사랑에 빠지고 함께 달려가는 그 길을 무사히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구나. 사토 마나부 교수도 ‘배울 학(學)’자를 설명하면서 아이들의 만남에 노심하는 교사(어른)가 없는 곳에서는 배움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단다. 삼동초등학교 네 친구들도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서울로 현장체험을 가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한 주위 어른들의 도움으로 수업 시간에 배움의 열정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달라진 모습을 보고 언년이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내게도 생겼단다.
그래서, 우리 학급에서도 각 교과공책을 쓰고, 복습 공책을 적고, 서로 배우기를 하고 학습 도우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인데, 새학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힘든가보구나. 처음이라서 그럴 거야. 그래도 우리 함께 그 길을 달려가자꾸나. 도주가 아닌 공부에서 배움으로 옮기고 변화시키고 넓히는 ‘추학’을 우리 함께 해보자꾸나. 이렇게 우리 서로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배움의 길로 달려가자꾸나. 더욱 우리 서로를 사랑하고 배움을 사랑하게 되면 힘이 들지 않겠지? 아니 힘이 들어도 능히 이겨낼 수 있겠지?
힘내렴. 나의 사랑 언년아!
비 오던 우울한 하늘이 개이고 햇빛이 비취는 것처럼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로 가득한 언년이가 조금씩 변해가며 미래의 꿈과 희망이 더 밝게 빛나도록 하는 또 다른 더 넓고 깊은 만남과 대화를 기대하며......
2010년 4월 2일
언년이만을 사랑하여 언년이만을 바라보고 찾고 싶고 만나서 대화하며 함께 배움의 길을 달려가고픈 대길이가
추신) 언년아, 이 편지를 쓰는데 만남과 대화를 통해 배움을 얻고 도움을 받은 자료들이란다.1)
-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사토 마나부/손우정, 북코리아, 2005
- 삼동초등학교 180일의 기록 1부 : 아키타에서 배우다, EBS, 2009
- 삼동초등학교 180일의 기록 2부 : 기적의 조건, EBS, 2009
- 삼동초등학교 180일의 기록 3부 : 내일을 품은 아이들, EBS, 2009
1) 초등교사로 교단에 서며 있었던 일화에 읽고 보았던 책과 방송, 드라마를 버무려 편지글 형식의 수필로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