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680년 5월 20일. 서대문 밖 여염집에서 장독(곤장을 맞아 생긴 상처의 독)에 신음하던 윤휴에게 사약이 내려졌다. 이 세상에 남길 마지막 말을 남기기 위해 먹과 붓을 요청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했다. 그는 역모에 가담했을까. 하지만 죄목 어디에도 ‘역(逆)’이란 말은 없었다. 윤휴는 사약을 마시면서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인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역사평론가이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10여년 전부터 이 비운의 정치가를 주목했다. 후손을 접촉했던 기자로부터 “여주에 사는 후손이 아직도 윤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무엇이 300여년 전 죽은 선비를 그토록 ‘금기’로 만들었는가, 저자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윤휴가 사형당한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더 이상 그와 같은 생각은 허용되지 않았다. 윤휴와 같은 생각은, 특히 그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가는 초청장이고, 저승으로 가는 초청장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조선 후기 사회는 다른 생각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주 경직된 사회였던 것이다.

윤휴는 1617년(광해군 9년)에 대사헌 윤효전의 아들로 태어나 1675년 58살에 14살 소년 숙종의 부름을 받아 정4품 성균관 사업으로 출사해 5개월 만에 대사헌에 오르고, 이어서 판서직을 몇 차례 거쳐 1679년에 우찬성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경신환국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윤휴는 ‘주자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맞서 “주자학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정에 들어간 뒤 윤휴는 지패법, 호포법 등 당시 신분제를 뒤흔드는 개혁안도 만들었으며, 북벌을 추진했다. 하지만 송시열을 영수로 하는 서인(노론)들은 말로만 북벌을 외쳐 조선 국왕을 압박하는 한편 백성 위에 군림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윤휴가 등장하여 실제로 북벌을 위한 정책을 주창하면서 자신들의 이중성이 드러나자 이들이 그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휴와 숙명적 라이벌이 되는 송시열도 한때는, “백호는 학문이 높아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없으며 전인(前人)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이치를 발견해낸다”라고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윤휴가 <중용>(中庸)·<대학>(大學) 등의 경전(經傳)을 주희와는 달리 해석하면서 두 사람은 충돌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우리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아직도 정치공작이 난무하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여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윤휴의 삶과 사상을 복원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조망하게 되는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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