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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이 넘으면 세상 모든 이치에 달관하고 완벽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주름진 얼굴과 달리,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서툴고 흔들리는 청춘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음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몸은 늙어 가는데 정신은 과연 그만큼 깊어졌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 때, 라비니야의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를 만났다.
이 책은 단순히 젊은 날의 성장통을 기록한 에세이가 아니다. 활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비로소 스스로와 화해해 나가는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기록이다. 70대의 노년이라는 고개를 넘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당신도 지금,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나지막이 위로를 건넨다.

저자는 삶의 굽이치던 순간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점철된 일상을 문장으로 옮기면서 저자는 서서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지나온 나의 청춘과 중년의 세월을 복기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키우고, 생계를 꾸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느라 정작 내 마음이 어떤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있는지 돌볼 겨를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가 펜을 쥐고 자신의 아픔을 대면했듯, 나 역시 진작에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었더라면 그 모진 세월을 조금은 더 부드럽게 통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쓴다는 것은 나를 가두고 있던 감정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나를 온전히 안아주는 행위다.” 저자의 이 고백처럼, 글쓰기는 단순히 기록을 넘어선 치유의 과정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고, 그 결점마저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조금씩 어른이 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나이와 상관없이 만고의 진리다. 일흔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내 안의 미숙함과 싸우는 내게, 저자의 문장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해지면 자동으로 어른이 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은 생물학적 나이의 많음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며, 무엇보다 자신의 취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짜 어른의 조건이다.

돌이켜보면 70 평생을 살면서도 나는 얼마나 자주 남을 탓하고, 내 처지를 원망했던가. 저자가 글을 쓰며 대단한 성공이나 극적인 변화를 이뤄낸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조금씩 자신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둥글게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성장이었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의 성장은 기특하면서도 부러운 구석이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의 나 역시, 완고한 노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혜로운 어른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남은 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공책과 펜을 꺼내 들었다. 저자가 쓰는 행위를 통해 어른이 되었듯, 나 역시 내 남은 생의 조각들을 글로 적어 내려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70대라는 나이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지나온 삶을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젊은 세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은 모든 이들, 그리고 나처럼 인생의 후반전에서 참된 어른의 의미를 고뇌하는 노년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이다. 살아있는 한 인간의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나이 일흔에도 나는 여전히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뒤늦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