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묻다
함익병.김범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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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고개를 넘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세상사 대부분이 심드렁해진다. 웬만한 정치적 격랑이나 사회적 소동에도 다 지나갈 일이라며 허허 웃고 넘길 만한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누르는 질문 하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피땀 흘려 일군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과연 이 국가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피부과 의사 함익병과 뇌과학자 김범준이 대담 형식으로 펴낸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는 바로 이 해묵은, 하지만 가장 뜨거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이 책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을 겨루는 논쟁서가 아니다. 칠십 대의 눈으로 바라본 이 책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궤적과 앞으로 자식, 손주 세대가 살아갈 미래의 이정표를 동시에 보여주는 거울에 가깝다. 저자들은 의학적 진단과 과학적 통찰이라는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고질병을 해부한다. 정치, 경제, 사회의 뒤엉킨 매듭을 풀기 위해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냉철하면서도 본질적이다.

 

우리 세대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직 생존번역을 위해 달렸다. 굶주림을 벗어나는 것이 애국이었고,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이룩한 압축 성장의 열매를 오늘날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무겁다. 저자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이 시스템의 오작동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가의 자원과 권력이 국민 전체를 위해 쓰이기보다는, 특정 이익 집단이나 정치적 세력의 사유물처럼 전락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국가가 소수의 기득권이나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평범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깊이 공감한 부분은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우리 세대가 겪었던 빈곤의 고통과는 또 다른 형태의 절망이 지금 청년 세대를 덮치고 있다. 극심한 양극화, 저출생,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붕괴는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뇌과학자인 저자가 사회적 신뢰와 소통의 단절을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 의사인 저자가 현실적인 처방전을 내리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정성상식이라는 기본 면역력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좋은 국가란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았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정직하게 땀 흘린 사람이 합당한 대접을 받으며, 노년의 삶이 비참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주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이 책은 우리가 청춘을 바쳐 세운 이 나라가 단순한 권력 게임의 장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함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지식인들의 현학적인 말장난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구체적이고 솔직한 대담이기에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긴다. 칠십 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자식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적 유산을 물려주는 일일 것이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인생의 무게를 아는 동년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국가는 결국,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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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항 潛航 - 부자父子 잠수함 함장이 추적한 영화 속 심해의 진실
서강흠.서정훈 지음 / 예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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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황혼의 길목에 서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인생이란 결국 저마다의 깊은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시퍼런 파도가 휘몰아치는 수면 위도 위태롭지만,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심해 속에서 오직 자신의 이성과 침묵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하는 삶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강흠, 서정훈 부자(父子)가 함께 써 내려간 <잠항(潛航)>은 표면적으로는 영화 속 잠수함의 세계와 실제 심해 작전의 진실을 다룬 흥미로운 교양서다. <붉은 10>이나 <특전 U보트> 같은 익숙한 영화들을 길잡이 삼아 소나 운용이나 잠항 전술의 허구와 실체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일흔을 넘긴 늙은 독자의 눈에 정작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군사적 지식이나 화려한 전술이 아니었다. 그 수평선 아래 묵묵히 깔려 있는 극단의 리더십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책임의 유산이었다.

 

잠수함은 외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고립무원의 공간이다. 통신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한번 판단을 그르치면 승조원 전원의 생명이 바닷 속에 매장되는 극단적인 전장이다. 이 책은 바다 깊은 곳에서 함장이 짊어져야 하는 고독과 무게를 담담하게 전한다.

 

저자들은 스크린 뒤에 숨겨진 진짜 잠수함의 세계를 통해, 리더란 소리를 지르고 위세를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극심한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방향을 잡고 공동체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함을 일깨운다. 살면서 수많은 조직을 경험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맡아온 입장에서, 리더십의 본질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뎌내는 책임감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잠수함이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지만, 그 침묵이 결국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절제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리를 내지 않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 음습한 공간에서 승조원들이 나누는 신뢰와 팀워크는, 갈등과 소음이 넘쳐나는 우리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독보적인 매력은 저자들의 특별한 인연에 있다. 대한민국 잠수함 전력의 기틀을 다진 아버지(서강흠), 그 뒤를 이어 현역 장보고급 잠수함 함장으로 바다를 지키는 아들(서정훈)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건넨다. 할아버지부터 이어져 온 3대 해사 동문이자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부자 잠수함 함장이라는 기록은 단순히 가문의 영광을 넘어선다.

 

한 사람은 지나온 역사가 되어 지혜를 나누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의 현장에서 그 역사를 실시간으로 이어간다. 같은 영화를 보며 아버지가 겪었던 옛 작전의 회고와 아들이 전하는 요즘 심해의 생생함이 어우러지는 대목은, 마치 잘 여문 고목 아래 어린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장엄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후대에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들 부자가 보여준 대화는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의 형태였다.

 

우리는 수면 위 평화로운 바다만을 보며 살아가지만, 그 평화 밑바닥에는 빛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청춘을 바치는 이름 없는 승조원들이 있다. 좁은 침상과 제한된 산소 속에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견뎌내는 그들의 삶을 읽으며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잠항>은 단순한 군사·영화 해설서를 넘어, 고독한 결단의 무게를 아는 이들에게 건네는 묵직한 위로이자 인문학적 성찰이다. 살면서 겪는 온갖 풍파 속에서 자신의 배를 어찌 조타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인생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는 또래의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침묵 속에서도 묵묵히 항해를 이어가는 그 모든 고독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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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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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진우 교수의 <일이 사라진 세상>은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노동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흔들리는 현상을 깊이 있게 파헤친 책이다. 평생을 일과 사회적 책무 속에서 살아온 70대의 시선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다가오는 감회는 단순히 미래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 세대에게 이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일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었고, 가족을 부양하는 자부심이었으며,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 그 자체였다. 일터에서의 고단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고,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는 결실이 인생의 가장 큰 훈장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경고하듯,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육체적 노동을 대체하고 일이 사라지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사회를 지탱하던 이 오래된 가치관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저자는 일이 사라진 시대가 가져올 사회적, 철학적 변혁을 침착하게 짚어낸다.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 생길 거대한 시간의 공백, 그리고 그 공백이 가져올 인간성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을 경고한다. 젊은 시절 사회적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음질쳐 온 이들에게 일의 종말은 마치 목적지를 잃어버린 막막함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실제로 은퇴 후 일손을 놓은 많은 이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휘청이는 모습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이는 일이 사라진 미래 사회가 직면할 모습의 전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70대의 지혜로 이 책을 다시금 되짚어보면, 일의 소멸이 곧 삶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에게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 하라고 촉구한다. 강요된 목적이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일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마침내 스스로 선택한 순수한 여정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마치 은퇴 후 아무런 목적이나 사회적 야망 없이 떠나는 호젓한 여행처럼, 혹은 아무런 굴레 없이 좋아하는 책장을 천천히 넘어가는 노년의 독서처럼 말이다. 가고 싶으면 천천히 걷고, 멈추고 싶으면 어디든 자리를 잡고 앉아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것이야말로 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이자 삶의 황금기라 부를 만한 순간이다.

 

<일이 사라진 세상>이 주는 참된 교훈은 기술 발전이 가져올 재앙을 두려워하라는 데 있지 않다. 일이 삶의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온 우리 세대가,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 일 너머의 삶에 대한 지혜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일이라는 목적성이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존엄한 삶이, 타인과의 따뜻한 연결이, 그리고 순수한 창조적 기쁨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먼 길을 먼저 걸어온 노년의 역할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미래 기술에 대한 예측서이자,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인 삶의 자세를 묻는 철학서다. 일이 사라지는 두려움 속에서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책은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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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 -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
이한빛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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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뜻일 것이다. 요즘 세상은 온통 인공지능(AI) 이야기로 시끄럽다. 텔레비전을 켜도, 신문을 펼쳐도 AI가 세상을 바꾼다고 난리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컴퓨터가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지만, 이번 AI 열풍은 유독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젊은이들은 AI 덕분에 업무 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고 환호하는데, 막상 내가 호기심에 몇 마디 말을 걸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겉핥기식이고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거대 언어 모델이니 뭐니 해도 결국 속 빈 강정이구나싶어 내심 실망하던 차에 이한빛의 <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책에서 뼈아픈 지적을 던진다. AI가 멍청한 답변을 내놓는 이유는 그 기계의 성능이 떨어져서도 아니고, 사용자가 타고난 질문 센스가 없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작 사람이 자신의 상태와 조건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정답만을 요구해온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기계가 알아서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랐던 내 오만함과 조급함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에게 내 사정과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알아서 해달라고 하면 반드시 오해가 생기고 어긋나기 마련이다. 평생을 살아오며 이웃과, 동료와, 가족과 겪었던 수많은 갈등이 결국 내 안의 기준을 상대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저자는 AI와의 대화 역시 이와 똑같은 소통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AI에게 보고서처럼 써줘라고 말할 때, 내 머릿속의 보고서AI가 학습한 보고서의 기준은 전혀 다르다.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원하는 분량, 내가 지향하는 목적을 명확히 설계하고 설명해 주지 않으면 AI는 그저 세상의 수많은 평균 데이터중 하나를 뱉어낼 뿐이다.

 

이 책은 시중에 흔히 널린 프롬프트 명령어 몇 개로 AI 다루기같은 얕은 기술을 가르쳐주는 매뉴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구조화하여 상대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결국 AI를 똑똑하게 쓰는 사람들은 명령어를 잘 외운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와 가치관, 그리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꿰뚫고 있는 이들이다. 내가 명확해져야 기계도 명확해진다는 진리는,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유 능력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노년에 접어들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늘 경계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 생각에 갇혀 타인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거나, 세상을 내 기준대로만 재단하는 고집이다. 이 책을 덮으며 기계와의 대화법을 배웠다기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불친절한 설명가였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질문이 똑똑해야 대답도 똑똑하다는 말은 비단 AI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어렵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나의 맥락을 제대로 설명했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AI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주저하는 동년배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기계는 인간을 대체하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거울일 뿐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질문의 품격을 돌아보게 만드는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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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AI 문해력
김진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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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고개를 넘어선 이 나이가 되면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두려움과 쓸쓸함이 교차하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들은 눈이 침침하고 손끝이 둔해진 노년의 일상을 자꾸만 변방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화면 속 복잡한 앱을 누르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릴 때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느끼는 소외감은 생각보다 깊다. 하물며 최근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는 먼 미래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같은 노인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릴 것 같은 막연한 공포로 다가왔다. 김진형의 <어른의 AI 문해력>을 손에 쥔 것은 바로 그러한 두려움을 직시하고,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내가 발 디디고 설 자리를 찾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기술을 복잡한 수식이나 난해한 컴퓨터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왜 AI를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태도에 대해 차분히 짚어 나간다. 저자는 AI를 단순히 젊은 세대 전유물의 기술로 가두지 않고,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새로운 문명으로 정의한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이 과거 삶의 기본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AI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AI 문해력이야말로 시대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어른들의 새로운 교양이자 존엄의 도구라는 저자의 지적은 내 뒤통수를 치듯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나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자극적인 뉴스들에 지레 겁을 먹고 담을 쌓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AI의 놀라운 가능성을 명쾌하게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한계와 오류 역시 가감 없이 들추어낸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럴듯한 답을 내놓지만, 그것이 진짜 사실인지 혹은 윤리적으로 올바른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결국 기술을 부리고 제어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칠십 평생을 살며 쌓아온 삶의 연륜과 지혜가 결코 무용지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일은 오히려 수많은 생의 굴곡을 겪으며 균형 감각을 키워온 노년의 어른들이 더 잘해낼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문해력이란 기술을 맹신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속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다.” 저자의 이 문장은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 역시 주판에서 컴퓨터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왔다.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듯, AI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새로운 도구일 뿐이다. 이제는 이 나이에 내가 배워서 뭐 하겠나라는 체념 섞인 핑계 뒤로 숨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게 기술을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읽어낼 수 있는 안목만은 잃지 않아야 늙어가는 처지에서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는 실용서를 넘어, 기술 과잉의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를 묻는 묵직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낼수록,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과 도덕적 책임감 같은 가장 인간다운 가치들이다. 칠십 대의 눈으로 바라본 AI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빠르지만, 이 책 덕분에 비로소 그 흐름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세상의 속도에 쫓겨 주눅 들어 있는 이 시대의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기술의 편리함 속에 갇혀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서재의 책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본다. 나만의 속도로 이 거대한 문명을 읽어 내려가는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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