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2002 월드컵의 터키팀 경기가 있던 날, 7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터키 국기가 그려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비바 투르크"를 외쳐댔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를 ‘칸카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라 부르는 나라, 터키!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인연으로 우리를 매우 우호적으로 여기며, 참전용사들은 바탄(조국)이라고까지 서슴없이 말하는 나라! 하지만 우리에게 터키는 아직 머나먼 나라이다.

그러나 터키가 자리 잡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역사는 가히 세계사의 축을 이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현재의 터키를 알고 그 역사와 유적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 나라를 이해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세계사의 축소판을 읽듯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더불어 아시아의 극동과 극서로 서로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형제’의 의미를 되새겨 터키를 이해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터키의 대표작가 자난 탄의 장편소설이다. 사회가, 가족이,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어 갈등하는 주인공 피라예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자난 탄은 앙카라 출신으로 아동 소설과 수필로 출발해 터기 최대 언론사인 ‘예니아시르’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했었다. 그는 육군 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외삼촌으로부터 한국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소설은 이스탄불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피라예가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학생활을 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처음 사귄 남자 친구는 시인 지망생 아리프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 출신에 ‘공산주의자’처럼 보이는 아리프와 사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피라예는 “모든 사람이 부자여야 한다는 법이 있느냐, 그는 자유와 정의를 믿는 사람이다”라며 어머니의 반대에 저항한다. 이제 자신이 부모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주체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아리프의 청혼을 거절한다. 결혼이라는 틀이 “내가 갈망하는 무한의 자유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 결국엔 삶을 옥죄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런 생각은 결혼과 출산, 이혼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인생에 점차 사실로 드러난다.

피라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인 하심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고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손자를 원하는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손자타령’을 한다. 하심은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씨받이’ 여자를 소개받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피라예는 하심과 갈라서기로 결심을 한다. 하심의 집에서 나온 그녀는 자신이 하심의 아들을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하심은 피라예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하지만 자신의 요구를 피라예가 거절하자 아들의 이름이라도 자신이 지어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마을로 돌아간 하심은 땅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웃 집안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하심이 자살이라도 하듯, 무방비 상태로 걸어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피라예는 하심의 사랑을 재확인하게 되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하심이 지은 이름을 붙여준다.

작가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대한민국에도 피라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녀와 같은 슬픔과 기쁨을 경험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피라예는 비단 터키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울타리를 넘으려 애를 쓰는 수많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