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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한경쟁, 독점과 소외, 금융위기 등등으로 어수선한 세상이다. 실수라도 하여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삶이 무너질 것 같은 현대사회에서 철학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 ‘삶의 기술’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최대 규모의 철학 커뮤니티 ‘런던필로소피클럽’의 공동창립자인 저자 줄스 에반스가 사람들이 고대 철학을 오늘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졸업과 함께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이때 그를 구해준 것이 ‘인지행동치료’였다. 인지행동치료는 어떤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인지행동치료와 그 뿌리가 된 고대철학을 만나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면서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그 둘을 연계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책은 ‘근본적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플라톤주의 등 고대 철학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삶을 바꾼 대중철학자 알랭 드 보통, 노벨상 수상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등 세계 유수 인물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고대철학에서 받은 영감으로 오늘날 어떻게 새로운 철학을 펼쳐나가는지 탐구한 결과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부제가 ‘삶, 그리고 위태로운 순간들을 위한 철학’이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런 대중철학서는 거의 처음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짜임새는 물론 내용까지 모두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도 이채롭다. 소크라테스·에픽테토스 등 고대철학사의 큰 이름 12명 사이에 현역군인, 소방대원, 전직 조폭, 학자, 신비체험을 한 우주비행사에서 자기계발광에 이르기까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더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하면서 고대철학을 다시 찾는 보통사람들을 통해 2000년 전 그리스·로마 철학이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생생한 증언을 펼쳐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철학공부에 열중한다. 미 육군 소령 토머스 재럿은 3년 전 이라크 파병 병력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에픽테토스·세네카 등 스토아철학 강의를 시작했다. 물론 정규교육의 일환으로 했다. 그는 “군인에겐 철학이 필요해요. 고통을 겪어내게 해주고, 그것을 고통이 아니라 일종의 봉사로 여기게 하는 철학이요. 내 목숨은 국가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군인 노릇을 장난으로 하는 거예요. 자신이 믿는 철학이 가장 힘든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당장 버려야 해요. 그건 개똥철학이니까요.”(p.113)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부스러기 철학사 정보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그런 ‘개똥철학’ 대신 우리 시대 삶의 이야기로 바꿔준 고대 현자의 삶이 매우 독특하다. 또한 그들의 입을 통해, 오늘날 심리학과 자기계발의 뿌리가 된 고대 그리스·로마의 위대한 현인들이 지금 다시 주목받아 마땅한 고대철학의 지혜, 즉 ‘삶의 기술’을 권하고 있다.
철학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철학을 읽을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이야 말로 철학의 기본근육을 만들어주는 최적의 학당이요 도장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