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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고고학은 흔히 땅속을 파헤치는 정적인 학문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과학 저술가 샘 킨이 안내하는 탐구의 세계는 전혀 다른 생동감을 전해준다. 유물을 눈으로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방식대로 직접 석기를 떼어내고 토기를 가마에 구워보며 옛 사람들의 삶과 노동을 온몸으로 복원해내는 ‘실험고고학’의 현장은 실로 역동적이다. 평생에 걸쳐 삶의 온가지 파도를 겪어내고 노년에 들어선 이의 눈에, 이 실천적 학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70대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직접 몸으로 겪어내며 얻는 지혜’의 가치다. 젊은 시절의 배움이 주로 책이나 타인의 말을 통해 얻는 관념적인 지식이었다면, 인생의 후반부에 도달해 깨닫게 되는 진정한 명철은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빗살무늬토기의 금이 왜 가는지 직접 흙을 개어 불을 지펴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듯, 인생의 굽이마다 스며든 희로애락의 의미 역시 세월이라는 용광로 속에 몸을 던져 살아낸 자만이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고고학자들이 과거의 도구를 똑같이 만들어보며 옛 선조들의 고단함과 지혜에 다가가는 모습은, 지나온 내 삶의 궤적과 닮아 있어 묘한 친근감을 준다.

또한 이 책은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시간과의 깊은 호흡’을 되찾아준다. 오늘날 세계는 정밀한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신속하게 처리해주는 효율성의 시대다. 그러나 돌 하나를 제대로 가다듬기 위해 수천 번의 망치질을 반복하고, 고대인의 주거지를 복원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흙을 다지는 실험고고학자들의 느리고 고집스러운 노동은 잊고 있던 인간 본연의 숭고함을 일깨운다. 목적지를 향해 조급하게 내달리기보다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무런 목적이나 굴레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순수하게 누리는 노년의 독서나 여정과도 일맥상통한다. 빠른 속도에 밀려 자칫 경시되기 쉬운 ‘기다림과 숙련의 가치’를 고고학이라는 창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유물이라는 차가운 물질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숨결’이다. 깨진 토기 조각이나 무뎌진 돌도끼는 단순한 옛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삶의 터전을 일구던 삶의 흔적이다. 고고학자들이 몸소 실험을 거쳐 그 시절의 노동을 재현해낼 때, 비로소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 대 인간의 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 먼 옛날 이 땅을 살다 간 이들의 삶이나,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며 오늘을 일궈낸 우리 세대의 삶이나, 인간이 지닌 존엄성과 삶에 대한 진정성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샘 킨의 글을 따라 과거로 떠난 이 호젓한 탐구의 여정은, 나이 듦이 결코 과거에 매몰되는 퇴보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더욱 깊게 되새기는 완성의 과정임을 나지막이 말해준다. 세월이 쌓여 고고학적 유물처럼 묵직해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시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할지 지혜로운 화두를 던져주는 참으로 담백하고 뜻 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