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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유병률 지음 / 알투스 / 2012년 2월
평점 :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절대적인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행복’의 면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못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으로 누리게 된 안락함과 풍요로움은 인간다움과 행복을 포기한 대가는 아니었을까. 성공의 정상에 올라서도 한숨 돌릴 수 없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의 사다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지만, 늘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한국일보 경제부와 사회부 기자로 16년 동안이나 경제현장을 취재했고, 현재 머니투데이 기획취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 유병률이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윌래밋밸리의 전설에서 시작되는 경제사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지, 어쩌다가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라는 원주민 부족이 터를 잡고 살던 축복 받은 땅이 ‘죽음의 계곡’이 된 비극적인 전설을 알게 된 후, 이 이야기가 불안과 절박함에 갇혀 있는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칼라푸야 부족은 비옥한 토양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그곳을 떠나지 못했고 ‘아무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도 떠날 생각을 못하고’ 계곡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곳을 빼앗으려는 백인들의 총부리를 등지고서야 윌래밋밸리를 떠났다. 이로써 이들의 오랜 역사도 막을 내렸다.
저자는 “죽음의 계곡이 ‘죽음’의 계곡인 것은 모두가 죽어나가기 때문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남기 때문에 죽음의 계곡이다. 그들이 계곡에 머물러야 하는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내면화하기 때문에 죽음의 계곡이 유지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어떠한 방법으로 뒤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파헤친다. J.P 모건은 300달러를 내고 병역을 피했고, 전쟁중에 군대가 버린 망가진 소총더미를 17,500달러에 사다가 110,000달러를 받고 정부에 팔아 한몫 챙긴다. 록펠러는 남북전쟁 기간에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정유업을 시작한지 몇 년 안돼 클리블랜드에 50개의 정재소, 피츠버그에 80개의 정제사업장을 사들인다.
J.P 모건과 록펠러 등이 미국에서 부를 형성하던 초기 ‘야만의 시대’를 지나, 크게 부자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대다수의 미국인이 잘살게 된 ‘타협의 시대’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정치가 울타리를 허무는 ‘해체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울타리의 해체는 ‘양계장의 암탉’이라는 인간형 역시 철저히 해체한다. ‘보금자리’와 ‘감옥’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 철저히 이중적인 삶, 분열된 삶을 강요받게 된다.
사람들은 ‘악마의 맷돌’ 속에 자신이 갈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계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저자는 이 맷돌을 멈추게 하고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것은 귀신고래에서 찾는다. 귀신고래는 몸 전체에 따개비나 굴껍데기들을 붙이고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 바다를 유영한다.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는 첫발은 우리가 이런 변화의 조짐들로부터 희망의 단서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것이다. 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다 함께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나쁜 바다로부터의 탈출은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