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제미나이 재테크 - 주식·부동산·세금·보험·연금까지 가장 쉬운 AI 금융 활용서
조성호 지음 / 한빛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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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대에 접어들면 세상의 속도가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모든 금융 거래가 이뤄지고, TV에서는 연일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 높인다. 이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무엇 하겠냐는 체념이 앞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만 소외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구어 온 자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는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하게 다가온다. 조성호의 <한 권으로 끝내는 제미나이 재테크>는 나 같은 노년층이 품고 있는 이러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해소해 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자극적인 투자 비법을 나열하는 흔한 재테크 서적이 아니다. 구글의 생성형 AI인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복잡한 재무 진단부터 주식, 부동산, 절세, 연금에 이르기까지 개인 맞춤형 경제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실용적인 금융 활용서다.

 

저자는 정보가 부족해서 재테크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보 중 ‘나에게 맞는 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 깊은 공감이 갔다.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켜면 온갖 투자 정보가 넘쳐나지만, 자산 규모도, 당면한 과제도, 남은 인생의 주기도 전혀 다른 젊은이들의 방식을 70대인 나에게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은 거창한 컴퓨터 언어를 몰라도, 그저 대화하듯 AI에게 질문하는 ‘프롬프트(질문 기술)’만 알면 제미나이를 나만의 충직한 금융 비서로 부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300여 개의 프롬프트 중 노년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자산 관리와 절세, 그리고 연금 전략 부문이었다. 젊은 날의 재테크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산을 불리는 ‘공격’ 중심이었다면, 70대의 재테크는 새는 돈을 막고 안정적인 흐름을 만드는 ‘수비’ 중심이어야 한다. 책에서 알려준 대로 제미나이에게 현재의 고정비 구조나 연금 수령 현황을 입력하고 효율적인 배분 방식을 묻자, 복잡한 세법이나 금융 용어를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마치 나만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전문 자산관리사를 곁에 둔 기분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AI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다. 저자는 AI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는 마법의 구슬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복잡한 데이터 분석과 번거로운 리서치는 AI에게 맡기되, 최종적인 판단과 투자의 중심은 결국 인간의 마인드와 절제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오래 살아온 노년의 지혜와도 맞닿아 있다. 젊은 세대만큼 기계를 빠르게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과 중심을 잡는 능력이 있다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장 품격 있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 노년층일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책을 덮으며, 배움에는 정말로 나이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책은 단순히 ‘돈을 버는 기술’을 넘어, 기술의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의 변화를 구경꾼처럼 바라만 볼 필요는 없다. 제미나이라는 든든한 AI 비서의 손을 잡고, 남은 인생의 경제적 동반자를 얻은 듯 마음이 든든해진다.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세상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맞는 올바른 자산 관리의 길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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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강신용 지음 / 내몸사랑연구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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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대에 접어들며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흔히 ‘나이 탓’을 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겁고, 이유 없이 피부가 가렵거나, 관절 마디마디가 쑤실 때면 세월의 무게려니 하며 진통제나 영양제로 버티는 것이 다반사다. 병원에 가도 딱히 명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 만성 염증과 피로 속에서, 남은 생을 그저 골골거리며 버텨야 하는 것인지 서글픈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던 중 접한 강신용의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는 내 몸이 보내는 적신호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 준 경종과도 같은 책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수많은 만성 질환과 면역 질환의 뿌리에 ‘장누수 증후군’이 있다고 단언한다. 장은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하고 배설하는 기관이 아니라, 우리 몸 면역 세포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핵심 방어벽이라는 것이다. 이 장벽에 미세한 틈이 생겨 독소와 유해균이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온몸을 도는 피는 오염되고 결국 전신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책 제목인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단순한 과장이 아닌 엄연한 인체의 메커니즘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반성했던 부분은 그동안 내 몸에 쏟아 부었던 무분별한 약물과 잘못된 식습관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 약은 기본이고,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를, 관절이 아프면 소염진통제를 습관적으로 삼켰다. 몸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도 한 움큼씩 먹어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과도한 약물 복용과 가공식품, 스트레스가 오히려 장 점막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독소를 막아주는 문지기가 쓰러졌는데,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쏟아 부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던 셈이다.

 

책이 제시하는 치유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다. 장 점막을 회복시키기 위해 독소가 되는 밀가루, 설탕,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와 발효 식품을 가까이하라는 처방이다. 70 평생 굳어져 온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 몸을 위한 마지막 투자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했다. 밥상을 바꾸고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자, 늘 더부룩하던 속이 편안해지며 아침에 일어날 때의 몸 무거움이 한결 덜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장을 고치는 것이 결국 온몸의 염증을 끄는 첫걸음임을 몸소 배운 것이다.

 

노년의 품격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 아무리 지혜가 깊고 마음이 넉넉해도, 몸이 아프면 이웃을 돌볼 여유도, 남은 삶을 즐길 기력도 사라진다. 70대의 건강 관리는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의학 정보를 넘어, 남은 생을 활력 있게 살아가기 위해 내 몸의 기초체력을 어떻게 다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훌륭한 건강 지침서다.

 

책장을 덮으며 내 서재와 주방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제는 약통에 의지해 증상만을 가리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내 몸의 중심인 장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치유에 집중해야 할 때다. 나이가 들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원인 모를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녀 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무너진 장벽을 재건하는 일, 그것이 바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노년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현명한 몸 돌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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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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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이 넘으면 세상 모든 이치에 달관하고 완벽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주름진 얼굴과 달리,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서툴고 흔들리는 청춘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음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몸은 늙어 가는데 정신은 과연 그만큼 깊어졌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 때, 라비니야의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를 만났다.

 

이 책은 단순히 젊은 날의 성장통을 기록한 에세이가 아니다. 활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비로소 스스로와 화해해 나가는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기록이다. 70대의 노년이라는 고개를 넘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당신도 지금,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나지막이 위로를 건넨다.

 

저자는 삶의 굽이치던 순간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점철된 일상을 문장으로 옮기면서 저자는 서서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지나온 나의 청춘과 중년의 세월을 복기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키우고, 생계를 꾸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느라 정작 내 마음이 어떤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있는지 돌볼 겨를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가 펜을 쥐고 자신의 아픔을 대면했듯, 나 역시 진작에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었더라면 그 모진 세월을 조금은 더 부드럽게 통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쓴다는 것은 나를 가두고 있던 감정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나를 온전히 안아주는 행위다.” 저자의 이 고백처럼, 글쓰기는 단순히 기록을 넘어선 치유의 과정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고, 그 결점마저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조금씩 어른이 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나이와 상관없이 만고의 진리다. 일흔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내 안의 미숙함과 싸우는 내게, 저자의 문장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해지면 자동으로 어른이 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은 생물학적 나이의 많음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며, 무엇보다 자신의 취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짜 어른의 조건이다.

 

돌이켜보면 70 평생을 살면서도 나는 얼마나 자주 남을 탓하고, 내 처지를 원망했던가. 저자가 글을 쓰며 대단한 성공이나 극적인 변화를 이뤄낸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조금씩 자신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둥글게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성장이었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의 성장은 기특하면서도 부러운 구석이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의 나 역시, 완고한 노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혜로운 어른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남은 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공책과 펜을 꺼내 들었다. 저자가 쓰는 행위를 통해 어른이 되었듯, 나 역시 내 남은 생의 조각들을 글로 적어 내려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70대라는 나이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지나온 삶을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젊은 세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은 모든 이들, 그리고 나처럼 인생의 후반전에서 참된 어른의 의미를 고뇌하는 노년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이다. 살아있는 한 인간의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나이 일흔에도 나는 여전히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뒤늦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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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시간, 작가가 되다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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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어느덧 사회의 중심보다는 관조의 자리에 앉아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때로는 행정적 부조리에 맞서 주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나라는 사람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이 시대를 살아왔는가’에 대한 기록의 갈증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마주한 황준연의 <하루 1시간, 작가가 되다>는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전수하는 지침서를 넘어,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의미 있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저자는 ‘하루 1시간’이라는 짧지만 집중된 시간을 통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젊은 시절 바쁜 일상에 치여 내면의 목소리를 돌보지 못했던 우리 세대에게, 이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책을 출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고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꾸준함’의 미학은 칠순을 맞이한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그동안 공동체의 책임자로서, 혹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수많은 문서를 작성하고 보고를 올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타의에 의한 기록이었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글은 아니었다. 저자는 거창한 문학적 재능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내 삶의 편린들을 활자로 옮기라고 말한다. 일흔의 나이에 비로소 ‘나’라는 주어를 앞세워 글을 써 내려가는 행위는, 어쩌면 인생 후반기에 맞이하는 가장 평화롭고 생산적인 혁명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조용한 평창드림힐빌리지에서 마주했던 고요한 아침들이 떠올랐다.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묵묵히 생각에 잠기던 그 시간들이, 글쓰기를 위한 최고의 준비 기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글쓰기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지나온 삶의 굴곡을 다독이는 치유의 과정임을 알려준다. 칠순의 삶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일의 기록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어가는 과정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물론,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맞춤법이나 문장의 구성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완벽함을 버리고 ‘지금, 여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작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다독인다. 우리 세대가 겪어온 격동의 현대사와 그 안에서 맺어온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지금 내가 당면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고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1시간, 작가가 되다>는 내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었다. 매일 단 한 시간이라도 온전히 나의 언어로 하루를 갈무리하는 것. 주민들의 대소사를 살피고 법적인 분쟁을 해결하며 느꼈던 무거운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삶의 통찰을 글로 엮어내는 일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짐했다. 거창한 회고록이 아니어도 좋다. 매일 쌓이는 단어들이 모여 훗날 나의 인생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쓰기는 나이를 잊게 한다.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칠순의 일상을 더욱 선명하게 빛나게 한다. 황준연 저자가 안내하는 이 길을 따라, 나는 이제 독자를 넘어 작가로서의 삶을 준비해보려 한다. 인생의 노을이 지는 저편에서, 나의 기록이 따스한 빛으로 남아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든다. 하루 1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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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로 다시 태어났다
박일섭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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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일섭 저자의 <나는 공부로 다시 태어났다>를 덮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동질감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나이 일흔을 넘기면 세상은 은연중에 우리에게 ‘정리’와 ‘마무리’를 요구한다. 평생을 일궈온 일터에서 내려오고, 사회적 관계망이 좁아지며, 몸의 이곳저곳에서 삐걱거리는 신호가 올 때, 많은 이들은 삶의 속도를 줄이고 과거를 반추하는 일에 안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백세 시대라는 막연한 축복의 구호 속에서 방황하는 노년들에게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한다. 바로 ‘공부’라는 가장 뜨겁고도 고요한 혁명이다.

 

저자는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젊은 날의 공부와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짚어낸다. 젊은 시절의 공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고, 간판을 따기 위한 경쟁이었으며, 사회적 신분 상승의 도구였다. 늘 불안했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일흔의 문턱에서 마주하는 공부는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사치이자 특권이다. 시험의 압박도, 취업의 초조함도 없다. 오롯이 앎 그 자체의 기쁨을 누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내가 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가 말하는 ‘다시 태어났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규정한 노년의 삶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영혼을 새롭게 리모델링했다는 선언이다.

 

“젊은 날의 공부가 세상에 나를 맞추는 과정이었다면, 노년의 공부는 비로소 세상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의 과정이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가 퇴화하고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에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저자의 경험담처럼, 노년의 공부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수십 년간 겹겹이 쌓아온 ‘인생의 경험’과 ‘맥락을 짚는 안목’이다. 책 속의 활자들은 단순히 머리로 고여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풍파와 만나며 입체적인 깨달음으로 확산된다. 젊은 시절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고전의 문장들이, 은퇴 후 삶의 여유 속에서 읽을 때 비로소 가슴을 울리는 숯불 같은 온기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공부가 거창한 학문적 성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정독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찾아 읽고 짧은 감상을 남기는 것, 새로운 기술이나 언어를 조금씩 익혀나가는 것 모두가 훌륭한 공부다. 이러한 행위들은 은퇴 후 자칫 빠지기 쉬운 무기력과 고독감으로부터 우리를 단단하게 지켜준다. 뇌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세상과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 속에서, 노년은 ‘부양받아야 할 쇠락한 계층’이 아니라 ‘지혜를 나누어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된다.

 

결국 <나는 공부로 다시 태어났다>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 종착지를 향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격려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다. 저자가 활기차게 열어젖힌 공부의 문을 보며, 나 역시 남은 생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낀다.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 내 영혼은 늙지 않고 여전히 푸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매일 새로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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