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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ㅣ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평점 :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은 <플래툰>과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미국 영화들, 또는 <하얀 전쟁>, <무기의 그늘>, <님은 먼 곳에>와 같은 한국 소설을 통해 이해되어 왔다.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는 <알 포인트>, <위 워 솔저스>, <굿모닝 베트남>, <전쟁의 사상자들>, <햄버거 힐>, <그린 드래곤>, <푸른 옷소매> 등이 있다.
이 책은 북베트남 해방군 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쟁의 당위와 이념의 뒤에 묻힌 청춘의 방황과 고통을 그리고 있다.
베트남전쟁 하면 10,000일의 전쟁, 세계사에 남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바오 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의 나이에 1969년 북베트남군에 자원입대했다. 3개월간 사격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가 첫 전투에서 소대원들이 대부분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 소대 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전선에서 싸웠다. 7년 동안 광란의 살인극을 체험한 뒤 가까스로 살아남아 1991년 ‘전쟁의 슬픔’을 펴냈다.
저자는 끼엔이 프엉과 함께 성장했던 하노이의 공동 주택을 떠나 전쟁터로 갔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 서사를 펼쳐 나간다. 그러나 이 어린 연인이 걸어야 했던 아픈 사랑의 여정은 이 소설 속에서 너무 실낱처럼 가늘고 희미하다. 더구나 이 여린 사랑의 서사는 자주 피에 잠기고 화약 연기에 덮여 밀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전쟁이라는 커다란 비극을 실제 겪은 저자가 전쟁과 첫사랑의 충돌이라는 잔인함을 소설 속에 녹여 내고 있다. 열일곱 살 어린 여인의 싱거럽고 풋풋한 사랑은 하노이를 떠나면서 격정과 절망에 휩싸이고, 끼엔은 첫사랑을 뒤로 하고 죽음의 전쟁터로 홀로 들어간다. 십 년 간의 처절한 전쟁은 끼엔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영혼을 메마르게 만들었다. 그런 끼엔은 우연히 첫사랑과 재회하지만, 전쟁은 그녀마저 너무 많이 변화시키고 말았다. 이번에는 프엉이 하노이를 떠나면서 끼엔은 다시 홀로 남겨진다.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는 전장의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독자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피비린내가 아니라 더없이 거칠고 한없이 허망한 전쟁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 미국은 55만 3천 명의 군 병력을 파견했고, 그 중 5만 8천 명이 사망했다. 남베트남 군은 25만 명 이상 사망했고 NLF 군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백만 가량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투병력을 파견한 대한민국은 약 5000명이 전사하였고 1만 6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베트남 전체의 민간인도 2백만 이상이 사망하거나 상처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념보다, 이권보다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 덧없이 죽어간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대지를 할퀴며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이 책을 통해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