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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책을 읽는 맛이 난다. 많은 책들 중에 나는 산문집을 즐겨 읽는다. 오늘 손에 잡은 책은 <노란집>이라는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1931-2011)의 산문집이다.
이 책에는 ‘예쁜 오솔길’, ‘영감님의 사치’, ‘행복하게 사는 법’,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내리막길의 어려움’, ‘봄이 오는 소리’ 등 산문 40여 편과 ‘그들만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이 수록됐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생의 깊이와 멋이 느껴지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나간다.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 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마나님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p.33)라고 말했다.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행복하려면 사랑하라고 말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아무도 그의 쓸모를 발견해 주지 않았을 뿐”이라며, 남의 장점을 보고 사랑해주면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줄 것이고,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각별히 사랑했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한 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자신을 지탱해준 것도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젊은이들 앞에서 늙은이 티를 내기는 싫지만 나이를 먹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닥치는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려고 태어났지 불행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각자 선택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제각각 다르다.” 또한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주셨다. 나이 먹어가면서 그게 눈에 보이고 실감으로 느껴지는 게 연륜이고 나잇값인가 보다.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 말이다.”라고 했다.
작가의 딸 호원숙씨는 서문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머니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쓰신 글이다. 돌아가신지 이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어머니의 뜰에는 살아 계실 때와 거의 똑같은 속도와 빛깔로 꽃이 피고 지고 있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글을 읽으며 조용히 귀 기울이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리움에 눈물이 솟을지라도”라고 가록했다.
이 책은 청춘 남녀들이 밤을 새워가며 읽는 연애소설도 아니고, 손에 땀을 쥐고 가슴 두근거리며 읽는 추리소설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그려내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도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