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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성경 - 이야기로 풀어 쓴 성경 인물 10인의 일터 신앙기
원용일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생을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왔고,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삶의 속도를 늦춘 노년의 자리에 서 있다. 돌아보면 일은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이었고,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이자 사회적 존재로서 나를 증명하는 통로였다. 그러나 정작 ‘내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일해야 했는가’, ‘내가 흘린 땀방울 속에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사색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닥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전부였던 탓이다. 뒤늦게 원용일 목사의 <일하는 사람들의 성경>을 읽으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복기하고 일의 본질을 신앙의 눈으로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저자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종교적 영역에만 머문 이들이 아니라, 저마다의 일터에서 땀 흘리던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고도 명쾌하게 짚어낸다. 아브라함은 대규모 가축을 이끌던 축산업자였고, 요셉은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했던 고위 공직자였으며, 바울은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막을 긷던 기술자였다는 식의 접근은 신선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흔히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나 기도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직업적 활동과 노동이 곧 신의 섭리를 이루는 성스러운 부르심(소명)임을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지나온 내 일의 세월에 대한 깊은 위로였다. 젊은 날, 때로는 억지로 해야 했던 고된 노동과 숱한 갈등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한 직장인이었는지, 혹은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가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성경적 관점은 다르다.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주며, 공평하고 정의롭게 일했다면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신앙의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일터에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이 곧 신앙의 훈련장이었음을 인정받는 듯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동시에 이 책은 현역에서 물러난 노년의 나에게 ‘일’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직장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노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나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지역 공동체를 돌보고 이웃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어가는 자발적이고 성숙한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정적 문제를 살피고, 이웃 간의 갈등을 조정하며, 올바른 가치를 사회에 전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이 모든 노년의 활동 역시 신이 내게 맡기신 새로운 형태의 ‘일터’임을 깨닫는다. 젊은 날의 일이 거친 세상과의 투쟁이었다면, 노년의 일은 지혜와 온기를 나누는 상생의 노동이 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일터에서의 윤리와 공공성에 대한 부분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자본의 논리와 효율성만 앞세워 사람의 존엄을 잃어버린 현대의 일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직과 배려, 그리고 약자를 향한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이 나이가 되어 사회를 바라보면 세대 간의 단절이나 이기주의로 삭막해진 풍경이 자주 눈에 밟힌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오랜 세월 삶의 풍파를 겪어낸 노년의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을 잡고, 법과 절차 너머에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정의로움을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은퇴한 노년이 세상이라는 일터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다.

이 책은 일에 치여 지친 젊은이들에게는 소명의식을 깨워주는 친절한 안내서이지만, 인생의 황혼녘에 선 노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남은 생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저자의 따뜻하면서도 명확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살아낸 어제와 살아가야 할 오늘이 모두 신의 계획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내 손에 새겨진 굳은살과 주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흔적들은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일해 왔다는 증거이자, 신앙의 여정을 치열하게 걸어왔다는 훈장이다. 남은 생 동안 나에게 주어질 소박한 일과들 글을 쓰고, 이웃을 살피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행위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임하고자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이 허락하신 일터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신실한 노동자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마음 깊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