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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밥상 - 예쁜 엄마 권오분의 마인드 푸드와 꽃밭 이야기
권오분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2월
평점 :
나는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는 사계절 중에서 봄을 제일 좋아했다. 봄에는 언덕배기 밭에 나물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나물이 돋으면 어머니를 따라 나물을 캐러 갔다. 밭두렁에 돋은 냉이와 달래와 쑥은 이내 쇠어서 금방 캐야 했다. 내 고향에선 달래는 간장에 무쳐 먹고 나생이는 된장국을 끓였다. 나물을 분간하지 못해 발로 밟고 다녔기에 어머니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냉이의 뿌리가 통통하게 살찐 것을 캐면 침으로 흙을 씻어내서 주시곤 했다. 냉이 뿌리를 씹으면 향긋하고 단맛이 났다.
또 어렸을 적에는 양식이 없어 주로 쑥밥을 먹고 살았다. 정말 먹기 싫은 밥은 쑥밥이었다. 쑥밥을 먹기 전엔 시래기라고 하는 가을에 엮어 말린 무청을 넣은 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봄에는 쓴 나물을 먹어야 뜨는 기운을 가라앉힌다고 해서 쓴바퀴를 캤다. 밥 맛 없을 때 입맛 돋구는데 아주 좋은 나물이다. 어떤 나물은 고추장에 무치고 어떤 나물은 들기름에 볶고 어떤 나물은 된장에 버무려 제 맛을 냈다. 지금 창밖을 바라보며 그때를 돌이켜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요즘은 맛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하지만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먹어 봐도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해준 밥’을 그리워 한다. 그래서 시골 밥상을 찾는다. 음식은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도 정성과 소원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을 낼 수가 없다.
이 책은 “음식은 그저 먹는 것이 아니라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며, 평소 마인드 푸드를 강조해 온 저자 권오분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의미를 담은 음식이야말로 그 사람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텃밭에 심은 각종 꽃과 채소를 재료로 삼아 음식철학과 나눔, 추억을 정갈하게 풀어놓은 책은 읽는 내내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어렸을 때는 쑥 개떡을 많이도 먹었다. 지금은 그런 개떡을 어디에서도 맛볼 수가 없어 안탑깝기도 하다. 저자는 “쑥을 뜯을 때마다 나는 고향을,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으면서 재룟값도 아끼려면 쑥을 많이 넣고 쌀은 조금만 넣어야 했는데 지금은 쑥을 많이 넣고 만드는 쑥떡이 더 비싼 날이 되었으니 보릿고개의 대명사엿던 쑥이 건강식의 대표선수가 되었음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저 편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지 않은 채로, 아무런 격식을 차리지 않고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마음 푸근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여기에는 어려운 말이 없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수한 된장 냄새와 꼬소한 참기름 냄새가 범벅이 되어 나온다.
몇일 전에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생신이었다. 난 직장일 때문에 가지를 못하고 아내가 대신 가서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왔다. 아들이 오면 주겠다고 뽑은 냉이를 아내가 가져와서 냉이 국을 끊이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니 밥맛이 절로 난다. <소원 밥상>을 읽으면서 어머니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이 책은 각박한 세상에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멍울진 마음을 따뜻한 된장찌개처럼 녹여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