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지음, 이은경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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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권태를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아이 지겨워. 지겨워 못살겠어”이렇게 내뱉고는 한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결혼생활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습관처럼 찾아오는 것이 권태이다.

사실 요즘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따분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보낼 때가 많다. 이렇게 삶의 권태를 느낄 때면 일상에 큰 변화가 없고 또 순탄하다고 느낄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여유라는 것이 권태를 느끼게 한다.

19세기 러시아의 극작가이자 단편 소설가인 안톤 체호프는 “누구보다도 권태를 자주 다뤘던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무료한 시골 농가가 손님처럼 등장한다. 특히 <바냐 아저씨>(1900)는 권태라는 주제로 전개되는 대표작이다. 기나긴 겨울, 시골 농가를 배경으로 질리도록 늘 보는 얼굴들과 매일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반복적인 상황·대사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젊고 아름답지만 무기력증에 빠진 극중의 엘레나는 “따분해 죽겠어... 도대체 무슨 수를 써야 하지?”라며 발을 동동 구른다. 물론 이는 의사 출신의 작가였던 체호프 자신이 겪었던 권태의 반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작품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권태의 양상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투이는 “장기간 권태에 매료돼 사색해왔다”고 자부한다. 호주 태생으로 현재 캐나다 캘거리대학에서 그리스·로마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는 오랫동안 호주 내륙 평원에서 살았고, 지금은 캐나다 로키산맥 근처의 광활한 평원 끝자락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종종 주변과 자신을 둘러싸는 권태에 대해 “과연 권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태는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의문을 품고 문헌을 찾고 명작을 찾아봤다. 저자는 “권태에 빠지면 우리는 이따금 타인에게서, 세상에게서, 우리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간다. 권태는 자아인식을 강화시킨다. 사실 권태는 스스로를 또 다른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희귀하고도 드문 기회다.” 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창조적인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현실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여기는 권태에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한다. 저자는 우선 끝없이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느끼는 지루함이라든가, 혹은 점심을 먹고 살짝 졸린 상황에서 느껴지는 만사 귀찮은 감정, 특정 시간 반복되는 똑같은 일이 지겹게 느껴지는 상황 등을 단순한 권태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러시아 출신의 미국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말을 인용한다. “권태와 맞닥뜨리면 그대로 부딪혀라. 그렇게 완전히 가라앉았다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 된다.” 결국 저자는 “권태를 직시하고, 그것이 들려주는 충고에 귀기울이라”고 권한다. 권태는 무미건조하고 칙칙하지만, “그것은 분명 순수하고 희석되지 않은 시간이며, 거기에서 광채를 발견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몫”이라는 얘기다.

살다보면 누구나 권태를 느낀다.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이 지겨워질 수 있고, 매일 반복되는 업무나 일상이 권태롭고, 늘 보는 얼굴들이 싫증 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권태란 우리가 그동안 꾸려왔던 삶의 방식을 바꿔보라는 신호이다.” 우리 곁에 늘 존재하는 “권태”를 이 책을 읽으므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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