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사슬에서 벗어나라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4
오쇼(Osho)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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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사회적 책임은 막중하다. 한국의 종교 인구는 53%에 이르고, 개신교 신자는 전 국민의 20%에 육박한다. 지난날 한국 교회는 국가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해왔지만, 지금은 도리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통의 신조를 벗어난 교리의 이단보다 신앙윤리를 저버린 ‘삶의 이단’이 더 무섭고 더 악마적이다. 교리나 제도의 개혁보다 인격과 삶의 쇄신이 더욱 절실하다는 뜻이다.

 

예수는 율법으로 대표되는 제도 종교의 사슬을 끊고 ‘오직 진리만이 인간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확신으로 개혁을 외치다가 십자가에 달렸다. 예수는 부패한 세리, 타락한 매춘부, 천대받던 이방인 등 온갖 비천한 사람들을 아무 차별 없이 친구로 품어 안았지만, 최고 종교권력자인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에게는 무서운 분노를 뿜어냈다. 제도 종교의 기득권자들은 이를 갈며 예수를 죽일 궁리에 골몰했다. 예수의 거룩한 분노는 영혼의 자유를 옥죄는 위선적 종교권력에 대한 엄중한 질책이었고, 이 질책은 교황청에 대한 루터의 항의로 계승되었다.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책은 인도의 떠도는 사람, 예수와 붓다 이후에 가장 위대한 가르침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인도의 오쇼가 박제된 이념을 진리로 내세워 인간을 억압하는 기성종교의 기만술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종교성의 부활을 가르친다. 그는 인간을 노예로 만든 가장 폭군적 개념인 신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인간에게 되돌려준다. 이것은 인간의 신성함과 자유에 대한 선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정한 종교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그것과는 다르다. 진정한 종교는 기독교도 아니요, 힌두교나 이슬람교도 아니다. 소위 ‘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은 죽어 있는 돌과 같다. 내가 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성이다. 이 종교성은 흐르는 강과 같이 끊임없이 행로를 바꾸지만 결국엔 바다에 이른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종교성이다.”(p.11)라고 하면서 “지구상에는 3백여 개 이상의 종교가 있지만 그들 모두가 바윗덩어리와 같다. 그들은 흐르지 않으며 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지 죽어 있는 것은 결코 그대에게 도움이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무덤에 갇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유용하다.”(p.12)고 말했다.

 

저자 오쇼의 가르침은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질문으로부터 현대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적 문제들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오쇼의 책들은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청중들과 나눈 즉석문답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에 대해 오쇼는 “이것을 명심하라. 지금 나는 그대들만을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다가오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현대 종교의 부패를 강하게 꼬집고 종교의 사슬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한다. 수천억원대의 화려한 교회당 안에서 집 없고 가난한 이들이 무슨 위로를 받을 것이며, 으리으리한 대리석 강단에서 어떻게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를 전하며, 교단 총회에 가스총이 등장하는 마당에 무슨 입으로 이 폭력의 사회를 꾸짖을 것인지 참 종교성의 부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를 너무 팸하하는데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 성경은 음탕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500페이지 분량의 음란소설이 성경이다.”라고 하면서 “나는 정확히 500페이지에 달하는 음란소설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구약을 신이 쓴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신은 플레이보이 잡지사에 근무하는 포르노 작가란 말인가?”(p.204) 라고 했는데 ‘성경이 음탕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고 하는 말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종교개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오늘과 내일의 과제다. 한국의 종교(불교, 카토릭, 기독교)가 기복과 형통의 넓은 길을 버리고 참회와 고난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 진정한 종교성의 부활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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