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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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왕을 고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이다 순종은 어떤 책을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다. 보통은 을미사변으로 끝을 맺거나, 혹은 고종이 독살당한 것이나 덕해옹주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그 당시 상황은 일제 강점기로 일본에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왕은 왕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일본의 국권침탈 야욕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의 허수아비 황제이다. 그만큼 순종의 인생은 치욕과 비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제였지만 한 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는 사람, 궁궐에 살았지만 한 번도 군림해본 적이 없는 사람, 왕이었지만 평민의 삶을 더 부러워했을 사람, 죽을 자유도 없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든 사람, 몸은 궁궐에 있었으나 마음은 늘 감옥에 갇혀 지낸 사람, 그가 바로 순종이다.

순종은 1874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이듬해 세자에 책봉됐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된 후 황태자에 책봉된다. 순종은 나이 아홉 살 때 동궁으로 밀어닥친 일본 군인들이 환관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열흘 만에 겨우 깨어나 어머니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또한 스물다섯 살 때는 황실의 통역관으로 있던 김홍륙이 고종과 순종이 즐겨마시던 커피에 아편을 넣었다. 고종은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셨다가 치아를 잃고 며칠간 혈변을 누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망국의 황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릴 때부터 온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순종은 아버지 고종의 뒤를 위어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이미 일본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무렵이었다. 그는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도쿄를 방문해 천황을 알현할 것을 압박받는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의를 다해 마땅한 일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인한 일종의 협박이었다. [순종 실록]의 부록에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17년 6월 8일: 남대문역에 직접 나가서 특별열차를 타고 도쿄로 행하였다. 6월 14일: 황궁에 나아가 천황과 황후를 봉황문에서 알현하고 현소에 참배하였으며, 이어 동궁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이 책은 비운의 황제 순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망국으로 치닫던 당시 조선사회의 풍경과 역사의 큰 회오리에 휘말려 한평생을 쓸쓸히 살았던 순종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저자 박영규는 1998년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저술하여 100만권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워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키며 역사저술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이 책 속에는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명성황후, 덕혜옹주, 대원군 등 그동안 드라마나 역사서에 수없이 등장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서 이때까지 우리가 알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순종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순종에 대해서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하고 나약한 왕으로만 비춰졌던 순종의 고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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