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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 고종 황제의 그림자 연인
문준성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의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고종의 무능하고 유약한 성격이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고종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개혁군주’라고 평가한다.
고종이 살았던 시기는 우리 역사가 근대사회로 이행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가 세운 대한제국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식민지화의 길을 걸었고 제국의 황제는 국권을 지켜내지 못한 인물로 남아야 했다. 긍정적인 평가이든 부정적인 평가이든, 그는 실로 조선왕조의 비극적인 말로를 온 몸을 겪어야 했던 황제였고, 부인인 명성황후가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이 책은 대한제국을 둘러싼 음모 속에 피어난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미국 여인 에밀리 브라운의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문준성 소설이다. 시시각각 암살의 위협을 느끼는 고종 황제에게 어느 날 제중원에서 일하는 미국 선교사의 딸 에밀리 브라운이 나타난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침략하려는 청.일.러의 복잡한 정치 역학 속에서 최후의 수를 두기로 한다.
일본에 의해 국모인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 청나라는 물론 일본, 러시아 등 외세가 발호하면서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로 빠져든다. 암살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은 러시아와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세력으로 미국을 택하고,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에밀리에게 접근했지만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03년 11월, 미국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에 기사 하나가 났다. “이역만리 조선의 왕 고종과 에밀리 브라운이라는 미국처녀가 결혼을 한다.” 이 기사가 허구든 사실이든. 실체를 파혜쳐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개화기 역사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며 소설을 쓴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에 머리가 숙여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고종 황제에 대해 조선의 무능한 왕으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의 편협된 마음을 뉘우쳤다. 세상 어느 왕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보고 손 놓고 힘없이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고종 스스로도 얼마나 힘을 쓰면서 고뇌했을까?
이 소설은 고종 황제와 에밀리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대한제국의 험난했던 역사를 보여 준다. 둘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 뒤에는 대한제국을 둘러싼 음모가 숨어 있다. 망국의 왕이었지만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던 고종의 열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나라. 그에게 나라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요, 목숨을 바쳐 지켜 내야 하는 것이었다.”(p.258) 이제 그들은 모두 역사 속에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주인공들이다. 한편의 멋진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