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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자유
아흐메드 카스라다 지음, 박진희 옮김 / 니케북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1964년 추운 한겨울, 죄수 일곱 명을 태운 비행기가 케이프타운 해안에 자리한 교도소 로벤섬에 착륙했다. 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7인’이라 불렸지만 그들의 행색에서 위대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죄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넬슨 만델라였고, 가장 어린 막내는 당시 서른네 살의 아흐메드 카스라다였다. 이들은 당시 집권 세력인 국민당 정부에 반하는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카스라다는 18년의 로벤 섬 교도소 복역 기간을 포함해 모두 26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면서 교도관의 눈을 피해 가능한 한 매일매일 많은 양의 문장을 수집했다. 책, 신문, 잡지 등에서 발췌한 수천 개의 격언과 문장들은 7권의 공책을 가득 메웠다.
이 책은 바로, 아흐메드 카스라다가 수감생활을 통해 깨달았던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자유의 가치를 아름다운 사진과 글로 담아낸 감동적인 에세이다. 책의 밑바탕이 된 건 물론 그가 수집했던 잠언 같은 글귀들이다. 버나드 쇼와 찰스 디킨스 등 대문호의 글에서부터, 각종 신문과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의 잡지에서 발췌한 글들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다. 글귀 두엇, 혹은 몇 문장을 전한 뒤, 그와 연관 지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관 등을 풀어 쓰는 형식이다.
저자가 쇠창살에 얽매이지 않고 그 너머의 밝은 달까지 관조할 수 있었던 힘은 ‘좁쌀만큼의 자유’에서 비롯됐다. 영국의 언론인 출신 작가 세드릭 벨프리지의 말처럼 감옥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자유의 가치를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발견할 수 있는 곳”(p.56)이다. 영어의 몸이 된 카스라다가 “너무나 소중해서, 좁쌀만 한 자유만으로도 피가 끓고 심장은 노래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싶다.
존 밀턴은 “좋은 책을 없애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이성적 존재를 말살하는 것이지만,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신의 목전에서 신의 모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땅에 큰 짐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지만, 좋은 책은 위대한 정신에 귀한 생명수이며, 현세의 삶 그 너머까지 영원히 썩지 않고 소중히 간직된다.”(p.107)고 말했다.
이 책에 들어있는 사진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독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독방 전경, 벨트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바지와 낡은 재킷 등 지독하게 차가운 느낌의 사진들이다. 십여 개의 계단 위에 버티고 선 법정 사진은 더욱 극적이다. 저자는 사형 판결이 내려질 걸 예상하고 계단을 올랐을 것이다. 살을 벨 만큼 각진 계단은 죄수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종신형을 선고받고 계단을 내려올 때 저자는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뻐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20년이 넘도록 자신만의 자유를 단 한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어떻게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자비한 폭력과 더불어 존엄성까지 무참히 짓밟혀가면서도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읽는 내내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은 감옥에 갇힌 모든 죄수들,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범들이 어떻게 자기 앞에 놓인 시련에 맞서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 내면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