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이 죽었다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근애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신이 있다? 없다? 신은 죽었다! 내가 믿는 신이 전능자다! 신을 두고 갑론을박하느라 지구촌에서는 종교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떠한 종교든 ‘선’과 ‘평화’를 교리로 내세우지만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고 섬기느냐에 따라 친화가 되고 서로 원수가 되는 종교의 님비현상을 보게 된다.
19세기말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이 말은 기독교적 신적 존재가 소멸했다는 의미다. 당시 성직자들의 타락과 종교를 이용한 거짓 앞에서 ‘신이 죽었다’라는 그의 고백은 진정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잃어버린 교회와 사역자들의 비본질적인 믿음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은 신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의 인간 세계를 그리면서, 신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지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으나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밝힌 작가 론 커리 Jr.는 이 책에서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와 같은 신학적 논쟁이나, 또는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신이 죽었다. 수단의 딩카족 여자의 몸으로 지상에 내려왔다가 내전에 휘말린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혼란이 시작된다. 신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후 그 충격에 몸부림치는 전 세계 사람들, 세상의 종말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는 수녀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졌고, 신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에 자신의 아이를 극단적으로 숭배하는 부모들이 새로운 세계를 채운다.
콜린 파웰이 수단을 방문하는 첫 번째 이야기 ‘신이 죽었다’부터 마지막 이야기 ‘퇴각’에 이르기까지, 잘 짜여진 가상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설은 재미로만 읽기에는 충분히 도발적이고 진지하며, 무겁게만 바라보기엔 재치와 기발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순전히 상상에서 나온 것이지 신학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차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없었던 때가 없었고,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잔인함과 폭력은 늘 어디에도 도사리고 있다. 저자가 그린 신 죽음 이후의 세계는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 이야기의 소재들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서 신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모두 1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신의 시신을 먹은 들개무리 중 마지막 남은 들개와의 인터뷰’였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거짓말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내 거짓말을 듣기 위해 얼마 안 되는 그들의 살림살이를 바치는 것이 나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릴리의 못마땅하다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속에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제서야 그렇게 된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 당시에 나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그들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저자는 ‘영적 목마름’이 있고,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